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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슬 Jan 22. 2022

[아내일기] #5 자존감 높은 내편의 멘탈케어

돕는거 아니야!

올해 승진을 했다. 그와 동시에 동료 1명이 퇴사를 했고 아직 나의 팀원 다 꾸려지지 않았다. 어찌나 정신없는 요즘인지 야근과 주말출근을 반복하며 남들보다 3배는 많은 날들을 살고 있다. 뭐라도 준비할라치면 경험해본 적 없는, 당췌 무슨일부터 어떻게 일머리를 잡아야할지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사회생활 8년차인 나의 미약한 경험 앞에 자존감만 낮아질 뿐이었다. 맘에 안드는 결과물과 앞이 보이지 않는 어려운 일들 앞에 화장실에서 몰래 눈물 훔치는 날도 참 많이 늘었다. 나 빼고 모두가 똑똑하게 사회생활을 하는 것 같고, 나만 미운오리새끼가 된 것 같은 기분. 


이 기분을 얼른 떨쳐내려면 내가 일에 끌려다니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럴수록 이를 악물었다. 누구도 성공못한 일을 성공시키고 싶었다. 그렇게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집안 살림을 한 켠으로 미뤄두고 한 쪽 시선으로 째려보며 한숨을 푹푹 쉬곤 했다. 아침에 그냥 벗어놓고간 잠옷하며, 화장실은 언제 그렇게 물 때가 끼었는지. 일을 조금 멀리할 땐 바로바로 집안일을 하는게 마치 내가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일에 집중하는 기간이 늘어갈수록 정작 내가 아끼는 이 집에 대한 애정은 사라지고, 집안일은 끊없이 밀려있는 업무 같이 느껴졌다. 눈에 보이는 일을 처리하지 못해 안달난 나는 자주 예민해지곤 했다. 


그리고 생각 저편 어딘가엔 '남편이 날 너무 게으르게 보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제 막 결혼한지 1년이 조금 넘었지만 아내 역할도 똑똑하게 하고 싶었다. 현명하고 부지런하게 누가봐도 빈틈없이 그렇게 모든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만 늘어갈때쯤 우여곡절을 겪으며 금요일이 되었고 월요일과 금요일은 재택을 하는 남편이 날 배웅했다. 남편이 역에 내려줄때면 얼마나 가기 싫은지 눈물이 찔끔 나기도 했다. 지겨운 직장생활, 그럼에도 놓지못하는 욕심쟁이. 그럼에도 어김없이 금요일에도 야근을 한 나는 밤 늦게야 왔고 남편은 또 날 마중했다.


피곤함에 지쳐 쇼파에 급히 몸을 뉘었다. 그러다 문득 "어떤 역할도 놓치고 싶지 않아"를 육성으로 내며 어젯밤부터 내내 무거웠던 마음에 황급히 몸을 일으키고 베란다로 나갔다. 뭐라도 헤치우면 마음이 가벼워질 것 같았다. 그런데 빨래통이 깨끗하고, 설거지통이 깨끗하다. 남편이 이리저리 꼼꼼하게 정리한 흔적이 가득하다. 심지어 빨래걸이에는 이불이며 내가 던져놓은 원피스가 깨끗하게 걸려있었다. 



"여보 고마워. 요즘 내가 너무 정신이 없었지. 여보가 이거 다한거지? 어뜨케.. 집안일 도와줘서 고마워"


"돕는거 아냐! 이것도 나의 일이야!"


부부가 함께 사는 집에 니일, 내일이 어딨냐만은 무심코 집안일을 남편에게 미뤄만 두었단 생각을 했다. 내게 "짜잔~"하며 화장실 변기며 욕조며 싱크대까지... 굳이 나한테 티 안내고 남편은 야금야금 해내고 있었다.  내가 소근소근 지나가며 아 치워야하는데... 하고 일을 미뤄두는 모습을 보며 남편은 그것이 자기 할일이라고 생각했다. 도운것도 아니고 할 일을 했단다. 결혼 전보다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게됐고 더 많은 일들을 잘 처리할 수 있게된건 역시나 안정된 마음이다. 단지 몸이 피곤할 뿐, 언제나 침착하고 선입견이 없고 모든 일에 앞서 나를 배려해주는 남편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건낸 나에게 "괜찮아~" 라고 말하며 조금은 신세한탄도 할만한데 언제나 남편은 더 많이 더 빨리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혼자 다 하려고 하지 말라고 다독인다. 


사실 누구도 내게 모든 일을 맡긴건 아니다. 모든 일에서 최선을 다하라한 적도 없고 이 모든 일이 내 일이라고 한 적도 없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난 모두 내가 해야만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깨닳았다. 남편이 내게 그런다. 


"다 잘하면 좋지. 모든 일을 뚝딱 다 해내면 좋지. 그런데 못할 수도 있어. 절대 안될수도 있어. 무리가 될 수도 있어. 그럼 쉬어가. 모두 다 하지 않아도 돼. 당신 가치는 이미 충분해"


언제나 모든 일에 인정을 잘하고 당당한 남편은 선택의 순간이 오면 항상 마음의 우선순위가 있다. 그것이 내게 들릴 때는 "소중한 것 먼저 지키고, 그것을 반드시 지켜야할 땐 내가 조금은 희생해도 돼" 하는 우선순위를 알려준다. 남편의 모든 선택과 생각은 항상 옆에서보면 항상 쉬워보인다. 항상 그는 긴장하지 않아보이고 언제나 평온하다. 그것에 대한 비결을 물으니 큰일날 일은 생각보다 없고, 잃을 것과 얻을 것이 명확하면 된다고 한다. 이것이 자존감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내가 이렇게나 마음이 힘들고 모든 일에 있어 일의 순서를 잘 잡지 못했던건 전부다 가지려는 욕심, 인정하지 못한 내 자신, 이미 결론이 있음에도 더 나은건 없는지 내 자신을 의심하는 흔들리는 나약한 나 자신 때문이었단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오늘도 무슨 복에 이런 남자를 만나결혼 후에도 하고픈 일 맘껏하며 맘편한 여생을 살고 있나 싶다. 돌아가는 길에 맛난거라도 사올걸 역시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경주마같은 나는 오늘도 빈손이다. 내일은 하루종일 남편 옆에 붙어 그간 못다한 수다를 재촉하며 신혼다운 하루를 보내야겠다. 남편 옆에 바짝 붙어 걸이며 결혼 반지 안에 새겨져있는 존중, 배려, 사랑 글자를 매만져본다. 참 든든하다. 


이제는 흔들리지 않고 내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알았어. 내편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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