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구X이라는 세계적 기업에서 근무하는 한국인이 하는 강연을 EBS에서 본 적이 있다. 그 한국인은 지금까지 한 선택의 합이 현재의 자신이라고 정의를 내렸다.
곧 불혹인데 지금까지 내 선택의 합이 3년 차 백수로 정의가 되니, 설탕 없이 에스프레소를 들이켠 것 같이 속에서 쓴맛이 울컥 올라오며, 씁쓸한 기분이 든다. 백수였던 사람 혹은 지금 백수인 사람은 이해를 할 것이다. 백수가 되면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부담된다. 금전적인 부분이 크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금전적인 부담이 없는 지인을 만나더라도 그 만남이 부담된다. 나의 지인이 내 상황을 고려하여, 나에게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모습을 보면, 그때마다 나의 선택들에 대해서 후회가 밀려온다. 나는 그 사람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그 사람은 나를 신경 쓰느라 나와의 시간을 즐기지 못하는 것이 눈에 보일 때, 나 또한 불편해진다. 이것이 만남을 피하는 가장 큰 이유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지만, 백수라는 지금 나의 상황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 정말 불편한 진실이 아닐 수 없다.
종종 나에게 "너의 용기가 부럽다."라고 이야기하는 지인들이 있다. 사실 이 말은 당사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비꼬는 발언으로 들릴 수 있지만, 나는 안다. 그 사람이 그 이야기를 꺼낸 이유를......
나도 과거에 회사를 퇴사하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지인을 만나면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냥 현재 회사를 다니고 있는 내 존재가 백수인 지인에게 불편할까 봐 나를 낮추는 예의라고 생각해서 "너의 용기가 부럽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현재 나의 회사생활이 만족스럽지 않았던 것도 한몫했다. 그 당시 나도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싶지만 여건이 되지 않는 상황이 한탄스러웠고 기회가 된다면 나도 용기를 내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백수 혹은 그 반대의 입장에 있어보니 "너의 용기가 부럽다"는 말에는 타인을 기분 나쁘게 하려는 의도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백수인 사람에게도 그 말은 크게 위로가 되지 않는 것도 알겠다. 결국 그 말을 하는 사람도 백수인 나만큼 현재의 상황이 힘들기 때문에 한 말이었다.
솔직히 백수로 살고 있는 나는 지금 오랫동안 한 가지 일을 꾸준하게 하는 사람에게 "너의 용기가 부럽다."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용기라는 것은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도 필요하지만 지금 자신에게 닥친 고난을 견뎌내기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겠다. 결국 새로운 시작을 하든 지금 하는 것을 계속 참고 견뎌내든 용기 있는 사람만이 그것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용기란 것은 어떠한 선택의 순간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용기를 가지고 태어났고, 용기를 바탕으로 매일매일 삶을 살아가는 것 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