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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동급부 Sep 25. 2024

홀로서기


1.
지난밤에도 당신은 내게로 와서 또다시 잃어버린 사랑을 이야기했습니다. 어떻게 그 아픔을 이겨내야 할지 당신은 내 어깨에 머리를 묻고 울었습니다.
나는 당신의 눈물을 닦아주며 내일이면 다시 누군가 새로운 사랑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마침내 당신은 마음이 가라앉고 내 뺨에 입 맞추고는 당신의 세계로 돌아갔습니다.
텅 빈 아파트를 둘러봅니다. 이제 다시 혼자가 되었습니다. 연인들을 바라보며 홀로 걷던 공원의 산책을 나 혼자뿐인 아침식사를 그리고 혼자 보던 영화를 머리에 떠올립니다. TV 가이드로 손을 뻗으며 나는 얼굴을 적시며 흐르는 눈물 한줄기를 느낍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대어 울 어깨라도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홀로 울 수밖에 없는 운명인가 봅니다.

2.
퍽 많은 사람들이 안녕이라는 말을 합니다. 하지만 저는 두렵습니다. 왜냐하면 그 말은 너무나 자주 “이젠… 안녕”이라는 말로 끝나버리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편지상자를 뒤적거려 봤어... 꽤 많은 편지들이 있더라. 옛날에 서로 주고받았던 유치원 때 남자친구, 중학교 때 친구들, 학교 선생님, 회사 언니 동료들... 그러고 보면 난 세상을 그렇게 각박하게 산건 아니었나 봐. 지금은 좀 그렇지만.

그중에서 중학교 때 어울렸던 친구가 편지 중에 이런 글을 써서 보냈더라구... 나도 참. 그땐 읽는다고 읽은 거 같은데, 지금 새로 읽으니깐 생소해. 그 친구가 쓴 편지에 이런 얘기가 있었거든. 밴드 활동을 한다구. 그중에서 그 친군 드럼을 맡았는데 재미있다고. 하고 싶은 음악을 하게 돼서 좋다고. 그 아이가 너무 궁금해서 앨범에 나와있는 전화로 연락을 했는데 아쉽게두... 전화번호가 바뀌었더라구... 그래서 다른 친구에게 연락했어. 근데 좀 불안하기도 하다. 친구란 만나면 편해야 하는 건데... 전화를 끊고 난 지금은 불안하기까지 하다. 왜 이러는지...

중학교 때 어울리던 친구들이 모두 나까지 여섯, 근데 그중에서 두 명만 한 2년 전까지 연락을 하고 또 끊겼었거든. 요번에 만나게 되믄 한 명만 빼구 다 만날 수 있을 거 같애. 다들 자기 생활에 열심인 거 같더라구. 스물셋에 결혼 소식도 가끔 들리구... 누구한테 내 친구 얘기를 해본 적 별루 없었는데, 편지라서 그런지 왠지 너한테는 하게 되는구나. 너두 아마 마주 보고 있다면...

내가 아마 저번에두 썼을걸. 마음이 별로 좋질 못하다구. 근데 지금도 역시 그래. 쉽게 풀릴 거 같지가 않아. 풀릴 것 같기두 한데 일이 또 꼬이고 오늘도 좀 내겐 벅찬하루였어. 몸이 피곤하고 힘들기보다는 마음이 좀 그래. 많이 어둡고 왠지 모르게 사소한 일에 속상하구 마음만 그렇지 뜻대로 되는 일도 없구.

나중에 아주 아주 나중에 우리가 서로 아무런 허물이 없어질 때, 그땐 너와 더 많은 얘길 나누고 싶어. 그땐 아마 네가 날 이해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 이해한다기보단 당연한 거라구... 생각할 거야.

......

너 요즘 어떻게 지내? 그래 훈련병의 하루 일과가 그렇고 그렇겠지. 반찬은 맛있는 거 많이 나오니? 혹시 너 싫어하는 피자나 스파게티 나오는 거 아니겠지? 그러고 보니 네가 무얼, 아니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내가 잘 모르는구나. 항상 내가 먹고 싶은 대로만 다녀서 넌 무얼 좋아하는지 생각 못해봤어. 그래 생각났다. 너 콜라 좋아하잖아. 음, 글구 또 머가 있을까? 아하! 파인주스. 근데 어쩌니? 군에선 이런 거 못 먹지 않니? 근데 자대배치받으면 어쩜 먹을 수도 있겠구나. 내 사촌은 해군인데 배에 자판기며 뭐 없는 게 없다드라고. 걔두 콜라 좋아하는데 자주 먹나 봐. 그러고 보면 요즘 군대 많이 좋아진 거 같애. 아님 육군만 빼고 원래 좋았는지도 모르지만...

또 넌 뭘 하고 지낼까? 일어나는 시간은 몇 시이고 잠들기 전까지는 무얼 하는지 특박 나오면 얘기 많이 해주라. 그날은 네 얘기만 듣고 있을께... 너의 얘기를 많이 못 들은 거 같애. 나만 혼자 떠들고 웃고 장난치고, 그랬었지? 앞으론 네 얘기 많이 해줘. 옛날 사랑얘기, 추억들, 앞으로의 얘기 등등 너 거기 있으니깐 궁금한 게 되게 많어.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처럼 내가 느끼기에 넌 부담 없고 좋은 친구로 생각되. (넌 어떨지 모르지만…) 근데 생각과는 달리 너에 대해 아는 게 별루 없더라구. 어디에 사는지, 이름이 뭔지, 학교는 어딘지, 나이는 몇이고, 또 생김새는 이렇구. 아주 평범한 것들만 알고 있더라구. (내가 너에 대해 더 아는 게 싫다면 할 수 없는 거고.)

