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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세진 Oct 13. 2024

[빋](1)

1편

※ 본 소설의 줄거리는 특정 단체와 인물, 정치적 상황을 비판하기 위한 글이 아닌 작가의 창작 글 이며, 작중 등장하는 인물의 역사적 견해는 작가의 생각과 관련 없는 픽션임을 밝힙니다.  


● 도입 - 동기유발

    “우와, 웬 빗이에요? 되게 고급스러워 보여요.”

    “공방에서 일주일 들여 직접 만들었어.”

    “너무 귀한 선물인데요? 빗 때문에 부장님께 빚진 느낌이 드네요.”

    “그게 참 재밌는 것 같아. 빗, 빚, 빛. 발음은 같지만 다른 말이지. 빗이란 글자에 작대기 하나만 그어도 우리들이 싫어하는 빚이 되는데, 그 단어가 마냥 싫지는 않아. 사람은 빚을 지고 갚아 나가면서 성장하잖아? 거기에 작대기 하나 더 얹으면 빚이 빛으로 승화되는 거지. 마치 빗, 빚, 빛이 성장이란 철길을 통해 이어져 있다, 뭐 이런 뜻으로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 도입 - 학습문제 확인

    “김 선생, 나는 김 선생을 응원하네. 다만 일이 어려워질 수도 있어.”

    “어떤 면에서입니까?”

    “선생이 하려는 그 프로젝트 수업을 추진하게 될 경우, 학부모가 마음먹고 괴롭히면 속수무책일 수 있어. 가령 고소한다거나, 유언비어를 퍼뜨린다거나… 그 싸움에서 이기더라도 돈도, 마음도, 모두 너덜너덜해져 있겠지? 물론 상식적이고 훌륭한 학부모가 대다수이지만, 이런 비상식적인 경우도 있어.”

    교장 선생님은 걱정하는 마음으로 민원 전화에 대한 허두를 어렵게 뗐다. 막상 언어의 물꼬를 트니 현실적인 조언을 막힘없이 해주셨다. 임진왜란의 발발과 이순신 장군의 활약상을 다루는 사회 과목의 내용을 실과 과목의 목제품 만들기 단원과 연계하도록 교육과정을 재구성했다. 학생들과 함께 거북선을 만들어 청계천에 띄울 계획이었다. 성제는 거북선 프로젝트라는 걸 한다며 내가 했던 말을 미주알고주알 엄마에게 늘어놓았던 것 같다. 성제의 어머니는 프로젝트 수업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선 곧바로 민원을 넣었다. 민원의 요지는 발전적인 한‧일 관계를 해칠 수 있는 어느 초등학교 교사의 정치적인 수업 활동이 이루어지지 않게 막고, 해당 교사를 징계하라는 내용이었다. 그걸로도 모자라, 연이어 교육부의 징계 담당 부서로 전화를 걸었다.     “전에 저랑 통화했던 교육부 교원 징계 담당자시죠?”

    “안녕하세요. 맞습니다, 말씀하세요.”

    “제가 제기한 민원! 다시 한번 조사해 보셔야 할 겁니다. 어떻게 그런 교사를 방치할 수 있나요? 이건 직무유기 아닌가요?”

    “해당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진상 파악을 꼼꼼하게 했습니다.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회의한 결과, 큰 문제가 될 건 없다고 결정했습니다.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교육과정을 재구성했으며, 이는 교사 개인의 정치적인 활동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을 만들어 띄우는 일이 어떻게 정치적인 문제를 일으키는지 거꾸로 여쭙고 싶습니다. 지난번에 답변을 드렸음에도, 어머니께서 계속하여 같은 일로 민원을 제기하시면 곤란합니다.”

    “좋아요, 교육부도 이런 식으로 나온단 말이지? 당신 이름이 뭐야? 그래, 내가 이제부터 단단히 보여주겠어. 언론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지? 내가 아는 신문사 편집장만 여섯이야. 각오해야 할 거야!”

    “저기, 어머니! 진정하시고요. 제 말을 들어보세요.”

    “시끄러워! 끊어! 내일 또 전화할 거야!”

