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전염성에 관하여
많은 사람들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만, 내 주변 지인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열에 아홉은 대인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이야기했다. 나 또한 약 8년의 회사생활을 하면서 대인관계의 스트레스가 퇴사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L모 기업에서 근무할 때 내가 소속된 팀은 임원으로 승진할 팀장들이 꼭 거쳐가는 팀이었다. 그래서 8년 정도 근무하며, 약 8명의 팀장을 만났다. 그 중 6번째 팀장은 과거 해외 법인에서 본 적 있던 사람인데, 일에 매우 열정적이며, 자신의 현재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사람이었다. 그 팀장이 온 후 팀의 분위기는 많이 바뀌었다. 그는 과거의 다른 팀장보다 더 많이 팀원들을 질책했다. 아무래도 주요 캐리어를 쌓을 기회이다 보니 조바심이 날 수 있겠지만, 그 팀장은 내가 모신 8명의 팀장중 가장 성격이 급했고, 처음 들어본 욕을 많이 사용했다. 팀장에게 질책을 받고 나면 나는 파트원들과 매번 팀장의 험담을 했다. 물론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저히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일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팀장의 언행에 분노하며 험담을 하면 파트원들은 조용히 내 말을 들어주거나 동조하였지만, 파트장은 나에게 "회사라서 그렇지, 밖에서 만나면 다 좋은 사람이다."라고 오히려 팀장을 두둔하는 말을 했다. 사실 파트에서 가장 많이 깨지는 사람은 파트장이지만, 파트장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때마다, '요놈의 주둥이가 오늘도 실수했구나.' 하며 반성을 했다. 하지만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나는 금세 그 사실을 까먹고 매번 팀장에게 욕을 먹으면 조건 반사적으로 팀장의 험담을 하고 선배의 말을 듣고 반성을 했다. 혹여 팀장에게 내가 험담을 했다는 사실이 전달된다면, 나와 팀장의 관계는 더욱 나빠질 수도 있겠지만 그런 걱정은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팀장은 항상 분노가 찬 상태였고, 그 분노는 항상 맥시멈이라 내 험담을 듣고 나에게 화가 나더라도 아마 나는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와 팀장의 사이는 사실 더 나빠질수 있는 사이도 아니었다.
6번째 팀장에게 욕먹은 지 몇 개월이 지났고, 나는 파트장에게서 몇 가지 작은 변화를 감지했다. 첫 번째는 나의 팀장 험담을 들어주던 파트장이 가끔 나의 험담에 동조를 해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제 파트장도 나와 한통속이 된 것이다. 두 번째는 파트장이 마치 팀장처럼 종종 흥분한 상태가 되어갔고, 분노한 자신의 감정을 나에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파트장은 경력사원으로 내가 재직하던 회사로 이직해 왔다. 그리고 처음 몇 개월은 나에게서 일을 배웠고, 그 후 내가 있는 파트의 장이 되었다. 우리는 많이 친했고, 그 친분은 내가 파트원이 되어도 지속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파트장의 심경은 눈에 띄게 변했다. 그리고 파트장과 나와의 관계도 미묘하게 예전과는 달라졌다. 나는 파트장에게서 더 많이 팀장과 닮은 행동들을 발견했다.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난 어느 날 파트장은 갑작스럽게 퇴사하게 되었다. 사유는 자녀가 아파서인데, 나는 사실 그 이유만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줄줄이 2명의 팀원이 추가로 퇴사를 하고 심지어 나는 대리 3년 차에 파트장 업무를 대리하게 되었다. 4명이던 파트는 2명이서 운영되었고, 안그래도 늦던 퇴근은 더욱 늦어졌다. 몇 년이 지나 8번째 팀장을 마지막으로 나도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과거 나의 파트장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파트장은 나와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여유롭고 차분했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나는 오랜만에 과거를 회상하며 파트장에게 우리가 만났던 6번째 팀장 험담을 했다. 그리고 파트장에게 오랜만에 "밖에서 만나면 다 좋은 사람이다."라는 말을 들었다.
왜 우리는 밖에서 만나면 다 좋은 사람인데 직장에서 서로가 서로를 힘들게 할까?
내가 근무한 곳의 조직은 하나의 피라미드 모양의 구조로 되어있고, 폐쇄적인 형태를 띠었다. 그리고 마치 가장 꼭대기의 물이 오염되면 아래에 있는 물도 오염되는 것처럼 피라미드 상위에 있는 사람의 분노는 자연스럽게 하위의 피라미드에 있는 사람에게 전해지는 것을 보았다. 결국 가장 상위에 있는 몇몇 사람의 분노가 조직 전체를 여유가 없고, 서로가 서로에게 분노하도록 전염시켰기 때문에 나와 파트장 같은 사람들이 생겨난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물론 6번째 팀장도 누군가로부터 분노에 전염된 사람일 수도 있다. 다만, 전 직장 동료로부터 간간히 6번째 팀장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 그는 여전히 분노에 가득 차 살고 있다고 한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분노하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위치에 있는지 알고 지금부터라도 함께하는 직장 동료들에게 분노 대신 즐거움을 선사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