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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동급부 Jun 05. 2024

대밭에 불나면 절대로 못 끈다.


6학년이 된 그 해 봄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와 왠지 모를 불안감과 함께 마당에 들어섰다. 매캐한 공기가 느껴졌고 지나치게 고요했다.

몇 번이나 엄마를 크게 불렀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다. 집 여기저기를 둘러보다 뒤꼍에 인기척이 있어 가 보았다. 헝클어진 머리에 풀어헤쳐진 옷, 온몸과 얼굴 여기저기에 검댕이가 묻어있는 맨발의 엄마가 잡초를 뽑고 계셨다. 나는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분이 내 엄마가 맞나 싶을 정도로 낯설었다. 내가 부르는 소리조차 듣지 못할 만큼 넋이 다 나가 있었다.

난 40년 가까이 지난 그때의 엄마의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전라도 지방에는 대나무들을 집 주변에 많이 심는다. 이것이 울타리의 역할도 하고 농사일, 집안일 등에 자잘한 도구로 유용하다. 아이들의 장난감으로도 애용된다. 어느 책에서 지주의 착취에 못 이겨 굶어 죽은 소작농의 영혼이 자라난 것이 대나무이고, 농부들의 억척스러움을 닮아 잘 자라지만 굶주림에 속은 비어 있다는 얘기를 읽은 적이 있다. 나의 시골집도 대나무가 둘러싸고 있었고 그 넓이는 집과 마당을 합한 것보다도 넓었다.


대밭에 불이 나면 절대로 못 끈다는 말이 있다. 특히, 봄의 대나무들은 아직 노랗게 말라있는 때라 더욱 그랬을 것이다. 겨우내 방치되어 있던 집 주변 청소를 하시느라 낙엽과 마른풀들을 태우시던 중에 대밭에 불이 옮겨 붙은 것이다. 혼자 그 불을 끄려고 했지만 불은 번지기만 했다. 너무도 놀라 2~300 미터를 뛰어 마을로 가 소리쳤고 다행히 듣고 달려온 동네 사람들의 도움으로 3분의 1 정도만 태우고 불은 잡혔다.


나는 모든 상황이 종료된 후에 집에 돌아온 것이다. 얼마나 정신없이 달렸는지 엄마의 신발은 온데 간데없고 얼마나 몸무림을 쳤는지 셔츠의 윗단추 들도 여럿 떨어져 나가고 없었던 것이다. 대나무뿐 아니라 전체를 태울 기세로 활활 타는 불꽃을 보며 여자의 몸으로 혼자 겪었을 공포와 고통에 생각이 미치자 슬프고 가슴이 아려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태어나서 그렇게 초췌한 어머니의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나를 보고 있으면서도 보지 못하는 것 같은 그 공허한 눈도 아직 기억한다. 그저 손으로 얼굴에 뭍은 검은 흔적을 닦아 드렸다.


으째야 쓰까나~ 으째야 쓰까나~
내 강아지 왔는디 엄마가 이래가꼬 온 지도 몰랐어야...


엄마의 눈에서 눈물이 난다. 흐르는 검은 눈물을 닦아드렸다.

눈물 덕에 잘 지워져 더욱 확연히 드러난 엄마의 가엾은 얼굴과 뒤늦은 한탄에 나도 울었다.


삼철아 괜찮해, 괜찮해~
엄마는 괜찮해~



내 엄마도 연약한 대나무였다.

남편의 횡포와 무관심으로 죽은 영혼을 가진 채 가족을 위해 억척스럽게 살아가다, 결국 속이 빈 대나무처럼 몸도 마음도 텅 비어버린 애처로운 나의 대나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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