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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슬 Sep 15. 2022

[아내일기] #9. 기꺼이 가족이 되어주는 사람

사위는 아들이 될 수 있다?

결혼하고 2년차. 시댁 식구들과는 소소하게 여행을 다녔는데 친정 부모님과는 여행을 다니지 못했다.

나의 부모님은 일주일 중 유일하게 수요일만 쉬었고, 직장인인 자식들은 그저 사회생활하기 바빴다.

그런 부모님이 이제 은퇴했다. 시간이 생겼다.


"엄마, 뭐해?"

연초 수술로 출근이 어려울  재택을 하는데, 그럴때면 괜히 부모님께 자주 전화했다.

(아, 모든 딸들이 그렇듯 전화는 엄마에게...)


"뭐하긴~ 청소하지~"

엄마는 쉬는날이면 무조건 집 청소를 하셨다. 오죽하면 30년된 집 장판이 광이 난다.

언젠가 왜 그렇게 청소를 하시냐고 했더니 밖에서 일하고, 공부한 가족들이 집에 왔을 때 여기저기 물건이 늘어져 바닥이 지져분하면 보는것만으로도 얼마나 피곤하겠냐는 것이다. 그럼 몸 뉘우기 전에 치울 걱정에 머릿속이 복잡할텐데, 엄마가 미리 해놓으면 우리 가족들이 따뜻하고 편하잖아 라고 하셨다.  

항상... 엄마가 먼저 해놓으면 누군가는 편하고 누군가는 쉴 수 있다는 엄마.


하루종일 TV 보거나 청소하시는 엄마에게 "심심하지 않아?" 라고 물으니

" 괜찮아~ 집이 오래되서 그런지 이것저것 닦고, 치울게 많아~"하신다.


그리고는 일하실 땐 자주 가시지 못했던 '다이소'에서 득템하신 청소아이템을 신나서 소개하신다.

내내 듣고 있던 나는 갑작스럽게 엄마에게 제안했다.


"엄마, 더 더워지기 전에 우리 여행가자~ 엄마 가고싶다고 했던 완도를 갈까, 통영을 갈까?"

"장마가 온다는데 ... 괜찮을까? 엄마는 괜찮아"


엄마의 괜찮아란 말이 연속되었을 때, 심장이 쿵 했다.

엄마는 자의적으로 '여행'을 가본적이 없고, 여유를 '선택'해본 적이 없구나 싶었다.


신나서 청소용품 얘기하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어 식사 챙겨드시라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날 거실에 앉아 한참 울었다.


엄마의 괜찮다는 말이 목구멍에 턱 막혔다.


저녁 늦게 남편이 퇴근했다. 가방을 내려놓기도 전에 꼬질한 내 얼굴을 매만지며 혼자 재택하며 심심하진 않았는지, 밥은 잘 챙겨먹었는지 묻는다.

참 다정한 내 남편.


그리고 저녁을 먹으며 오늘 낮에 있었던 일을 얘기햇다.

아무리 바쁜 현대 사회고, 부모따로 자식따로 쿨하게 사는 세상이라지만, 아직 내가 받고 자란 사랑과 부모님의 젊은날 희생이 더 크게다가와 모른척할 수 없었던 상황을 말이다.

늘 괜찮다하시는 게 정말 괜찮은게 아니란걸 늘 머리론 알았지만 마음으로 안건 처음이라

당황스러웠다며... 내가 할 수 있는게 있을지, 우리 부모님의 은퇴생활이 괜찮을지 마음이 먹먹했다.


언제나 나의 이야기에 묵묵히 듣는 남편.  지난 시댁식구들과의 서울여행부터 지난 여름 휴가여행 등등을 내게 말하며 내게 참 고마웠다고 했다. 그저 나는 스케줄을 소화한다는 생각 뿐이었는데 부끄럽게도 우리 남편은 이게 고마웠나보다. 그리고 다정스레 내 눈을 바라보며 말을 덧데인다.


"꼭, 그에 대한 보답은 아냐. 어려울 거 없어 모시고 가자. 통영이든, 완도든"라고 한다.

경험으로 여유를 가지면 되고, 그 여유로움이 다른 선택을 흔쾌히 하도록 한다는 그의 따뜻한 말.


다음날, 바로 엄마에게 연락을 드렸고 늘 괜찮다던 엄마가 당연히 거절할 줄 알았지만

드디어 엄마가 "좋아!" 라고 하셨다.


그렇게 친정부모님과 우리 부부는 통영으로 여행을 떠났다.


행복한 엄마, 좌아빠 우사위 바라보는 딸.


<흔슬의 말>

몇 편이나 연속이 될지 모르겠지만, 아내일기가 끝나면 부모님과 함께 일상을 기록하려고 합니다. 아내일기지만 남편없이는 이뤄나갈 수 없는 일상이기에 사실상 이제 막 가정을 꾸린 신혼부부의 이야기이기도 할 것 같아요. 지금까진 많이 다니지 못했지만 앞으로 그 날들이 늘어날 수 있게 노력 중이에요. 우선 첫 이야기로 통영여행이 2편정도로 쓰여질 것 같아요. 세상 모든 며느리들이 딸처럼 살기도 하겠지만 눈치 많이 보는 흔슬은 딸 보단 아직은 며느리같아요. 그런데 우리 남편은 통영 여행 내내 저보다도 더 아들처럼 부모님과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제가 더 많이 배우기도하고, 모든 관계에서 전혀 선입견없이 지내는 남편의 행동과 말을 보면서 정말 다시 한번 존경하게 되었어요. 어른들과의 여행 쉽지 않죠. 저 역시 딸로써 쉽지 않았어요. 그 이야기를 섞어 다음편에 담아보려고 합니다. 혹시나 들려주시는 분들이 공감해주시고, 댓글로 이야기를 담아주시면 저도 겪었지만 흘렸던 경험들을 담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_ @흔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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