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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세진 Jul 01. 2024

선생님, 우리 교실에 리바이어던이 필요한 것 같아요.

사회계약설과 학교 규칙

    ‘법이 왜 필요한가?’란 주제로 6학년 2학기 사회 수업을 하게 되었다. 우리가 공기를 마시며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 듯, 내겐 법이란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법이 개인의 삶을 제한할 수 있는 정도’에 대하여 깊이 생각한 적은 있지만, 법의 필요성은 워낙 당위적인지라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초등교사가 전문성이 있다는 말을 들으려면 적어도 두 가지는 잘해야 한다. 첫째, 어려운 내용을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것. 둘째,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에 대하여 학생들이 정해진 시간 동안 탐구하게 하는 것. ‘첫째’는 쉽지 않지만, 꽤 익숙하다. 오히려 내겐 둘째가 어렵다. 이번 수업은 둘째에 해당하는 상황이라 수업 구성을 하기 어려웠다.

    “법이 왜 필요하지?”

    “법이 없으면 혼란스러워지니까요.”

    명쾌한 대답이다. 그럼 문답 한 번으로 수업을 끝내도 될까? 아니다. 학생들이 당연한 내용을 좀 더 깊이 있게 고민하도록 이끌기 위해선 간접적인 체험이 필요했다.

    “그렇지. 모두 잘 알고 있는 것 같으니 이쯤에서 수업 끝내고 빨리 밥 먹으러 갑시다. 모두 손 씻고 복도에 두 줄로 서!”

    “와~아!”하는 아이들의 함성이 교실을 가득 메웠다. 옆 반보다 10분가량 수업이 일찍 끝난 셈이다. 모든 학생이 어수선하게 움직이며 복도로 뛰어갔다. 예상한 대로 복도에서 들뜬 마음으로 떠들며 장난치는 학생들이 있었다. 1초면 충분했다. 순식간에 복도는 신나는 야시장을 연상하게끔 활기가 넘쳤다. 나는 재빨리 아이들을 교실로 다시 오게끔 불렀다. 진정되지 않은 분위기가 가라앉을 때까지 잠시 침묵을 유지했고, 뭔가 떠들면 안 되겠다는 걸 직감한 아이들을 시작으로 교실 분위기는 차분해졌다.

    “선생님이 지금 왜 다시 불렀을까?” 짐짓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복도에서 시끄럽게 떠들어서요.”

    “그렇게 해도 됩니까?”

    “아니요.”

    “왜 안 됩니까?”

    “다른 반이 수업 중이라 방해가 됩니다.”

    “잘 알고 있군요. 여러분 모두가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복도에서 아주 잠깐이지만 떠들었습니다.선생님이 막지 않았으면 멈추지 않을 분위기였습니다.”

    선생님의 낮게 깔린 목소리와 진지한 표정. 아이들이 잘못했다는 걸 깨닫고 뒤이어질 선생님의 조치에 긴장한 탓인지, 교실 분위기가 엄숙해졌다. 학생들 대부분이 반성하는 표정으로 고개 숙이고 있었다. 운동장에서 학생들이 체육 수업을 하는 소리가 정적을 깨며 조심스럽게 들렸다. 햇볕이 잔잔하게 교실로 스며들었다. 나는 엷은 미소를 보내며 말을 이었다.

    “여러분이 잘못한 게 아닙니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고 선생님이 일부러 이런 상황을 만든 거예요. 선생님 특징 알지? 공자님이 뭐라고 말씀하셨다고 했지?”

    “아~! 선생님이 또 장난치셨어!”

    아이들은 선생님의 장난에 또 속아 넘어갔다는 듯 씩씩대며 웃어 보였다. 평소에 공자의 말을 자주 인용한다. “들은 것은 잊어버리고, 본 것은 기억되지만 직접 해본 것은 이해한다.”라는 명언이다. 무분별한 지식 학습에 생생한 체험이 더해지면 그 원리를 더욱 깊이 파고들어 깨달을 수 있다. 다른 글에서 언급했듯이 지식 전달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지식 전달과 체험이 결합하면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으므로, 수업 중 기본적 지식을 설명한 뒤, 활동을 통해 원리를 깨닫는 수업을 많이 하려 했던 것 같다.

    “밥을 빨리 먹을 수 있다는 흥분 상태를 우린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감정이 앞서 여러분은 수업 중인 옆 반을 돌아보지 않았지요. 이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피해를 막기 위해 선생님이 들어오란 말을 했지요? 그때 여러분은 어떻게 했습니까?”

    “선생님 말씀을 듣고 교실에 왔죠.”

    “그렇죠, 선생님이 오라고 했을 때 왔죠. 그럼 왜 선생님 말씀을 들었을까요?”

