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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동급부 May 26. 2024

엄마의 왼팔


엄마는 왼쪽 팔을 다 펼 수가 없다. 항상 15도 정도 굽어있다.

아주 어릴 때 넘어지면서 탈구된 관절을 완벽히 결합하지 못해 영구적인 부분탈구가 된 것이다. 일을 많이 하시거나 날이 굳으면 가장 먼저 아프고 가장 많이 아픈 곳이다.

아버지의 왼손 검지 손가락도 거의 90도 가까이 굽어있어 엄마의 왼팔과 묘하게 오버랩된다.

난 가끔 이런 생각을 했다.


이것이 바로 내 부모를 상징하는 아이러니가 아닐까?


어머니는 농사일, 집안일, 명절, 아버지 생신, 연 5회의 제사 등등 그 많은 일을 대부분 혼자 하셨다.

제사만 보더라도 통상의 4번도 부족해 자손이 없는 가엾은 조상의 기일까지 차리신다. 이 의식을 다른 인척에게 넘겼던 먼 옛날 어느 해,  할머니께서 큰 병을 앓아 다시 찾아와 귀하디 귀하단다. 그날은 또 하필 섣달그믐(음력, 12월 30일)이다. 그래서 설에는 전날 밤 제사를 모시고 다음 날 새벽 차례를 지내야 하는 중노동이 불가피하다. 자식이 다섯이나 되지만 엄마의 고단한 도 왼쪽 팔처럼 아직 그대로이다.


이렇듯 엄마 말로 쎄가 빠지게 일 만하신, 그녀의 온몸과 같은 굽은 왼팔


반면, 평생 별다른 일을 하시지 않았고, 심지어 당신께서 산 가족보다 귀하게 여기는 죽은 조상들의 기념일에도 그 준비에 대한 기여는 Only One 지방을 쓰는 일뿐인 아버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더 적절한, 그의 그냥 손가락과 같은 굽은 왼손 검지 손가락

 

아버지의 검지 또한 소년기에 낫으로 무언가를 자르다가 관절을 베었고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서 하나의 모양으로 굳어버린 것이다.


아파하는 엄마의 팔을 자주 주물러 드리곤 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것뿐이었기에, 나중에 자라서 돈 많이 벌면 내 엄마의 불편한 저 팔을 꼭 수술해 주어야겠다고 참 많이 다짐했다. 그러나 공허한 다짐뿐이었다. 의학적 지식이 전무한 내 소견으로도 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 방법이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병원라도 한 번 모시고 가지 못한 죄스러움이 있다. 어머니가 서계신 모습을 보면 난 항상 왼팔에 눈이 가고 마음이 간다.


오래전 사촌 누나가 집에 와 찍어주었던 사진에도 굽은 팔은 확연하다. 그 사진 속에 나는 그래도 곁에 있어 주무르기라도 했지만, 멀리 있는 지금의 나는 그 조차 해 드리지 못한다.

나중이고 자랐고 많이는 아닐지라도 돈은 버는데…


지난주 갑작스러운 작은할아버지(할아버지의 배다른 동생)의 부고를 듣고 시골로 향했다. 문상보다는 어머니 뵙고 그토록 보고 싶어 하시는 하나뿐인 아들 손주를 보여드리기 위해 세 식구가 시골집에 며칠 머물렀다. 돌아오는 날 아침, 나와의 담소를 좋아하시는 어머니는 내가 모두 알고 있는 일화를 신기할 만큼 동일한 어휘로 또 말씀하셨다. 여러 레퍼토리 중 할머니 장례식 때의 애잔한 내 사진이야기를 하시며 눈물을 훔치신다. 격해진 감정에 걷어 올린 왼팔에는 살색 파스가 붙어 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난 그 모습을 애써 외면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 안마 한 번 해드리지 않은 것이 못내 가슴을 아프게 한다.


돌아오기 하루 전 날부터였다. 작은 단지로 선산에 묻히는 자신의 모습을 표정없이 지켜보는 할아버지의 영정사진이 시야에 들어오자 내 눈 아래에서 불쑥 올라온 것과 함께 하나의 생각이 찾아왔다.


영원히 나를 떠나게 되는 날...

마지막으로 반드시 굽어 보게 될, 절대로 다시는 보지 못할 내 엄마의 왼쪽 굽은 팔이 내 시야에 들어온다면…

내 죄는 나의 가슴을 얼마나 찢어 놓을까? 찢긴 가슴으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요즘 난 모니터 앞에서 참 많이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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