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직장을 그만둘 당시 딱히 무엇인가 하고 싶은 일은 없었다. 그냥 그곳을 너무 떠나고 싶었다. 특히 누군가와 소통하는 일에 꽤 지쳐있었던 것 같다. 소통하고 싶지 않은 사람과 지속적으로 소통해야 하는 상황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그렇기에 월급을 받는다는 주변 동료의 위로에도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 퇴사 이후 누군가와 소통하는 일을 조금 단절했다. 그리고 나는 건강과 여유를 찾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소통하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 회사생활이 힘들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5년 동안 자영업과 재취업을 준비하며, 나라는 사람은 오히려 소통 없는 상황에서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마디로 나는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결국 내가 힘들었던 이유는 그 회사라는 공간에서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소통이 힘들었던 것이지 소통이라는 것을 힘들어했던 건 아니었다.
회사는 다양한 소통이 일어나는 공간이고 내가 머물렀던 그 공간은 건강한 소통이 부족했다. 그래서 내가 정서적으로 아팠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건강한 소통이란 정서적으로 서로 탈이 없고 서로를 이해함으로 마음이 튼튼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반대로 건강하지 못한 소통은 둘 중 한 명 혹은 둘 다 정서적으로 탈이 생기고, 서로를 이해하기 점점 어려워져 불신만 쌓이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건강하지 못한 소통을 지속하게 되면 타인에 대한 만성적인 불신이 생기고 그로 인해 가까운 사람과의 소통에도 장애가 발생한다는 것을 경험했다.
사실 건강한 소통에 대해서 글을 쓰는 이유는 바로 내가 소통 능력이 부족하여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한 경험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소통을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었다. 결국 소통이라는 것은 혼자 할 수 없는 행위이고, 만약 소통을 하더라도 건강한 행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상호 간의 노력이 필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살아있는 동안은 건강한 소통을 하고 싶다. 오늘은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소통을 하지 않았는지 반성하며, 건강한 소통에 대해 글을 써본다. 이 글은 타인을 관찰하며 작성한 글이지만 사실은 타인의 눈에 비친 나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는 일이 발생하면, 우선 무엇을 하지 않아야 좋을지를 생각해본다. 그래서 먼저 건강한 소통을 저해하는 일에 대해서 먼저 고민해본다.회사에서 소통이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되는 것 같다. 침고로 이건 순전히 관찰을 통한 나의 생각이다. 소통이 어려운 사람에게 "우리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데 그 이유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며 인터뷰를 하고 작성한 글은 아니다. 하지만 대화가 어려운 사람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안다고 자신한다. 왜냐하면 내가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말을 종종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지인들에게 나와 대화할 때 어렵다고 느끼는 이유에 대해서 물어보았고, 많은 피드백을 받았다. 그렇게 알게 된 사실로 아무리 경청을 실천하여도 상대방이 원하는 적절한 말을 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경청하지 않았다는 오해를 받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고집이 센 사람-
나는 고집이 세다는 말을 상대방으로부터 듣거나 혹은 상대방에게 하기도 했다. 따라서 고집이 세다는 말은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 경우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대표적인 표현인 것 같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대화를 할 때 서로의 의견이 달라 대화 내용이 하나의 결론으로 모아지지 않는다면, 과연 그것은 누가 더 고집이 세서 그런 걸까?
"상대방이 고집이 세다고 말하는 사람의 특징"
나는 상대방에게 고집이 세다고 말한 사람이 더 고집이 세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살면서 쌓아온 정서가 다른 두 사람이 대화할 때 같은 방향으로 의견이 일치되는 경우보다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은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먼저 상대방에게 고집이 세다고 말하는 것은 대화가 통하지 않는 이 일련의 상황이 마치 상대방에 의해서 벌어진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만약 그 말을 들은 상대방이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면 무리 없이 잘 넘기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대화가 통하지 않는 이유를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대화를 할 때 상대의 통제 속으로 들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대화를 할 때 고집이 세다고 먼저 말하거나 자주 말하는 사람은 상대방을 자신의 통제하에 두려 하는 성향이 강한 것 같다. 재취업한 회사 입사를 앞두고 걱정하는 나에게 지인이 <나르시시스트와 직장 생활하기>라는 책을 추천해주었다. 책에서는 자기애가 강한 사람일수록 타인에 대한 통제력이 강하며, 일련의 사건들을 상대의 잘못으로 몰아세워 상대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더욱 강화시킨다고 한다. 따라서 자기애가 강한 사람일수록 상대방에게 고집이 세다고 자주 말하거나 먼저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자기애가 강하면 욕심이 많아지고, 욕심이 많아지면 고집이 셀 수 있다."