    “선생님 말씀이니까 들어야죠. 안 들으면 혼나기도 하고요.”

    “선생님 말씀이라서 들어야 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선생님 말에 도대체 무엇이 있기에 들어야 한다는 거죠?”

    “힘?” 자신감에 찬 표정으로 한 학생이 웃음 지으며 답했다.

    “맞습니다. 그 힘을 조금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권위라고 합니다. 그 권위는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모두가 따르기로 약속함으로써 나옵니다. 그 증거가 교육기본법입니다. 교육기본법 제2장 제12조를 보면 학생은 학교의 규칙을 잘 지키고, 선생님의 교육 활동을 방해하거나 학교의 질서를 어지럽혀선 안 된다고 되어 있어요. 학습자에 관한 태도가 법률로 정해져 있는 거죠. 영국에 홉스라는 학자가 있었습니다. 굉장히 유명한 학자니, 초등학교 때 이름을 미리 들어도 나쁠 건 없어요. 홉스는 사람들이 모이면 아까의 복도처럼 혼란스러워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규칙을 만들었죠. 그런데 규칙을 무시할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권위를 가진 존재를 만들어 혼란을 통제해야 한다고 했죠. 그게 바로 ‘리바이어던’이란 절대적 힘을 지닌 괴물입니다.”

    그렇게 나는 아이들에게 홉스와 리바이어던을 처음으로 소개했다. 이후 학습활동으로 규칙이 없는 사회를 상상하여 글을 쓰고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수업을 생각보다 무사히 끝마쳤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다행히 옆 반 수업에 큰 방해가 되지 않은 것 같았다.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가 태어난 1588년 무렵에는 에스파냐의 무적함대가 영국 해안에 출몰하는 시대였던 것 같다. 실제로 에스파냐 함대는 1571년 그리스 인근 레판토에서 벌어진 해전에서 큰 활약을 하여, 오스만제국의 함대를 격파하고 ‘무적함대(Armada Invencible)’라는 영예로운 별명을 얻는다. 홉스의 어머니는 무적함대가 쳐들어온다는 소문을 듣고 놀란 나머지 홉스를 조산하고 만다. 아버지는 교회에서 쫓겨난 사제로, 가족까지 내팽개치고 도망가는 무책임한 행동을 한다. 운이 좋게 부유한 삼촌에게 맡겨져 유명 사립학교에 입학한다. 그런 흉흉한 시대에다 불행한 가정사를 겪고도 열심히 공부해서 옥스퍼드대학교에 진학한다. 그는 16, 17세기에 광범위한 사회 변화와 과학의 발전으로 인한 사회 문제에 대해 영국인으로서 최초로 포괄적 대답을 하고자 했다. 그 결실이 1651년에 출간된 『리바이어던』이다.(1)

    홉스에 따르면 인간은 악하므로 자신의 생존과 이익을 위해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 이것을 표현한 문구가 널리 알려진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 할 수 있다. 이 문구는 윤리를 찾아볼 수 없는 짐승의 모습으로 서로 마주하는 상태을 말하는 게 아닐까. 따라서 악한 인간끼리 마주하는 ‘자연 상태’를 그대로 두면 안 된다. 무규범 상태에선 약자의 안전은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안전은 선이고, 위험은 악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안전을 보장받기 위하여 서로 계약을 맺는다. 계약을 맺은 상태를 ‘사회상태’라고 한다. 그런데 계약이 잘 지켜지면 다행이겠지만, 어딜 가나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경우는 흔히 볼 수 있다. 부당하게 계약을 깨고 힘으로 상대방을 짓누르는 방식이라면 약자는 맥없이 당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홉스는 명쾌하게 답한다. 계약 당사자보다 훨씬 강력한 존재를 만들어서 계약을 깬 사람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그것을 집행할 존재에게 절대적 권력을 모두 양도해야 하고, 우리는 그 존재에게 순응해야 한다고 했다. 이 존재는 현실에서는 ‘왕’이라고 할 수 있다. 홉스가 살던 사회적 배경이 얼마나 혼란스러웠으면 강력한 군주주권을 옹호하는 듯한 말을 했을까. 자칫 왕이 정신이 혼미해져 폭정을 일삼고 독재를 하더라도, 자연 상태로 돌아가는 것보다 더 낫다는 것이다.     

    며칠 후 한 학생이 조심스럽게 찾아왔다.

    “선생님! 우리 반에 리바이어던이 필요한 것 같아요. 선생님이 리바이어던이 돼 주세요. 진짜 괴물처럼 무섭게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눈물 쏙 빼놓을 정도로요.”

