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위는 아들이 될 수 있다?
결혼하고 2년차. 시댁 식구들과는 소소하게 여행을 다녔는데 친정 부모님과는 여행을 다니지 못했다.
나의 부모님은 일주일 중 유일하게 수요일만 쉬었고, 직장인인 자식들은 그저 사회생활하기 바빴다.
그런 부모님이 이제 은퇴했다. 시간이 생겼다.
"엄마, 뭐해?"
연초 수술로 출근이 어려울 땐 재택을 하는데, 그럴때면 괜히 부모님께 자주 전화했다.
(아, 모든 딸들이 그렇듯 전화는 엄마에게...)
"뭐하긴~ 청소하지~"
엄마는 쉬는날이면 무조건 집 청소를 하셨다. 오죽하면 30년된 집 장판이 광이 난다.
언젠가 왜 그렇게 청소를 하시냐고 했더니 밖에서 일하고, 공부한 가족들이 집에 왔을 때 여기저기 물건이 늘어져 바닥이 지져분하면 보는것만으로도 얼마나 피곤하겠냐는 것이다. 그럼 몸 뉘우기 전에 치울 걱정에 머릿속이 복잡할텐데, 엄마가 미리 해놓으면 우리 가족들이 따뜻하고 편하잖아 라고 하셨다.
항상... 엄마가 먼저 해놓으면 누군가는 편하고 누군가는 쉴 수 있다는 엄마.
하루종일 TV 보거나 청소하시는 엄마에게 "심심하지 않아?" 라고 물으니
" 괜찮아~ 집이 오래되서 그런지 이것저것 닦고, 치울게 많아~"하신다.
그리고는 일하실 땐 자주 가시지 못했던 '다이소'에서 득템하신 청소아이템을 신나서 소개하신다.
내내 듣고 있던 나는 갑작스럽게 엄마에게 제안했다.
"엄마, 더 더워지기 전에 우리 여행가자~ 엄마 가고싶다고 했던 완도를 갈까, 통영을 갈까?"
"장마가 온다는데 ... 괜찮을까? 엄마는 괜찮아"
엄마의 괜찮아란 말이 연속되었을 때, 심장이 쿵 했다.
엄마는 자의적으로 '여행'을 가본적이 없고, 여유를 '선택'해본 적이 없구나 싶었다.
신나서 청소용품 얘기하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어 식사 챙겨드시라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날 거실에 앉아 한참 울었다.
엄마의 괜찮다는 말이 목구멍에 턱 막혔다.
저녁 늦게 남편이 퇴근했다. 가방을 내려놓기도 전에 꼬질한 내 얼굴을 매만지며 혼자 재택하며 심심하진 않았는지, 밥은 잘 챙겨먹었는지 묻는다.
참 다정한 내 남편.
그리고 저녁을 먹으며 오늘 낮에 있었던 일을 얘기햇다.
아무리 바쁜 현대 사회고, 부모따로 자식따로 쿨하게 사는 세상이라지만, 아직 내가 받고 자란 사랑과 부모님의 젊은날 희생이 더 크게다가와 모른척할 수 없었던 상황을 말이다.
늘 괜찮다하시는 게 정말 괜찮은게 아니란걸 늘 머리론 알았지만 마음으로 안건 처음이라
당황스러웠다며... 내가 할 수 있는게 있을지, 우리 부모님의 은퇴생활이 괜찮을지 마음이 먹먹했다.
언제나 나의 이야기에 묵묵히 듣는 남편. 지난 시댁식구들과의 서울여행부터 지난 여름 휴가여행 등등을 내게 말하며 내게 참 고마웠다고 했다. 그저 나는 스케줄을 소화한다는 생각 뿐이었는데 부끄럽게도 우리 남편은 이게 고마웠나보다. 그리고 다정스레 내 눈을 바라보며 말을 덧데인다.
"꼭, 그에 대한 보답은 아냐. 어려울 거 없어 모시고 가자. 통영이든, 완도든"라고 한다.
경험으로 여유를 가지면 되고, 그 여유로움이 다른 선택을 흔쾌히 하도록 한다는 그의 따뜻한 말.
다음날, 바로 엄마에게 연락을 드렸고 늘 괜찮다던 엄마가 당연히 거절할 줄 알았지만
드디어 엄마가 "좋아!" 라고 하셨다.
그렇게 친정부모님과 우리 부부는 통영으로 여행을 떠났다.
<흔슬의 말>
몇 편이나 연속이 될지 모르겠지만, 아내일기가 끝나면 부모님과 함께 일상을 기록하려고 합니다. 아내일기지만 남편없이는 이뤄나갈 수 없는 일상이기에 사실상 이제 막 가정을 꾸린 신혼부부의 이야기이기도 할 것 같아요. 지금까진 많이 다니지 못했지만 앞으로 그 날들이 늘어날 수 있게 노력 중이에요. 우선 첫 이야기로 통영여행이 2편정도로 쓰여질 것 같아요. 세상 모든 며느리들이 딸처럼 살기도 하겠지만 눈치 많이 보는 흔슬은 딸 보단 아직은 며느리같아요. 그런데 우리 남편은 통영 여행 내내 저보다도 더 아들처럼 부모님과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제가 더 많이 배우기도하고, 모든 관계에서 전혀 선입견없이 지내는 남편의 행동과 말을 보면서 정말 다시 한번 존경하게 되었어요. 어른들과의 여행 쉽지 않죠. 저 역시 딸로써 쉽지 않았어요. 그 이야기를 섞어 다음편에 담아보려고 합니다. 혹시나 들려주시는 분들이 공감해주시고, 댓글로 이야기를 담아주시면 저도 겪었지만 흘렸던 경험들을 담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_ @흔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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