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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앤 Mar 29. 2021

중년, 여자의 계절 봄

인생을 제대로 즐기는 나이는 아무래도 마흔부터가 아닐까, 봄꽃을 보며 생각했다.


"엄마, 핑크 꼬시(꽃이) 꼭 아이스크림 같아!"


하얗게 핀 매화를 보고 아이는 말했다. 매화는 향을 싣고 3월부터 우리를 찾아왔다. 잎도 피기 전에 무엇이 그리 급한지 꽃부터 핀다지.


오래전 한 친구가 시어머니 옆에서 흐드러진 꽃을 보며 "어머, 벚꽃이 너무 예쁘네!" 했다가 내 앞에서 면박을 당한 적이 있었다. 시어머니는 태연하게 말했다.


"저게 매화지 무슨 벚꽃이니."


매화가 먼저 피기는 해도 뭐 꽃은 꽃이니 예쁜 건 사실이지 않나 싶은 생각이 지금에야 든다. 여전히 매화와 벚꽃을 구분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은 많으니까.


 햇살이 너무 좋아 아침에 이끌리듯 아이와 산책을 나섰다. 걸으며 바라본 꽃은 볕이 잘 드는 곳과 잘 들지 않는 곳의 차이가 컸다. 하루 일조량이 많은 곳에서는 이미 봄이 시작되었고, 꽃도 빠르게 열리고 있었다. 그와는 대조되게 아침에만 살짝 볕이 드는, 집 앞 매화나무는 이제야 싹을 틔우고 있었다.


 꽃을 보며 놀이터까지 아이와 손을 잡고 걸었다. 그곳에서 실컷 논 후에야 아이의 얼굴은 만족의 빛을 띠었다. 꽃으로 충분해지지 않는 아이의 얼굴은 너무나 당연했다. 그리고 오후가 되어 마트에 다녀오면서 바라본 매화는 오전의 것과는 달랐다. 조금 더 성숙하게 꽃을 피운 모습이랄까. 하얀색 그리고 핑크색으로 군데군데 퍼진 매화를 보며 내 입가도 환화게 미소로 퍼지는 걸 느꼈다.


아름답다.


 최근에 아름답다고 생각한 게 뭐가 있었나 생각했다. 연인, 붙잡은 꿈, 고생. 고생? 아 고생이 아름답다니. 그 안에 정작 있게 되면 그건 지옥일 수도 있겠다. 아니 그래 왔다. 그러나 정작 추한 것은 아름다움이 변질될 때라고 어느 목사는 말했다. 지나고 나면 아름다운 게 있다. 가치로 전환될 때이다. 아프면 아플수록, 힘들면 힘들수록 깊은 의미의 자취를 남긴다.


반박할 수 있는 사람은 꽤, 상당히 용기 있는 사람이다. 아무도 삶이 쉽다고, 가벼웠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오히려 침묵하는 사람이 답인 듯싶다.


 꽃이 피는 건 순간이다. 그 빛 한 줄기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 자신을 편다. 으라차차 기지개를 켜듯, 그리고 껍질 속에 갇혀 몸을 키운 애벌레가 나비가 되어 스르륵 빠져나오듯.

하지만 그러기까지 긴 시간이 걸린다는 걸 우리는 안다. 알지 않으려 해도 그냥 안다.

새싹도, 트기 위해 조금씩 받은 볕을 모아 봄을 기다렸다. 나무 위 꽃봉오리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바람이 불면 바람 맞고. 어느 날 쨍하고 뜬 볕에 기다렸다는 듯 순식간에 펑 터뜨리는 게 꽃이다. 사람이라고 다를까. 어차피 같은 자연인 것을.


꽃이 피는 게 순간이듯 젊음도 순간이다.


"빨리 자라서 어른이 되고 싶어."


십 대의 그 간절한 소망은 마침내 이루어진다. 젊음이 올 듯, 그리고 안 올 듯 긴 준비의 시간을 마치고 마침내 상을 받듯 인생의 젊음을 받는다. 그리고 꽃이 피었다 훅 지듯이 젊음도 순간에 져버린다.


 미숙한 운전을 하다가 어... 어... 그리곤 바로 차선이 바뀌는 것처럼 말이다. 꽃은 다음 해가 또 기다리고 있지만 사람에게 젊음은 한 번이다. 다음 해는 마흔으로의 길이 열려 있을 뿐이다. 그러나 막상 마흔의 길은 좋다. 이제는 꽃을 피우느라 애쓰는 삶이 아니라 꽃을 즐기는 구경꾼이 된다. 더욱이 '엄마'라는 선물도 받았겠다, 내 주변은 풍성하기 그지없다.


매화꽃을 풍기는 봄은 정말이지 중년이 된 여자의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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