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경
오늘은 일요일인데 어제부터 통 밖엘 나가지 못해서 또 편지를 한꺼번에 보내게 됐어. 싫어두 할 수 없씀.
……
너 내가 제일 바라는 게 뭔 줄 아니?
뭐 남들은 부자가 되는 것 하구 또 사회적 명성을 얻는 거 하구. 또 자기가 하고 싶은 일들을 목표로 세우고 또 소원으로 삼기도 하지만, 난 굉장히 소박한 꿈이야. 그렇지만 이루어지기 힘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넌 그랬었지. 사랑하는 사람과 무인도에서 단둘이 살고 싶다고. 나두 거와 비슷하긴 한데 좀 틀리지. 난 아주 평범하게 살고 싶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또 나의 자식들과 정원이 있는 아담하구 이쁜 집에... 주말엔 가족들과 여행을 떠나구 슈퍼마켓에서 남편은 카트를 밀고 나는 물건을 골라 넣구. 우리가 만든 집에 손수 우리가 꾸민 집... 그래 거 생각하믄 되겠구나. ‘편지’(영화)에서 환규와 정인(이름 맞나?)이네 집처럼 아주 행복하게 그렇게. 난 외로운 건 싫으니깐 아이들은 많이... 북적북적대게. 역시 남는 건 형제뿐인 거야. 가끔은 분위기 있는 음악을 틀어놓고 브루스도 추고. 서로 말하지 않아두 나의 아픔까지 느낄 수 있는 그런 사랑. 바라만 봐두 행복하구. 먹지않아두 배 부르고. 내 목숨두 아깝지 않은…
겉으로 보기엔 참으로 평범한 거 같은데 나이 먹어서까지 이렇게 사는 사람들 글쎄 별루 없는 거 같더라. 그래서 어쩜 한때의 좋은 추억만으로 평생을 사는 게 아닌가 싶어. 좋았을 때를 생각하면서. 하지만 난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 아주 행복하게. 영원히. 그렇게 살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그냥 혼자 사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럼 다들 그러겠다. 그냥 평생 혼자 살으라고… 후휴…
그럼 그러지 머. 나 혼자 살지 머… 쪼끔은 외롭게. 슬프게.
하지만 넌 행복하게 살어야 해.
행복을 위한 조리법
첫째, 많은 양의 기쁨을 그릇에 담아 계속해서 끓인다.
둘째, 거기에다 한 양동이 가득 넘칠 만한 친절을 붓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를 아주 넉넉하게 넣는다. 그리고 큰 숟가락으로 가득 연민을 섞고, 자애의 본질을 양념으로 넣는다.
셋째, 그것들을 함께 젓다가 주의 깊게 살펴서 이기심의 조각이 보이면 얼른 건져 버린다. 그리고 이제 사랑이라는 소스와 함께 식탁에 올리면 된다.
아냐. 넌 행복하게 살 거야. 넌 누구한테나 친절하잖아. 다정다감하구 여자한테 잘해주고, 여자 눈에 눈물 나는 건 절대로 못 보는(너로 인해서 여자 눈에 난 눈물) 그런 사람 이잖아. 넌 그러니깐 너 여자한테 잘해줄 거야. 아냐, 근데 그런 사람이 한눈 많이 팔더라. 너두 그랬잖아 한눈팔았잖아. 그래두 사람이 자기 성격을 고치기란 쉽지 않은 법. 넌 아마 계속 그럴 거 같애.
그러니까 나한테두 잘해줬고 아무한테나...
그런 반면 너 주먹 되게 아펐어. 담부턴 다른 여자들 때리지 마. 장난으로 던진 짱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고 나두 거의 죽을 뻔(?) 했어. 얼마나 아펐다구. 너 다른 사람들한테는 안 그러지?
너 나한테는 더 잘해야 해 인마. 난 누나잖아. 한 살 차이가 얼마나 대단한 줄 알어?
너 하루종일 학교에서 수업받고 야자 할 때 난 인마. 나이트에서 춤췄고 술 마시고. 에또. 너 유치원 다닐 때 난 초등학교 다녔구. 너 중학교 다닐 때 난 고등학교 다녔다. 그리구 또... 너 고등학생관람가 영화 볼 때 나는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 봤다. 혼자 씩씩댔더니 숨차다.
헉~ 에구구. 인제 이 편지지도 마지막이네. 사다 놓은 거 다 썼다. 담에 사야지. 아니. 네가 사주고 가라. 네 맘에 드는 걸루. 그럼 담부턴 그걸루 써 줄께.
오늘도 어김없이 졸립다. 너두 알잖어. 나 잠 많은 거. 그런 내가 이렇게 시간을 쪼개가면서 너한테 편지 쓰고 있다. 나 정말 착한 누나지? 요즘은 잠두 많이 못 자거든. 그렇게 잠 많은 내가 잠을 많이 못 잔다구 생각해봐바. 미치지. 그래서 거의 차 안에서 자. 아니믄 퇴근해서 집에 오면 바로 자거나. 한 시간쯤. 그러면 피곤이 확 풀려. 그래서 솔직히 별루 피곤한 건 몰라. 그러니 혹 걱정일랑 하지마. 물론 걱정 안 할 거라고 생각해. 보면 알겠지만 나 건강해. 너 가기 전보다 더 좋아졌어. 그래두 뭐니 뭐니 해두 일을 한다는 게 참 즐거워. 하루종일 집에만 있는 것보다. 그래서 힘든 줄 모르고 살아. 물론 별루 힘들지두 않어. 진짜루.
너두 푹 쉬고. 잠두 최대한으로 많이 자구. 밥두 많이 먹구.
그렇게 해. 알았찌?
그래. 그럼 안녕.
1998. 8.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