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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동급부 Sep 29. 2024

마음의 거리

경이

오늘은 토요일이야. 비가 많이 와서 나가지도 못하구 이렇게 집에만 있어. TV나 좀 볼까 하구 켰는데 정규방송은 하나두 안 하고 계속 뉴스속보만 나와. 아침부터 여지껏. 그래 딱히 할 일도 없고 낮잠을 자자니 것도 그렇구 읽을만한 책두 없구, 음악두 별루고 해서 또 이렇게 편질 쓴다. 왠지 모르게 편지 쓰면 시간두 잘 가구 시시하지두 않고, 편지 쓰다가 가끔 거울 보며 표정관리도 해보고 웃어보기도 하며 혼자 놀구 있어.

우리집은 약간 지대가 높아서 비 피해는 없지만 다른 데는 정말 심하더라. 동두천도 그렇고, 중랑천 일대두 물에 잠기고. 참, 너네집은 괜찮니?

네가 군에 가기 전에 노래 음성으로 넣어줬었지. 이범학의 '마음의 거리'
그 노래를 장기보존해서 여지껏 듣고 있었는데, 오늘 들으려고 보니까 지워졌드라. 섭섭하게 시리... 그래서 그냥 나 혼자 부르고 있어. 인제 나두 그 노래 다 알어. 따라 부를 수 있을 만큼은 말아. 근데 거 말구두 '착한 사랑' 것두 좋았는데. 많이 불러주고 가지. 짜식...

너한테 편지 쓸려고 샀던 우표를 벌써 다 써버렸어. 보통우표를 붙여두 되는 거긴 하지만 왠지 빨리 보내고 싶은 마음에 그게 잘 안 되는 거 있지. 그래서 항상 빠른우표를 붙이니까 샀던걸 다 써버렸어. 너한테 편지 보내는 거니까 네가 사줘야 돼? 우표! 안 그러면 나 편지 안쓰지롱... 히히...

어제 쓴 편지에 너무 수다를 많이 떨어서 그런지 오늘은 별루 할 말이 없네. 그럼 오늘은 이만 써야겠어. 너두 지루할 테니.
참, 형한테 얘기 듣긴 했는데, 처음에 세 통 말구두 모두 받은 거지? 작은형이 그러시더라구 4주는 훈련 거기서 받고 2주는 다른 데서 받는다고 빨리 보내라구. 지금 벌써 다른 데로 옮긴 거야? 혹시 못 받는 건 아닌가 걱정돼서...

그래, 그럼 잘 지내.
글씨가 엉망이야. 성의 없어서 미안해... 이해해.


1998. 8. 9.



너의 손을 처음 잡았던 그날
그 사랑의 시작이 바래기 전에
미안하단 말 한마디로 깨어지는 사랑
왜 그땐 알지 못했나
잠들기 전 흘러내린 이 눈물
그 꿈같던 지난 기억이 담겨진
안녕이란 인사 뒤로 부서지는 사랑
왜 그땐 알지 못했나

사랑하는 마음을 말로 하면 멀어지는 걸
향기가 다 해진 꽃 같은 것
사랑하는 사람이 어려우면 멀어지는 걸
나를 잃는 서글픔만
눈물이 가르쳐 준 너와 나의
그 수평선 같은 거리
만남도 헤어짐도 아닌
어색한 마음의 거리

왜 그땐 몰랐나 아무런 바램도
욕심도 없을 때 가까워짐을

사랑하는 마음을 말로 하면 멀어지는 걸
향기가 다 해진 꽃 같은 것
사랑하는 사람이 어려우면 멀어지는 걸
나를 잃는 서글픔만
눈물이 가르쳐 준 너와 나의
그 수평선 같은 거리
만남도 헤어짐도 아닌
어색한 마음의 거리

왜 그땐 몰랐나 아무런 바램도
욕심도 없을 때 가까워짐을

눈물이 가르쳐 준 너와 나의
그 수평선 같은 거리
만남도 헤어짐도 아닌
어색한 마음의 거리

왜 그땐 몰랐나 아무런 바램도
욕심도 없을 때 가까워짐을



그녀를 처음 만났던 즈음 내가 좋아하던 노래 '마음의 거리',

우리 사이에 변곡점이 되었던 몇 곡을 포함하여 아내와 내가 간혹 추억을 회상하며 찾아 듣는 곡이다.


나는 그녀의 손을 처음 잡았던 때를 기억한다.

신촌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기 전에 내가 그녀의 손을 잡아끌어 함께 철 계단에 올라섰다. 잠시 주춤하던 그녀는 내 손을 뿌리치지 않았고 우리는 손을 맞잡은 채로 한참을 걸었다. 물론, 자연스러울 수 있는 상황을 노린 의도적 접촉이었다.

노래의 가사처럼 그녀의 손을 처음 잡았던 그날 우리의 사랑도 시작되었다.


