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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동급부 May 22. 2024

소 찾기


국민학교 5학년이 될 무렵이었다. 부모님은 서울로의 이주를 고민하셨다. 아버지는 자주 서울에 다니셨고 형·누나들도 떠나 있어 엄마와 단 둘만 집에 있던 날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이 시기에 일도 많았다. 11살 많은 큰 누나부터 4살 차이의 맏형까지, 아버지가 계신 집은 너무도 조심스러운 공간이었고 그렇지 않을 때는 낙원이었다. 나 또한 절대로 예외는 아니었다.


방과 후 낙원으로 복귀하여 동네 아이들과 열심히 뛰어놀며 오랜만에 아버지의 부재가 준 자유를 만끽했다.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는데, 엄마가 창백한 얼굴로 어찌할 바를 몰라하셨다. 풀 먹이던 소를 데려 오는 중 집 앞에서 갑자기 뒷마을 쪽으로 뛰어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네 엄마와 한참을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하셨단다. 엄마는 이제 아예 주저앉으셨다.


오매~ 으째야쓰끄나 으째야쓰끄나…


옛날 시골에 소는 단순한 가축이 아니었다. 소에게 쟁기를 끌게 하면 집안에 가장 믿음직한 일꾼이 되고 달구지를 끌게 하면 짐과 사람을 싣고 나를 수 있는 최고의 운송수단이 된다. 송아지가 태어나면 우시장에 팔아, 목돈을 만지기 어려운 시골 살림에 크나 큰 보탬이 되어 주기도 한다. 소 팔아서 자식들 학교 보냈다는 말은 지난날 많은 시골집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사실이다. 소는 그야말로 집에 없어서는 안 될 가족인 것이다. 무엇보다 불평불만도 없이 묵묵히 일하고 주는 대로 먹으며 다른 자식들처럼 사고도 안치는 효자였다. 그런데 이 녀석이 가출을 했다. 어머니가 충분히 주저앉을만하다.


어쩌랴... 그 길로 무턱대고 뛰어갔다는 방향으로 향했다. 작은 산 하나를 넘어 뒷 마을에 이르는 동안 여기저기 열심히 찾아 헤맸지만 소는 보이지 않았다. 뒷 마을을 가로질로 옆 동네를 가려면 다시 산을 넘어야 한다. 산을 또 넘기는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가로등 하나 없는 산 길을 따라 한참을 또 걸었다. 그  옆동네 어귀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던 소 한 마리를 발견했다. 아주 어릴 때 소에게 받힐 뻔했던 기억이 있어 소를 무서워했던 나는, 그놈이 우리 집 소가 맞는지도 몰랐다. 작은 시골에서 그 시간에 방황하는 소가 또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길이 먼지 무서운지도 모르고 형제, 아니 암소였으니 남매인가? 아무튼 가족을 찾아 집으로 돌아왔다.


오메~ 내 새끼 내 강아지새끼~
내가 우짜다 저 놈을 낳았으까이~~


소와 나를 번갈아보며 기쁨으로 안도하시던 엄마의 모습이 너무도 좋았다. 소식을 들은 동네 아주머니 몇 분이 집에 와 계셨고 다들 삼철이 용감하다고 어머니와 비슷한 감탄사를 연발하셨다. 특히 ##네 엄마가 티 나게 부러워하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시 ##이는 공부는 절대로 안 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사고를 쳤으니 그럴 만도 했을 것이다. 한 번은 집에 불을 낸 적도 있었다.


내가 그렇게 큰 일을 했다고 생각지 않았으나 여러 어른들의 칭찬에 우쭐했던 것도 같다. 내 엄마의 격한 감탄에 의하면 우짜다(어떻게 하다) 나를 낳았는지는 민망하게 굳이 말할 것 없겠고, 강아지새끼가 가출한 소새끼를 찾아왔으니 대단한 일을 한 것은 맞는 것 같다.



지금도 간혹 소 찾은 얘기를 하시는 내 엄마를 보며,

슬퍼도 '오매~' 기뻐도 '오매~'인 내 엄마의 감탄사가 항상 기쁨의 그것이길 간절히 바란다.

그때처럼 좋아하시던 그 환한 웃음을 자주 볼 수 있기를 또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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