나는 종종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듣는다. 법륜 스님은 고집을 부리는 것은 욕심에서 비롯된다고 이야기했다. 생각해보면 나는 살면서 크던 작던 욕심이 없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크던 작던 자기애가 없는 사람도 본 적이 없다. <나르시시스트와 직장생활 하기>에서는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어린 시절부터 가부장적이고 능력주의 환경에 노출된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물론 모든 나르시시스트가 그렇다고 단정 지을 수 없겠지만, 간혹 자기애가 아주 강한 사람들에게 그들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어보면, 신기하게도 책의 저자가 연구한 내용과 비슷할 때가 많다. 내가 경험한 케이스는 몇 명 되지 않아 전체가 그렇다고 확대할 순 없지만, 누군가와 건강한 소통이 되지 않는다면,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배우게 되는 소통방식에서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 추측해본다.
-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
20대부터 이성 친구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너는 사회 부적응자 같아."라는 말이었다.과거형으로 단정 짓고 지금은 아닌 것처럼 말하고 싶지만 사실 아직도 나는 대화를 할 때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말을 한 번씩 듣는다. 경험상 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뉘는 것 같다. 후천적으로 가정에서 받는 애정이 결핍되어 공감능력이 부족하거나, 결핍은 없지만 자기 주관이 너무 뚜렷하여 공감능력이 부족한 것처럼 보이는 경우이다. 나의 지인들은 내가 공감능력이 부족한 이유가 무엇인 것 같냐는 나의 질문에 고집이 너무 세다거나 혹은 주관이 너무 뚜렷하다고 이야기해주었다. 나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지만 주관이 뚜렷하여 상대방이 원하는 적절한 대답을 하지 못해 결국 공감능력이 떨어진다는 말을 많이 들었던 것 같다.
법륜 스님의 이야기를 빌리면 고집이 센 사람은 욕심이 많은 것이어서 자신이 힘들고, 주관이 뚜렷한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법륜 스님의 말씀에 나의 주관적인 생각을 조금 보태면, 자신의 관점에서 보면 확실히 그런 차이가 있겠지만 주변 사람들이 답답함을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고집이 세거나 주관이 뚜렷한 것은 차이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요즘은 건강한 소통을 위해 나의 주관을 조금 내려놓는 연습을 한다.
미디어를 보면 태어날 때부터 공감 능력이 부족한 채로 태어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사이코 패스' 혹은 '소시오 패스'라고 부른다. 너무 많이 알려진 단어이고, 심지어 나도 '사이코 패스'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물론 누군가 너 '사이코 패스'같아라고 이야기해서 고민해본 것이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사이코 패스'가 아니다. 그냥 자신의 입장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나에 대해 서운함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떠오르는 단어가 '사이코 패스'였기에 그 말을 썼을 것이다. 나는 그냥 가끔 타인이 느끼는 감정보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이 과연 합리적인가에 대해 먼저 고민할 때가 있다. 나조차 인지도 못하는 사이에 일어나는 행동이라 나도 내가 왜 그런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럴 때 그 사람이 얼마나 서운함을 느끼는지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덕분에 삶에서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고민을 해보게 되었고, 건강한 소통을 통해 내 옆의 사랑하는 당신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왜 중요한지 이제는 알겠다.
과거 카페를 운영하며공감능력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직원과 일을 했었다. 특히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이 서툴러서 그 친구와 소통하는 일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했다. 같이 일한 지 일 년이 지난 어느 날 나는 너무 답답해서 네가 정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솔직하게 이야기를 했었다. 그리고 그날 그는 나에게 자신의 가정환경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다. 그는 어린 시절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애정 결핍에서 오는 공감능력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누구나 공감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서로 인연을 맺고 서로 진심을 나누다 보면 언젠간 공감능력이 풍부한 사람으로 변모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 직원은 나 같은 삼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삼촌은 너무 나이가 많아 보이니 형이라고 부르라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건강한 소통을 시작했다.
거창하게 주제를 잡았지만, 아직도 건강하게 소통하는 방법을 잘 모르겠다. 그냥 계속해서 고민하고 노력할 뿐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건강한 소통을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다만 건강한 소통은 혼자만 노력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건강한 소통이 되는 인연을 만난 것에 감사함을 느끼고 그 소통에 더욱 집중하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내가 계속해서 내일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도 당신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그리고 괜찮다면 당신도 나의 이야기에 좀 집중해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소통 없이는 외로워 살 수 없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건강한 소통이 필요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