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앤 Nov 17. 2021

상실의 시대에서 떠올린



 기억이란 참 이상하다. 실제로 그 속에 있을 때 나는 풍경에 아무 관심도 없었다... 솔직히 말해 그때 내게는 풍경따위 아무래도 좋았던 것이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그때 내 곁에서 걷던 아름다운 여자에 대해 생각하고, 나와 그녀에 대해 생각하고, 그리고 다시 나 자신에 대해 생각했다... 그렇지만 지금 내 머릿속에 우선 떠오르는 것은 그 초원의 풍경이다. 풀 냄새, 살짝 차가운 기운을 띤 바람, 산 능선, 개 짖는 소리, 그런 것들이 맨 먼저 떠오른다. 아주 또렷이... 그러나 그 풍경 속에 사람 모습은 없다. 아무도 없다. 나오코도 없고 나도 없다. 우리는 대체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걸까, 나는 생각해 본다... 남은 것은 오로지 아무도 없는 풍경뿐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에서




 <노르웨이의 숲>을 처음부터 찬찬히 훑으며 읽기 시작했고, 급기야 이 부분에서 잠시 생각이 멈추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풍경, 이미지가 아른거렸다. 얼마 전에 미국에서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를 타기까지 이렇게 절차가 복잡해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 때문에  몸서리치게 싫었지만, 어쨌든 나는 그렇게 말 잘 듣는 아이처럼 모든 과정을 마치고 비행기에 올랐다.


 아이가 만 세 살이 되다 보니 엄마인 나에게 영화 2편을 보는 행운도 찾아오다니! 오래전 영화이지만 영어로 두 번 아이를 낳기 훨씬 전에 본 적이 있다. 이해하지 못하는 대화는 여러 편을 돌려 보아도 절대 알아낼 수 없다는 걸 최근에야 깨달았다. 아니 그 당연한걸. 모르는 단어나 발음은 연속해서 들어도 역시나 공부하기 전까지는 어림도 없는 것을 말이다. 다시 한국어 자막을 통해 영어와 영화를 이해하고 싶었는데, 내 눈앞에 나타나 준 것이 얼마나 고마웠던지.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가 나오는 95년도 영화 <비포 선라이즈> 속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게 한 건 바로 <노르웨이의 숲>을 읽으면서였다.


 ‘남은 것은 오로지 아무도 없는 풍경뿐’이라는 표현은 비포 선라이즈의 주인공 남녀가 사랑에 빠지며 지나갔던 자리를(물론 그들의 흔적은 이미 흘러간 과거가 되고, 현재는 비어 있거나 다른 이들이 지나가는 거리가 되고 말지만) 영화 마지막에 쓸쓸히 보여주며 끝이 나는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 안에는 분명 기대라는 게 있기도 하고, ‘설렘을 그대로 놔두기’식의 잔잔함이 있기도 하다.)


 그리고 한 달도 더 지난 지금, 하루키의 옛 책을 꺼내 들며, 사랑했던 여자의 얼굴마저 지워진, 풍경만 남은 묘사 속에 나만 또 덩그러니 바라보고 있는 꼴이 되었다.


 감당은 그저 독자의 몫이며 관객의 몫일뿐이다.


 사실 나는 짧은 소설을 쓰고 싶었다. 소싯적에 엉터리 같은 단편소설 몇 편 써보았다고, 다시 이야깃거리를 만들면 어떨까 오락가락의 마음이지 싶다. 2021년 제1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의 첫 작품을 읽으며 그런 생각은 더 물밀듯 올라왔지만, 오은교의 해설을 보며 한숨을 쉬게 되었다. 그녀의 단락단락 나누어진 평가는 글쓴이보다 더 이야기를 잘 아는(사실 그 너머일 것으로 추측된다) 사람 같았고, 나는 그 예술성과 문학에 발 하나 디딜 수도 없을 것 같은 불길함이  눈을 감게 만들었다. 아니 눈을 감기 전 한숨을 쉬었을 것도 같다.

 

 이야기 속에 연관된 숨은 뜻들을 이어주는 여러 가지 모티브를 생각하는 일에 빠지다가 또다시 책만 주야장천(아이를 보느라 뭐 그다지 주야장천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비교적 자주라는 뜻) 읽기 시작한다. 거기에 딱 꽂힌 문장에 잠시 또 끄적거리고, 머리 회전이 느린 탓에 소설 거리를 또 놓치고 다시 책으로 돌아가 책 속에서 빈정대기를 하고 있다.

 

 아무래도 소설과 영화 속 빈 공간 안에 내가 갇힌 듯하여 과거로도 미래로도 갈 수 없는 상황 가운데 그저 현실만 맴도는 건 아닐까 싶다. 아니 어쩌면 미래가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일지도 모르겠다. 괜한 핑계 아래 현실을 과거로 잘 접어두고 내일로 한 발짝 걸어가기가 씁쓸하여서일까.


 오늘 나는 그 누구도 끝내지 못하는 상실의 시대를 살며, 다시 상실의 문자들이 모인 하루키의 글자를 한 자 한 자 읽어 내려가다가 얼굴에 책을 덮고 깊은 잠이나 자보아야겠다. 




© disguise_truth, 출처 Unsplash












작가의 이전글 밥 먹듯 글을 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