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픈 철이에게...
올여름은 무지 더울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과는 달리 그래두 양호한 편인 거 같애. 또 모르지. 언제 기온이 올라갈지. 하지만 아직까지 그렇게 참지 못 할 만큼의 더위는 없었던 거 같아. 좀 지루하긴 했지만 비두 내려주었고 어제오늘은 그럭저럭 지낼만하였고 얼마 남지 않은 여름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유지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훈련받는 너두 수월할 테고 외근 다니는 나도 덜 힘들고... 히히... 너무 이기적인 생각은 아니지? 그럼 그럼.
내일이면 널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몇 시쯤 나와서 서울엔 언제 도착할까?’, ‘나한테 연락은 할까?’, ‘아냐, 친구들 만나느라고 못할지도 몰라.’ 하면서 속으로 생각하구 있었는데...
형한테서 몇 주 후에나 나온다는 말을 듣고 꽤 많이 섭섭했어. 게다가 이젠 계속 진주에 있어야 한다니...
것봐. 인마! 하늘이 정해준 짝을 그렇게 차버리는 거 아닌데... 그 부산친구 지금껏 만났으면 얼마나 좋아. 부산서 진주 가까우니까 자주 면회 올 테고... 나 같은 친구 면회 안 온다고 구박하지도 않을 테고... 하긴 그렇다. 네가 그 친구랑 여적 지냈으면 나 거들떠나 봤겠어. 개밥의 도토리. 엄마 잃은 강아지...(<- 이건 아닌가 봐~)
… …
참. 야! 너 왜 나한테 편지 안 써.
이쒸. 내가 형한테 라두 부탁하라고 했잖아. 인마. 바보야 흥. 쓰기 싫음 말라지. 그럼 나두 안쓰지롱. 메롱. 약오르지롱. (메롱하는 혓바닥 모양 그림)
이때까지 편지 받아본 소감이 어때? 별루지. 그냥 보내준 거니까 할 수 없이 읽는다. 내용이 뭐 그리 중요하냐. 몇 통을 받느냐가 문제지. 많이만 보내다오. 내무반에서 스타 되게, 뭐 이렇게 생각하는 거 아니겠지? 설마? 그럼 너 주금이다. 왜 이런 얘길 하냐구? 보내면서두 은근히 걱정되어서. 내가 원래 나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다 하잖아. 기껏 이런저런 얘기 써서 보내구 나면 한편으로 걱정되구 또 네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면 한편으론 섭섭하구. 나두 모르겠어. 다행인가 모르지만 너한테 보낸 그 편지들에 무슨 내용을 써서 보냈는지 잘 기억이 안 남. 대충 생각나는 건 하루 일과를 썼겠지. 그래서 편지에 이런저런 얘기를 쓰면서 내가 이런 얘길 썼던가 싶을 정도로. 심히 걱정되지? 나는 더하다. 앞으로 이런 까마귀 정신 갖구 이 험난한 세상을 어찌 사냐.
특히, 나 같은 독신주의자가. 입으로 독신주의라 부르짖어서 결혼도 못할 테고. 평생 이리 혼자 청승맞게 늙어가는구나.(근데 너 좀 헷갈리겠다. 이 애기 썼다가 저 얘기 썼다가 내가 봐두 그렇다. 난 왜 이리 중구난방인지.)
... ...
항상 편지를 쓰면(누구한테나) 처음부터 끝까지 꼭 읽어본다. 근데 그렇게 읽어보구 편질 부칠려면 부치기 싫어. 맘에 안 드는 부분이 많거든. 물론 누구한테 잘 보일려구 편지 쓰는 거 아니지만 왜 이렇게 썼을까. 이런 부분의 말 연결이 부드럽지 않은 거 같애. 혹은 이런 얘길 괜히 썼나 봐. 말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 등등... 그래서 편지는 읽어보고 부치는 거 아니더라. 읽어보면 후회가 돼서 보내기 싫어진다구. 난 그걸 알면서두 항상 빼먹지 않구 읽어봐. 물론 한통도 안 보낸 적두 없지만...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하지. ‘이 편지 읽어보는 넌 무슨 생각을 할까?’하고 말야.
밤이 늦었다. 피곤이 풀리게 잠에만 열중하도록.
꿈은 되도록 꾸지 않는 게 좋지만 꾸게 된다면 좋은 꿈 꾸길. 또 언제나 행복하길.
그럼 다음에 또 편지할께.
1998. 8. 20.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살고 싶다.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사랑하고 싶다.
두눈박이 물고기처럼 세상을 살기 위해
평생을 두 마리가 함께 붙어 다녔다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사랑하고 싶다.
우리에게 시간은 충분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만큼 사랑하지 않았을 뿐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
혼자 있으면
그 혼자 있음이 금방 들켜버리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목숨을 다해 사랑하고 싶다.
노을 지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기 위해서는 일몰을 기다려야 하지만 일몰이 지나면 하루는 가버린다. 우리에게 시간이 언제나 충분한 것은 아니다.
부족한 나에 대한 조바심이 든다. 그리고 이미 정해진 이별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우리는 유한함을 알면서도 무한한 듯 살고 있다.
내가 줄 수 있는 사랑 또한 유한하다는 것만 이라도 잊지 않고 사랑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