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야, 네 손목에서 흉터를 보았어

by 비차


Y야, 네 손목에서 흉터를 보았어. 난 천박하게도 네가 말하지 않은 걸 훔쳐보는 데 재능이 있지. 꿈에서 갔던 네 장례식에서 눈물은 한 방울도 나지 않았는데 나 육개장은 입에 대지도 않았어. 너랑, 이라는 단어들로 시작하던 약속을 기억해. 너는 나에게... ... 내 그림자 같다.


네가 불가항력으로 익숙해져야 했던 통증을 알아. 머리가 멍해질 정도로 소리 없는 비명을 질러본 적이 있지. 소리 내지 않고 울기 위해 깨문 손가락의 멍. 몸을 꼬집거나 살갗이 발갛게 올라오도록 문지르면 누구도 아는 척하지 않아 사라진 줄 알았던 내가 거기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살아남고 있어 다행이야. 가끔은 숨을 쉬는 게 죄 같지. 켜켜이 쌓이는 숨이 너무 무겁고 눈동자들이 사방에서 빛나는 새벽이 있고. Y야, 그 밤에, 새벽에, 종일 무력하게 잠을 자고 이불을 덮고 있다가 생계에 멱살 잡혀서, 가만히 방에 앉아 형광등도 켜지 않은 채 노트북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그림을 그려보다가, 팔에 사인펜으로 글씨를 써넣다가, 맥주 한 캔을 따고 한참 들여다보다가... 안간힘을 써도 나아지지 않아 어제는 새벽길을 무작정 달렸다가. 오늘은 그럴 힘도 없어 뚝뚝 울었을, 그러다 그었을 네가 선해.


나는 가끔 천 아래 바늘처럼 무력해져.


말이, 단어가 너에게 닿을 수 있을까 ... ...


흉터가 나이테를 만들어 일찍 어른이 된 어린아이. 종말이나 죽음을 말하며 너는 깔깔대고 웃잖아. 살아남아 무얼 이룬다던가 행복해질 수 있으리라는 말을 나는 차마 할 수가 없다. 겪어본 적 없으니까. 우리는 중학교에 가면 달라진다고, 고등학교에 가면 변한다고, 대학생이 되면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다고, 취직하면 정말 어른이 된다고 수도 없이 들었지만 지켜진 거 하나도 없었지. 조금만 기다리면 주겠다던 우리 마시멜로는 자꾸 빼앗겼지. 무슨 약속을 들어도 담담한 표정을 짓게 되었고.


그래도 버티면 나아질까. 나도 의구심이 들어. 발밑이 벼랑 같아 매일 떨어질까 두려워하며, 두려움을 담담해하고자 노력하며 살아.


그렇지만 Y야, 나는 아직 순간은 올 거라는 믿음이 아직 있어. 조금 나은 순간. 조금 행복해지는 순간. 행복이 성냥개비 같아 쉽게 타버리곤 하는데, 그래도 한 갑을 두 갑을 긁다 보면 조금 따뜻해지지 않을까. 운 좋게 초를 구할 수도 있고 말이야. 죽지 못해 산다고 했지, 나도 자주 그래. 생에 미련이란 게 없고 그건 그냥 상태일 뿐이라고 말이야. 그래도. 그래도. 이 생 이후에 우리가, 나와 네가 함께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잖아. 우리 또 함께 숨 쉬는 존재로 있을지 모를 일이잖아. 모든 선택은 네 것이고 나는 무조건 너를 탓하지 않을 거지만. 그러니까.


너를 아껴, Y야.
내가 아끼는 너를 네가 아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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