    민원 전화로 일주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시달린 해당 부서의 직원은 결국 병가를 내고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교장 선생님, 이 일은 교권 침해에 해당한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물러나기 더더욱 망설여집니다.”

    “성제 엄마 역사 교수라던데, 어떻게 배운 사람이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지 놀라워. 학식과 인성이 비례하는 게 아니란 걸 증명하는군. 그런데… 나라면 더럽지만 사과하고 끝낼 것 같아.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건 아니잖아.”

    바람이 강하게 불수록 숯불은 더욱 벌겋게 달아오를 뿐, 저항심은 더욱 한데 모여 동여매 졌다. 방파제에 부딪혀 요란하게 흩어지는 포말이 되고 싶진 않았다. 항상 웃으며 동료 교사들을 대하던 이혜진 부장님의 맑은 얼굴이 허공에 그려졌다. 맑은 얼굴은 부스스한 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긍지는 인간이 입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갑옷이라지 않던가.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장 선생님과 학교 입장도 있으니 사과하겠습니다만, 심리 치료 차원에서 2주만 쉬어도 될까요? 잠시 외국에 다녀오려고요.”

    “뭐? 외국이라고?”

    “네, 이런 식으로 들개처럼 물어뜯는 억지 전화를 매일매일 받으니 몸도 마음도 지쳤습니다. 학생 문제, 보결 문제 등 여러모로 허락해주시기 어렵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심리 치료 차원에서 배려해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음…, 알겠네. 결정 내리기 어렵지만, 그동안 선생님이 열심히 해왔다는 걸 나는 누구보다 잘 아네. 너무 걱정하지 말고 잘 다녀오게.”



● 전개 - 활동1

    부장님이 선물해 주신 빗의 살을 만지작거리며, 짐꾸러미에 넣을지 말지 고민했다. 망설임 없이 휴대전화의 화면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영국행 항공권을 예매했다.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영국이란 나라도, 휴가를 쓰는 시기도, 학부모의 민원도…. 이런 자신마저 낯설어진다면, 교사를 그만둬야 하는 게 아닌가.

    N극이 자연스럽게 S극과 붙으려 하는 것처럼, 어쩔 수 없는 질문 하나가 인력에 이끌려 머릿속에 정착했다. 피커딜리 서커스를 거쳐 트래펄가 광장으로 향했다. 런던의 상징인 2층 버스에 몸만 싣고 싶었으나, 어쩔 수 없이 생각도 함께 실었다.

    광장 한가운데 넬슨 제독의 동상이 탑 꼭대기에 서 있었고, 프랑스 군대의 대포를 녹여 만든 사자가 화난 늙은이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사자상과 눈을 마주하자니 부장님이 보이는 것 같았다. 즉시 눈을 아래로 내렸다.

    코로나19가 가져다준 팬데믹 상황의 흔적이랄까. 광장은 한산했다. 새들이 파드득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선명하게 들렸다. 의식의 밑바닥, 깊숙한 곳에 가라앉혀도, 성제 어머니의 카랑카랑한 음성은 부력을 지닌 듯 수면 위로 넘실거렸다.

    “선생님, 교사는 정치적인 발언과 행동에 제한 있는 거 아시죠? 선생님께서 거북선 프로젝트인지 뭔지를 하게 되면, 냉각된 한일 관계가 어떻게 되겠어요? 무역이 끊어지면 손실액이 얼마인지 아세요? 독단적인 행동은 당장 멈춰 주세요.”

    “어머니, 정치적 발언과 행동은 하지 않았고요, 국가 수준 교육과정에 있는 내용을 왜 이렇게 눈치를 봐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나라 구하신 분을 가르치는 활동이잖아요.”

    “하하하, 제가 역사 전공자인 거 알고 계시죠? 초등학생만 가르쳐서 그런지 역사의식에 문제가 있는 것 같으시네~. 나폴레옹이 예전에 유럽을 정복했지만, 현재 그들끼리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침략당한 나라들이 프랑스를 미워하기만 하나요? 함께 유럽 연합도 만들고, 국경도 자유롭게 통과할 수 있고, 화폐까지 같은 걸 쓰고 있죠. 갈등만이 능사가 아니란 겁니다.”