나는 혼자 노래 부르기를 좋아한다.

아쉽게 선택받진 못했지만, 모 가수의 앨범에 가사를 쓰기도  만큼 특히 노랫말에 관심이 많다. 노래의 딱 절반은 노랫말이라는 것이 지론인지라 곡이 맘에 들면 가사도 꼼꼼하게 살펴보고 외우곤 한다. 팝송이나 영문가사의 곡도 예외는 아니다. 가장 최근에는 - 물론 상당한 시간이 지났지만 - BTS의 Permission to Danc의 그것을 아이와 함께 외워보자고 댐볐다가 죽는 줄 알았다. 암기력이 좋아 신동소리 듣던 난데... -_-


국민학교를 들어갈 즈음까지는 한두 번 노래를 들으면 가사까지 외워 따라 부를 수 있었다. 부모님은 내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 노래들을 자주 들으셨기에 자연스럽게 족족 따라 부르곤 했다. 그리하여 섬마을 선생님, 동백 아가씨, 아씨, 안개 낀 장충단 공원, 돌아가는 삼각지, 고향 아줌마 등등 무수한 옛 노래들을 완벽하게 기억하고 있다. 최근 트롯의 바람이 불어 방송에서 간혹 아주 오래된 곡들이 나오곤 하는데, 스스로 알고 있는지조차도 모르던 그것들을 술술 따라 부르는 나를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한다. 그럴 때면 정말 내가 많이 늙은 것만 같다. 세월이란 게 참... 아니면 공교육이 병폐인가? 어쨌든 국민학교 입학 이후에 더 멍청해진 것은 분명하다. 내가 몬 소릴 하는 건지. 요즘 간혹 내 글에서 아내 편지의 데자뷰를 느낀다.


노랫말에 진심인 나에게도 ‘마음의 거리’는 난해하다.

쉬운 문구이지만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한 그 속뜻을 완벽하게 이해하기는 어렵다. 생각해 보면 그녀와 나의 이야기도 담겨 있는 듯하다.

손을 맞잡으며 시작된 우리의 사랑도 우여곡절은 많았다. 군대라는 부자유 속에 있는 나로 인해 만남도 헤어짐도, 친구도 연인도 아닌 어색한 사이로 오랜 시간을 보냈다. 이후 많이 싸우기도 하고 며칠 또는 몇 주 연락을 하지 않은 경우도 빈번했고 몇 개월 헤어졌다 다시 만나기도 했다. 그 헤어짐 속에서 그녀에 대한 소중함을 가르쳐 준 것은 역시 눈물이었다. 사랑하던 그녀의 어려움을 알고 내 마음의 거리가 멀어지기도 했다.


왜 그땐 몰랐나 아무런 바램도

욕심도 없을 때 가까워짐을


맞다. 지금은 확실히 깨닫고 있지만, 그때는 몰랐다.

어떤 사이이든 아무런 바람도 욕심도 없을 때 진정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군인시절에는 서로에게 아무런 바람도 욕심도 없었기에 그녀와 급속히 가까워질 수 있었다. 난 그녀를 여자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은 채 입대했고, 그녀 또한 나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리를 지켰을 뿐이라고 한결같이 얘기한다. 제대 이후에는 서로의 앞에 놓인 현실과 그로 인한 바람과 욕심들로 멀어졌다 가까워졌다를 반복했던 것 같다.


결혼을 하면 부부라는 법적·관습적인 공식 관계로 인해 이전에 없던 무수한 바람과 욕심이 생겨나고 그것들이 가지를 쳐 2세를 낳고 2세는 다시 3세를 잉태하기 마련이다. 항상 다가가도 평행선을 유지하는 수평선 같은 그 마음의 거리는 바로 이 무수한 바람과 욕심들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각자의 삶을 살던 사람이 언제나 내 곁에서 식사를 챙기고 급히 필요해진 가을 옷을 걱정하며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만으로 행복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면 배우자가 고맙고 사랑스러울 것이다.


적어도 나는 자연스럽게 형성된, 가지나 2·3세들이 없는 환경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떠나 살 수 없는 사이까지 근접했기에 늦게라도 부부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또한 그 시기가 있었기에 남들보다 더 수월하게 마음의 거리가 준 깨달음을 체득한 것이리라.

그래서인지 여전히 나는 아내가 고맙고 예쁘고 사랑스럽다.


하지만 우리에게 시간은 유한하다.

이 글을 읽고 공감할 나이라면 수평선과 같은 서로 간의 마음의 거리가 좁혀질 수 있는 시간이 넉넉지 못할 수도 있다.

꼭 눈물의 가르침을 받고 나서야 깨닫는다면 늦지 않겠는가?

이를 씀에 내 양심 가책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랑이 전과 같지 않은 모든 이들에게 고한다.



이미 사랑하고 있는 사람과의 마음의 거리 또한 아무런 바람도 욕심도 없을 때 더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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