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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이 Aug 25. 2019

Chronic Dissatisfaction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불만족'에 대하여


우디 앨런의 영화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라는 기괴한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인간의 여러 가지 복잡한 심리를 단순 명쾌하게 파헤치는 우디 앨런의 영화답게, 한 단어가 영화의 내용이 어렴풋해질 때쯤에도, 깊게 뇌리에 남았다. 'Chronic Dissatisfaction(만성적 불만족)'이라는 단어이다.


 영화의 주인공인 '크리스티나(스칼렛 요한슨)'은 자유분방하고 개방적인 자신의 성향에 따라 '후안 안토니오(하비에르 바르뎀)'라는 매력적인 남자와의 불안정하고 짜릿한 관계를 즐기지만, 곧 그와 안정적인 관계를 원하게 되며 깊은 갈등에 빠진다. 그때 바로 안토니오의 전 부인인 '마리아(페넬로페 크루즈)'가 크리스티나에게 일침을 날린다.


당신은 '만성적 불만족'에 빠져있는 거라고.


순간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이 멍해진 것은 크리스티나뿐만은 아니었다. 돌이켜보니 나도 항상 그랬었기 때문이다. 원하는 것을 해도 완전히 만족해보지 못한 채로, 항상 다른 것을 갈구하고, 또 손에 넣게 되면 다른 것이 보이고. 끊임없는 불만족의 상태. 그래서 더 욕망하는 상태. '만성적 불만족'은 어느새 나에게 익숙한 감정이었단 것을 불현듯 깨달았다.

 



물론 이러한 감정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성향이 행동으로 이어지면, 많은 것을 성취하기도 하니까.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되면, 지금 현재를 살지 못하고 더 나은 미래만을 꿈꾸게 된다. 더 나은 미래는 곧 부족한 현실이라는 자각으로 이어진다. '만족하지 못하는 감정' 하나가 지금 내가 발 딛고 서있는 현실을 부정하게 만드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계속해서 성취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속의 불만이 해결되지 않는 이상 내적으로는 제자리걸음인 것이다.


 언제부터 이런 성향이 내 안에 깊게 자리 잡았을까, 를 생각해 보면 역시나 학창 시절부터인 것 같다. 중고등학생 때부터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가야 하는 것을 당연한 명제처럼 받아들였고, 내가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니 학점을 잘 받아서 좋은 곳에 취업해야 한다라는 또 다른 명제가 있었다. 좋은 직장을 얻고 나니, 이번에는 연애, 결혼 혹은 지금 직장에서 안주하지 않고 더 발전해야 한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그다음에는? 내가 원해서 성취했다고 믿었던 것이 사실은 내가 원하던 게 아니었을까? 학교나 사회에서 주입한 - 열심히 살아야 한다, 남들보다 더 잘 살아야 한다 - 라는 그런 주입된 생각을 사실 쫓았던 것은 아닐까. 그런 마음의 습관이 항상 나를 부추긴 것은 아닐까. 그래서 매일 불안하고, 초조하고, 느긋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난 한 번이라도 마음 놓고, 가볍게 산 적이 있었을까?


 이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내가 굉장히 불쌍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살면서 한 번도 긴장을 풀고 느긋했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잘해야 한다'라는 생각을 하다 보니 도리어 모든 것이 '나는 지금 못하고 있다, 더 잘해야 한다, 더 많은 것을 원해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거기다가 천성적으로 성실하고 부지런한 성향이 맞물려서 부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낸 것 같다. '지금의 내가 아닌 다른 내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것이다. 쓰고 나니 정말 우습지만 사실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노력을 한 것과 결과는 결국 같아 보이겠지만, 내적인 성장은 전혀 없는 것이다.


 고등학교 때, '제발 이번만 합격하면 바랄 것이 없어!'라고 생각했다. 임용 시험을 치고 난 후에도, '제발 이번만 합격하면 정말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어!'라고 간절하게 원하고 생각했다. 그때는 정말 진심이었는데, 막상 원하는 대학에 가고 원하는 직업을 얻어도 불만족스러운 것이 점점 늘어만 갔고 지금도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 진심으로 감사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살아가지 않고 부정적인 것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런 성향이 계속 반복되어 나라는 사람의 캐릭터를 만들고,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든다. 결국에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만성적인 불만족'을 해결해야만 할 것이다.

 


만성적인 불만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단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기 수용'이 가장 중요하다. 특히 나의 외적인 조건들이 나의 존재를 대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아직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잊을만하면 불만족이 가슴속에 차오르는 것임을 어렴풋이 알고 있다. 내 자신이 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특히 평가하지 않고!, 평가할 대상은 학생들로 충분하다!) 하고 싶은 일을 그때그때 즐겁게 하고, 가혹하게 몸을 혹사시키지 않고, 잘 먹고, 잘 자고, 스트레스를 잘 풀고 그런 일상적인 일에 집중하며 자신을 돌보아야 한다. 내가 최우선인 삶.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가 아닌 나의 본능대로 움직이는 직관적인 삶이 지금 필요하다. 나의 머릿속의 '불만족스러운 생각'은 잠시 제쳐두고 지금 내가 살아가는 일상에 집중하는 삶.


글을 쓰면서 한번 더 느끼는 것이지만, 인간이란 존재는 정말 까다롭다. 생존이 위협을 받을 땐 생존이 최우선이지만,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이 되면, 자신의 만족감이나 자존감에 의해 삶의 행복도가 확 달라진다는 점이 다른 동물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점은, 그래서 인간은 성장한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반성하고 고뇌하기 때문에 어느 순간 변한다는 것이다.


10년 뒤의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때도 '난 이런 점을 고쳐야 해, 달라져야 해'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을까? 아니면, 완전히 변해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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