    “논점에서 벗어난 말인 것 같습니다만….”

    “시끄러워요!”

    한동안 머릿속을 비우다 보니 어느덧 날이 어둑어둑해졌다. 런던의 땅거미나 서울의 땅거미나 색상은 매한가지였다. 하지만 저무는 하늘빛이 유난히 유별나 보였다. 중년의 영국인이 내게 말을 걸었다. 미국식 발음과 달리, 영국식 발음은 조금 낯설었다. 미국식 영어와의 뉘앙스 차이를 더듬더듬 짚어가며 대강의 의미를 헤아렸다.

    “아까부터 무슨 생각을 골똘히 하세요? 한 시간 가까이 흐리멍덩하게 있네요.”

    “뭐 좀 생각하느라….”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한국입니다.”

    “오우, 한국. 멀리서 오셨네요. 실례되지 않는다면 사진 한 장만 찍어주실 수 있으세요?”

    찰칵, 사진 찍는 소리가 매섭게 공기를 갈랐다. 때마침 광장 한복판에서 거리 공연이 시작되었다.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 사이먼과 가펑클의 노래가 학교 종소리처럼 땅거미가 질 무렵에 맞춰 울렸다. 안녕 내 오랜 친구 어둠아. 나는 너와 다시 이야기를 나누러 왔네.(Hello darkness, my old friend. I've come to talk with you again.) 누군가 내게 예고 없이 치달으며 속삭이는 양, 노래 가사가 머릿속을 휘저었다.

    “나폴레옹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예전에 대륙봉쇄령을 내렸던 보나파르트 말입니다.”

    그가 떠나려 할 때, 황급히 붙잡고 물어봤다. 다소 생뚱맞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

    흘러나오는 노래의 제목처럼, 침묵의 소리만 표류했다. 영국인과 나 사이에 놓인 어딘가쯤에서. 그의 눈 속에는 많은 질문과 답이 담겨 둥둥 떠 있는 듯 보였다. 그는 고민 끝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만한 전쟁의 천재는 역사상 손에 꼽을 정도죠. 세계사적 업적도 일부분은 인정합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겐 고통을 안겨준 침략자입니다.”

    “더 평가할 말은 없나요?”

    “욕심이 과했죠.”

    “그뿐인가요?”

    “하지만 그런 뛰어난 지휘관을 이긴 넬슨 제독과 영국은 더욱 대단했다고 봅니다. 영국인으로선 자랑스럽죠.”

    “그럼 혹시 넬슨 제독을 기리는 축제가 매년 열리나요? 열린다면 프랑스와 외교적, 실리적 관계를 고려하여 축제를 취소한 적은 없나요?”

    먹을 살짝 머금은 물이 화선지 위에 무거운 속도로 번지듯 입국 전 감춰두었던 질문들이 서서히 쏟아졌다.     “그런 걸로 눈치를 보다니요. 우리 역사에서 자랑스러운 인물을 기념하는 일은 다른 나라가 침해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그 인물이 히틀러 같은 인물이라면 모를까. 미국이 스타 스팽글드 배너를 연주할 때마다 영국이 항의하던가요? 아니죠. 제 답변이 못 미더우면, 부족한 대답은 프랑스에서 찾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영국이 아닌 프랑스에서라…. 거북선 프로젝트의 의미를 파리에서 깨달았다는 부장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자신의 신념을 강행한 대가로 부장님은 결국 학생들 앞에서 치욕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한 학부모가 교실 문을 박차고 들어가 부장님의 멱살을 잡고 이리저리 흔들다가 땅으로 내동댕이쳤을 때, 나는 교실 옆 복도에서 떨고 있었다. 학부모의 눈은 실핏줄로 얼기설기 금이 가 있었다. 그녀의 적반하장식 살기에 눌려 뒤돌아서려는데, 뒤숭숭하고 싸한 느낌이 들어 동작을 멈췄다. 다시 용기 내어 뒤를 보니, 맥없이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부장님의 눈은 토끼 눈처럼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한 줄기 용기를 쥐어 짜내고 싶었다. 그러나 본능은 화장실 쪽으로 도망가라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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