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앤 Aug 14. 2021

나이 든 엄마의 육아는 쾌재를 부른다.

  '나이 든 엄마'란 여기에서 우리 시대의 어머님 이야기는 아니다. 그저 세 살 아들을 키우는 40대 중반의 나의 이야기다. 

 

 날씨가 좀 덥다 싶은 날인데도, 아이의 유모차를 끌고 밖에 나가는 횟수가 늘었다. 8월 초를 지나니 한국의 여름처럼 뜨거운 날이 되었다. 참고로 내가 사는 곳은 미국의 동부 워싱턴 디시의 인근 지역이고 이상기온인지 더위가 좀 늦게 찾아왔다. 아무튼 나는 집에 있는 미니 선풍기를 산책마다 가져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한 번도 가져가질 못했다. 이놈의 건망증이 문제였다. 한참 유모차를 끌고 '좀 덥다'를 생각할 때즘이면 그때서야 어김없이 선풍기가 간절해졌다. 

 아이는 무슨 죄인지 시원하지도 않은 유모차 안에 꼼짝없이 앉아서 땀만 송글송글 만들어 내고 있었다. 


 '아이고, 미안하다 아들아. 엄마가 또 깜빡했구나!'


 혼잣말처럼 중얼대며 집에 있는 파란 이동식 미니 선풍기를 떠올렸다. 매 번 아쉬워해도 매 번 같은 실수를 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친정엄마로부터 문자 하나를 받았다. 


 손 선풍기에서 백혈병을 일으키고도 남을 만큼(10배에서 수백 배 더 많은)의 전자파 위엄 수치가 나왔다는 뉴스였다. 영유아나 노인들에게 특히 주의를 요했다. 이 기사를 보고 나의 깜빡하는 건망증이 오히려 득을 보는 순간이었다. 하마터면 1시간의 산책을 치명적인 전자파 선풍기로 아이 얼굴에 쐬주는 꼴이 될 뻔했다. 이럴 때는 나이 들어 놓치는 일도 쾌재를 부르는 때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전에는 충전식 이 미니 선풍기를 음식 식힐 때 아이 앞에 놓고 사용했었다. 물론 이유식 시기부터였는데 지나간 것에 대해서는 몰라서 그랬으니 어쩌랴. 지금이라도 자주 사용하지 않았던 게 너무 다행으로 다가올 뿐이다. 


 삶은 그렇게 예기치 못한 것에 기회를 잡기도 하고 다행스러운 일들이 지나간다. 예측할 수 있는 삶이란 애초부터 없는 거니까. 나이가 들며 생기는 또 하나의 좋은 점도 있다. 바로 호들갑 떨지 않는 일. '아, 이랬어! 저랬어!'에 크게 요동치며 정신줄을 그만 놓아 버리는 일이 그다지 생기지 않는다는 거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며칠 전 아이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엄마! 00 이가 너무 정신이가 없어!"

 "아니 왜?"

 "너무 웃겨서 막 웃었더니 그래에~"


 너무나 능청스러운 말에 혼자 낄낄거리고 웃었던 기억이 있다. 대체 정신이 없다는 말은 알고 쓰는 걸까. 괜히 어른들 하는 말에 폼 한 번 잡아 보려 쓰는 게 아니었던가!

 

 어쨌든 정신이 없다가 정신줄까지 놓아 버린다는 건 나이 들어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니다. 흥분하고 호들갑을 떠는 일은 그냥 마흔의 중간을 넘으면 서서히 그리고 오히려 안정감으로 바뀌고 차분함으로 바뀐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아, 또 하나의 좋은 점이 더 있었지! 바로 '진정성'이라는 거다. 어느 순간에든 진심의 마음을 발현하면 최악의 순간으로 치닫는 일까지는 막을 수 있다. '에이! 모르니까 둘러대자'거나 '대충 넘기고 가면 돼. 그깟 거 뭐'라는 생각으로 일을 처리하면 문제는 어디서나 튀어나올 수 있다. 그 결과로 좋지 않은 상황이 왔을 때 다시 덮으려 다른 처방만을 쓴다면, 어쩌면 돌이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걸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아주 조금 터득해가고 있다. 사람에게 진정성이란 꼭 있어야 할 나이 듦의 덕목과도 같다. 육아를 할 때도 이런 방법은 순수하면서 쾌팍한 아이에게(실은 우리 아이) 더욱 잘 통한다. 그냥 '어른의 말'은 들어먹질 않으니 이해와 사랑의 말, 진정성의 소통이 꽤나 유용하다. 

 

 이렇게 나열해 놓고 보니 세월을 살며 헛산 건 아니라는 생각에, '나이 든 엄마의 육아'도 뭐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살며 겪은 이야기들이 내 속에서 나온다는 건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매우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사실 말이다. 하물며 깜빡하는 이놈의 정신머리가 아이의 건강을 넘어 친정엄마의 걱정거리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매우 흡족한 일이다. 


 이 사건 하나로 이렇게 글을 쓸 줄은 몰랐지만, 그런대로 또 하나의 글이 되었다. 

 이 시각, 집 앞 반딧불이 반짝이는 청청한 자연 속에서 저 멀리 벌레 소리를 듣는 밤이란 꽤 운치 있다. 또 동시에 가까이 아이의 새근새근 잠자는 소리는 꼭 나를 부르는 것만 같아 이만 글을 마친다. 


부디 나이 든 육아가 매우 힘들다고 생각하지 말기를. 

  

 




작가의 이전글 너 잘 만났다! 보복 소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