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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꺼실이 Sep 22. 2020

사람만 보면 같이 살자고 해

시골에 살아 행복한 의사 이야기

 오늘은 우리가 키우는 개 ‘대발이’의 집이 낡아 지붕을 새로 씌워주었다. ‘수’ 삼아 맥주 몇 캔 꺼내 놓고 마을 식구들을 부른다. 안주 하나씩 들고 모여 한상 차림이 되었다. 맥주 마시러 호프집에 갈 필요도 없고 사람들을 부르느라 번잡한 준비를 할 필요도 없다. 집에 남은 음식이 있으면 마을에 가져와 풀어놓는다. 아이들 읽어주던 그림책 속의 이야기처럼 펼쳐놓으면 음식이 생기는 요술 보자기 같다.

 

 ‘들꽃 피는 마을’이란 곳에 10가구가 모여 산지 만 8년이 지났다. ‘안성천 살리기 시민모임’이라는 환경 단체를 만들고 활동을 하다 보니 자연과 더불어 보다 생태적으로 살고 싶어 졌다. 그러려면 공동체를 만들어야 했다. 의료협동조합에서 만난 조합원들. 안성천 살리기 시민모임을 하며 함께 활동했던 회원들 중 그런 삶에 관심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을 모았다. 후에 들리는 얘기로는 “권 원장은 사람만 보면 같이 살자고 한다”라고 했다는 소리도 들렸다.


 10가구가 한 달에 한 번씩 꿈꾸는 모임을 시작한 지 10년 만에 마을을 이루게 되었다. 우여곡절도 많았고 중간에 나가고 들어온 사람들도 많고 뭘 잘 모르고 토지를 마련해서 농사를 함께 짓다가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이제 포기해야 되나 할 때 건축을 하는 친구가 ‘같이 하고 싶다. 본인이 친구 몇 가구 불러오고 건축도 할 테니 함께 마을을 만들어 보자’하여 다시 진행이 되어 3년 만에 마을을 이루게 된 거다. 토지는 2000평을 공동으로 구입해서 공동의 공간으로 주차장, 마을길, 아이들 놀이터, 연못, 마을 회관 등을 제외한 나머지를 나누어 150~200평을 개인의 소유로 했다.

     

 처음엔 경제 공동체까지 꿈을 꾸었으나 현실 가능성이 너무 떨어져 그저 마을로 함께 살아보자고 마음을 바꾸었다. 함께 공부했던 책 중에는 공동체성이 느슨할수록 오래간다는 전례가 있기도 했다. 함께 살아 보면 같이 해서 좋은 것은 강화돼서 더 공동체성이 강해질 것이고 그럴 필요가 없는데 당위로 함께 하는 것은 도태되겠지 하는 생각도 있었다. 살아본 결과 사람들은 누구의 예상보다도 행복해했다. 자잘한 갈등이야  없지 않았지만 자연 속에서 함께 한다는 것 자체가 주는 행복감이 모든 것에 앞섰던 것 같다.


  TV 없는 집도 많고 에어컨 없는 집도 있어 여름에는 더위를 식힐 겸 마을회관에서 함께 영화를 보기도 하고 축구경기나 선거방송 등을 함께 보기도 한다. 일요일 아침에는 마을에서 '울력'이라 하여 공동으로 해결해야 할 것들, 주차장이나 아이들 놀이터 풀 뽑기, 지하수 정화조 청소, 나무 심기 등의 일들을 함께 한다. 진정한 시민의식은 눈이 오면 눈 치워달라 시청에 전화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눈을 치우는 것이라 하지 않는가. 한 달에 한 번씩 달 모임을 하여 마을의 일들을 논의하고 함께 밥을 먹는다. 물론 한 달에 한 번만 먹는 게 아니라 이런저런 구실로 자주 모여 먹는다.


敬天, 敬人, 敬物


 마을에 들어갈 때 존경하는 한 선배는 ‘경천敬天, 경인敬人, 경물敬物’이라는 화두를 주셨다.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공경하고, 물건(자연)을 공경해라. 20평 농사를 지으며 개와 고양이 닭 8마리를 키우며 살고 있다. 살아보니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아파트에서는 버릴 수밖에 없던 깨진 그릇 같은 물건도 여러 용도로 요긴하게 쓰는 경우가 많다. 음식물 찌꺼기는 닭들이 먹거나 퇴비장으로 들어가 훗날 농사의 밑거름이 된다. 지붕 위에서 흘러내리는 빗물도 모아두었다가 농사짓는데 쓴다. 출근 차량도 방향에 따라 함께 타고 잔디 깎는 기계, 큰 사다리 등은 여러 개를 구입할 필요가 없다. 최근에는 빨래 건조기도 같이 구입했다. 함께 하니 모든 것이 넉넉하다.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모든 것이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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