    왜 그래야 하는지 물어보니, 점심시간에 질서가 없고, 쉬는 시간에 복도에서 너무 떠들고 계단에서 장난치는 일이 비일비재하단다. 보다 못해 학급회장과 생활부장이 타일러도 듣지 않는단다. 좋게 말해서는 듣지 않으니, 계속 친절한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자신의 관점을 보강했다. 선생님이 무서운 괴물이 되어 이 상황을 해결해주길 바랐다. 만감이 교차했다.

    “얘들아, 너희들이 복도에서 떠들고 계단에서 장난친다는 제보를 받았다. 사실이냐?”

    “네…….”

    “왜 그런 행동을 했지?”

    “……”

    “선생님이 사회 시간에 말했던 리바이어던이 된다면 어떨까. 너희들이 질서를 어지럽히고 규칙을 어길 때 선생님의 지도를 받는 건 당연하겠지만, 선생님도 인간인지라 실수할 때가 있다. 무섭게 윽박지르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면 너희들은 두려움을 느끼고 말을 더 잘 듣겠지. 그리고 불만이 있어도 리바이어던에게 따라야 할 테고. 사람이 공포 속에 타의적으로 통제되어 규칙을 따르는 것이 바람직할까? 선생님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굳이 공포 분위기를 만들지 않아도 너희들 스스로 규칙을 지킬 수 있다고 믿는다. 선생님은 무서운 리바이어던으로 변하기 싫다. 스스로를 깎아내리지 말고 남에게 피해주지 말아라.”

    콜버그의 도덕성 발달이론에 따르면, 도덕성 발달 단계에서 가장 낮은 단계가 1단계인 처벌과 복종의 지향 단계이다. 단순히 처벌받기 싫어서 나쁜 일을 하지 않는 수준에 아이들을 머물게 할 수 없다. 인간(人間)이란 사람들 ‘사이’를 말한다. 이 말은 함께 무리 지어 사는 것이 사람의 숙명임을 여실히 말해준다. 따라서 인간 간의 갈등도 숙명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도 인간 사회의 숙명이다. 사회가 시끌시끌하고 질서가 바로 서지 않으면 국민은 강력한 리바이어던(국가)의 등장에 열광한다. 혼란이 오랫동안 지속될수록 더욱 그렇다. 어릴 적에 가족이 한데 모여 ‘영웅’이란 영화를 시청했다. ‘영웅’은 중국 액션 영화계의 전설인 이연걸이 주인공을 맡은 작품으로, 작중 진나라 왕을 죽이려는 무명(無名) 자객 역할을 맡았다. 자객은 진나라에 대한 개인적인 원한으로 자객이 되어 진나라 왕을 암살하고자 한다. 자객은 왕을 죽이기 위해 ‘십보필살(十步必殺, 열 걸음 안에서 반드시 상대방을 죽이는 기술)’이란 검술을 연마한다. 결국 왕을 반드시 암살할 수 있는 十步(열 걸음) 거리로 다가왔고, 왕을 죽일 기회를 얻는다. 왕은 자객과 이야기를 하면서, 잔검이란 자객이 자신의 대의를 이해하고 암살을 멈추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자기 뜻을 알아준 사람이 있으니, 죽어도 괜찮다는 말을 남기고 자객이 목숨을 앗아가도록 허락한다. 자객은 진나라 왕을 죽일 수 있었지만, 막바지에서 죽이지 않는다. 각국이 서로 싸우는 난세에서 극심한 고통 속에 허덕이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존재는 백성들이다. 결국 지긋지긋한 난세를 끝장내려면 진나라 왕이 강력한 하나의 중앙집권적 국가로 천하를 통일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기 때문이다. 홉스가 살던 때와 중국 전국시대의 분위기를 비교하면 혼란스럽기는 매한가지다.

    수업하고 찝찝한 생각이 들었다. 갈퀴로 속 시원히 긁어내고 싶은 몇 가지 화두. 인간은 홉스의 말대로 이기적이고 악한 본성을 가진 존재인가. 모두를 위해 계약을 맺지 않고도 스스로 이타적인 존재가 될 수는 없을까. 아이들이 스스로 질서를 지키길 주문한 것이 어쩌면 아이들에게 크나큰 짐이 된 것이 아닐까. 리바이어던의 등장으로 혼란은 즉각적이고 효과적으로 수습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이 리바이어던의 권능을 갖는다면 위험하다. 절대 권력자가 만인 위에 군림하는 체제가 만들어질 것이고, 그 체제의 달콤한 열매를 맛본 집행자는 정신수양을 하기보단 더욱 현 체제를 공고히 하려는 욕심을 낼 것이다. 역사를 살펴보면, 영웅들이 대업을 이룬 뒤, 권좌에 올라 흐트러지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나는 리바이어던이 되어 학생들을 대하고 싶지 않다.



(1) 『인문의 바다에 빠져라』(최진기, 스마트북스, 2013)의 ‘사회계약설의 역사적 의미(279쪽)’를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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