편지 많이 오니? 나 말구두... 그 대전 사는 여학생... 도 있고 학교 친구들도 있고, 별루 친하지 않았더라도 주소 많이 알려줘. 군대에서 낙이라곤 편지 받아보는 거밖에 더 있을까. 이 사람 저 사람한테 편지 받으면 좋잖아. 그러면 하루에 몇 통을 받을 수도 있을 테고. 그러다 보면 친해지고 정드는 사람두 있을꺼구. 그래 네 나이에 아직 이르다 할 수 있지만은… (내가 몬 소릴 한 거지?)

나한테는 즐거운 소식이 있다. 군에서 듣는 너는 샘나겠지만 이 편지가 어쩜 훈련소에서 받아보는 마지막 편지가 될지도 모를 거란 생각에 지금 얘기한다. 나 16일 케리비안베이(용인) 간다. 친구들하고. 나 올여름 휴가도 못 갔잖아. 그래서 그날 친구들과 놀러 가기루 했어. 휴일에 가면 사람이 너무 많을 것 같애서 평일에 갈려구 했는데 것두 힘든 거 있지. 애들이 많다 보니까 딱 정해지는 날짜가 없드라구. 그래서 그냥 일요일루 했어. 23일에 갈까 하다가 너무 늦으면 물에 들어가는 게 썰렁할까 봐. 쫌 뜨거울 때 갔다 올려구. 요번 주에 갔으면 큰일 날뻔했어. 왜냐믄, 14일까지 비가 계속 온대. 일요일인 9일도 억수로 오고. 그래서 날짜는 잘 정한 거 같애. 재미있게 놀다 오라고 해줘. 네가 그래주면 지금의 이런 심란한 마음까지 모두.... 거기에 두고 올 수 있을 것 같애. 아냐. 나는 오래 생각하는 편이 아니니깐 내일이면 괜찮아질 거야. (또 헛소리)

오늘도 역시 쓰다 보니깐 다섯 장이 훌쩍 넘어가는구나. 사람들이 오해하겠다. 애인인 줄 알 거 아냐. 하하... 서로에 대해 별로 신경 안 쓰니? 그건 아닐 것 같애. 가장 힘든 시기에 한 배를 탄 사람들이니까. 서로 친해질 수 있을 거란 생각. 그리고 너라면 충분히 친해질 수 있을 거야.


술잔 속에서 그대가
웃고 있을 때, 나는
노래를 부른다. 사랑의 노래를...
보고 싶은 마음들은
언젠가 별이 되겠지
그 사랑을 위해
목숨 건 때가 있다면
내 아픔들을 모두 보여주며
눈물의 삶을 얘기해야지
연기처럼 사라지는 인생을 위해
썩어지는 육신을 위해
우리는 너무 노력하고 있다.
노을의 붉은빛을 닮은
사랑의 얼굴로
이제는 사랑을 위해
내가 서야 한다
서 있어야 한다.

(홀로서기 3. 中)



이것두 누군가가 내게 써준 글인데, 그 사람은 간데없고 글만 남았구나.
안녕이란 말은 여기에 대신 써야겠네.
그럼. 언제나 몸 건강하구. 집에 편지 자주해드리고.
군대 가니까 가족들이 그립지?


1998. 8. 8.



이어진 우울한 편지, 

장문의 문과 적어준 글귀...

이 누나 정서적으로 참 불안해 보인다.

그런 마음들을 추스르며 써 내려간 긴 문장들일 것이다.

편지  그녀의 바람대로 아주 아주 나중에 우리는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아주 아주 나중이 된 시간까지 함께 했기에 서로의 자랑스럽지 못한 부분까지도 모두 아는 사이가 되었다. 

서로에게 친구, 연인이었을 뿐 아니라 때론 서로의 가족보다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 우리다.


묻지는 않았지만 그녀를 싸고 있는 우울함의 원인을 알 것 같다. 말미에 적어준 시가 속한 시집의 제목처럼, 그녀는 마음의 홀로서기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과정 속에서 나를 만났고 이후 주로 편지를 통해 이어져온 나와의 교감이 그녀에게 작게나마 힘이 돼 주었던 것 같다.

나의 군 생활의 유일한 위안이 그녀였던 것처럼 말이다.


지금 그녀는 나의 아내이다.

지금의 내가 이때로 돌아간다면, 그녀에게



지금은 힘들고 가슴아플지라도 결국내가 네 모든 상처까지도 보듬고 사랑해 줄 것이니, 아무 걱정 말고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며 심란한 마음 모두 그곳에 두고 평소의 너처럼 밝은 모습으로 돌아오라고...


이미 너에게는 필요하다면 대 울 수 있는 내 어깨가 있을 뿐 아니라, 적어도 나로 인해 나 아닌 누군가에게 기대야 할 상황을 만들지 않도록 노력하며 내가 네 곁에서 평생을 함께할 것이라고 꼭 말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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