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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동급부 May 29. 2024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은  그리기 어렵다?


국민학교 5학년 겨울방학 때였다.

이사를 이유로 자주 서울을 찾으시던 아버지가 오랜만에 돌아오셨고 내일은 아버지 생신이다. 며칠 전부터 분주하게 준비하시던 엄마는 오늘 열심히 지지고 볶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 어떤 날이든 음식을 만드는 날이 오면 애들이 가장 즐거운 법, 나 또한 그랬다.


그 무렵 동네 몇몇 아이들은 학교 앞에 새로 생긴 태권도 도장에 다녔고 그중에 ##이도 있었다. 달랑 두 반뿐이었지만 학년 짱이었던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내가 어릴 때 시골 국민학교에 짱이라는 개념 선명하지 않았다. 4학년 때 기억되는 어느 날, 한 아이가 서울에서 전학을 왔다. 나는 처음 보는 일이었다. 전학 첫날 그 아이가 청소시간에 조용히 나를 찾아 왔다.


“4학년 짱! 잘 부탁해~”
“짱? 내가? 누가 그래?”
“애들 여러 명한테 물어봤는데 다들 그러던데?”


하하하~ 내가 강요한 것이 아닌 다수의 자발적 인정에 의해 공식 짱으로 추대(?) 된 것이다. 태권도 도장의 출연으로 짱으로서 위기의식을 느낀 나는 더 세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태권도를 배우고 싶었지만 아버지께 혼날까 무서워 도장 보내달라는 말은 꺼내지 못하고 TV에서 액션영화만 나오면 열심히 따라 했다. 마대자루를 적당한 길이로 자르고 가운데 위에 못을 박아 쇠사슬로 막대 두 개를 연결한 쌍절곤을 만들어 돌리기도 했다.

아뵤~ 왜소했던 내게는 운동신경과 스피드라는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한 연마만이 우두머리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는 첩경 일지어다.


혼자 부엌에 계신 엄마에게 튀김 한 개 얻어먹고 나와 열심히 공중 뒤 돌려차기를 수련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아버지가 조용히 엄마 뒤로 다가가 살포시 엄마를 껴안는 것이 아닌가? 고생이 많다는 말과 함께...


나는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깜짝 놀랐고
“나는 봤다~ 얼레리 꼴레리~”를 외치며 도망을 쳤다.


그 바람에 모두들 한바탕 웃었고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는 40여 년 전 삼월 삼짇날(삼철 생일) 이후 현재까지를 통틀어 가장 단란한 집안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진수성찬이 차려진 기다리고 기다리던 저녁 식사시간에 아버지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서울에 있으면서 당신 얼굴을 떠 올려 보려 애썼는데 아무리 그려 봐도 잘 안되드만~ 사랑하는 사람 얼굴은 그리기 어렵다는 말을 들은 적 있는디, 그 말이 맞나 봐...”


아!!! 이 양반 오늘 여러 가지로 나를 놀라게 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은 그리기 어렵다?'  물론 나는 금시초문이었다. 직접 표현한 것이 아니긴 해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입에서 나오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들었다. 역시, 40여 년 전 삼월 삼짇날이후 현재까지를 통틀어 생전 처음이었다.  당연히 노래가사나 연속극 제목 등을 되뇔 때 섞여 나오는 그것은 예외로 하고 말이다.


40여 년 전 삼월 삼짇날 이후 현재까지를 통틀어 가장 단란했던 그날은 내게는 너무도 행복했기에, 그 기억은 결국 아픔으로 남아있다.

사랑이란 말도 필요와 목적에 따라 얼마든지 추할 수 있다는 것 또한 그날의 기억을 통해 깨달았다.



PC에서 커버이미지의 사진을 늘일지 줄일지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줄였다.


아버지의 얼굴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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