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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동급부 Jun 02. 2024

엄마 생일


으... 으... 아~~ 안돼! 안돼! 오지 마
악~ 피, 저 피... 오지 마 제발~ 제발~
며칠째, 그것이 찾아와 또 잠을 깬다.


아버지는 다시 서울에 가셨고 현저히 연락도 줄었다.  내일은 엄마 생일인데도 전화 한 통이 없다.

우리 집에서 아버지의 생신은 제사나 명절과는 의미가 달랐다. 돌아가신 조상 그 이상의 지위를 가진 생존하는 조상이기에 그랬다. 아버지 생신 때 엄마는 며칠 전, 아니 사실 몇 달 전부터 하나둘씩 준비를 하신다. 고사리나 고구마 순과 같은 나물류를 미리 말리기도 하고 생선을 사서 말리기도 했다. 간혹 많은 사람들이 모여 동네잔치가 되기도 했다.   

반면, 엄마의 생일은 전혀 달랐다. 간혹 아버지께서 한 두 가지 음식을 재료를 사 오시면 그것으로 엄마가 요리를 했지만 그것마저 없다면 언제나 손수 끓이신 미역국이 전부였다.


그날에 대한 부부의 천양지차가 매번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게다가 이번에는 엄마와 나 둘 뿐이다.

생일 전 날, 드디어 하교 시간이 되 아침에 학교 갈 때부터 생각하고 있던 거금 300원짜리 빵을 사들고 기쁜 마음으로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흰 바탕에 검은 콩이 박혀 있어서 나는 그 빵을 백설기빵이라 불렀다. 여느 때처럼 밭을 매고 계신 엄마에게 살금살금 다가가 깜짝 놀라게 해 드리고 생일선물이라고 백설기빵을 드렸다. 울 엄마는 놀라게 할 때마다 어김없이 놀라신다.


워따 워매 내 강아지새끼!
엄마 생일이라고 엄마 줄라고 샀능가?

(생각해 보면 우리 엄마는 기분 좋을 때는 이렇게 절반정도 존대를 하시곤 한다.)

너무 좋아하시며 빵을 받아 들고는 더 큰 반쪽을 내게 건네주신다.


끄덕 끄덕 ^^
애뚠(외딴) 집에 우리 강아지도 없으믄 엄마는 어뜨케 살았으까이~


엄마를 위해서 무엇이든 해드리고 싶은데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맘이 아팠다. 미역국을 끓여 드리고 싶었지만 할 줄도 모르고 재료도 없었다. 그때 묘안이 떠올랐다.


   삼철 : 엄마, 엄마 생일인데 장닭 잡으믄 안 돼? 삶자~ 미역국에도 넣고

   삼순 : 아부지 오시믄 묵어야제~ 다 잡아 묵고 한 마리 남았는디...

   삼철 : 엄마 생일에도 전화 한 통 없는 그놈에 아부지는 맨날 -_-

   삼순 : 서울서 집 알아보느라고 그라시제~ 그라믄 못써...   묵고 잡어?

   삼철 : 무자게 묵고 싶은디? ^^

   삼순 : 그라믄 그라자!!!

   삼철 : 진짜지? 엄마 내가 잡을랑께

   삼순: 할 수 있겄어? 알제, 그놈 싸난께 조심해야써이~ 조심해야써이~


그놈은 정말 사납고 괴팍해서 근처에도 가질 못했다. 심지어 이 하얀 달구새끼는 스피드와 파워까지 남달라 마치 모 국민학교 4학년 짱이 연상되는 놈이었다. 닭 한 마리 잡으려고 온 집안을 뒤집어 놓은 것도 모자라 집 앞 텃밭까지 도망가는 녀석을 잡으러 뛰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구르기도 했다. 결국 닭을 잡긴 했는데 여러 군데 쪼이고 넘어지면서 팔꿈치도 까졌다. ㅠㅠ


잡긴 잡았는데…  이 놈을 어떻게 죽이고 털을 뽑을지가 문제였다. 날개를 꽉 잡고 목을 비틀어 봤는데 죽지 않고 틈만 나면 쪼기 일쑤였다. 다행히 맘이 놓이지 않았던 엄마가 오셨다. 큰 칼로 그 녀석의 목을 날리기로 했다. 내가 양 날개를 잡고 엄마가 머리를 잡아 도마 위에 올린 후 칼로 목을 치기로 했다. 자, 마음의 준비를 하고 하나~ 두울~ 세엣~ 역시 많이 해 본 엄마의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칼솜씨로 한 번에 성공했다.


댕강!!! 그때 엄청난 힘의 날개 짓에 나는 잡고 있던 손을 놓치고 말았다. 그런데, 아 그런데 그 닭이 뛴다. 정말 머리 없는 닭이 살아서, 그것도 나를 피해 도망치던 것처럼 빠르게 달리는 것이 아닌가? 정말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어떻게 머리 없는 생명체가 저렇게 살아 돌아다닐 수 있지??? 오 마이 갓!!! 위가 허전한 닭이 피를 흘리며 온 마당을 뛰어다니는 공포스러운 광경을 목격해야 했다.

뒷일은 역시 엄마가 처리하셨고 물론 미역국도 언제나처럼 엄마가 끓이셨다. 드디어 미역국과 닭고기를 먹게 되었다.


내 강아지 새끼가 있어서 엄마가 호강하네~
엄마, 생일 축하해!!! ^^


그 밤부터 며칠 동안, 피 흘리며 쫓아오는 머리 없는 흰 닭의 악몽을 꾸었다는 사실을 엄마는 모르실 거다.

아버지는 엄마의 생일 당일에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고, 그 이유는 내게 더욱 무시무시한 악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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