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엄마 약대생입니다. 결혼하고 다시 약대에 들어간, 아이 둘 엄마의 학업 도전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PEET는 수능과 다르게 전국 모의고사 횟수가 적고, 문제가 검증되지 않아서 모의고사 점수만으로는 상대적인 내 위치를 파악하기 어렵다. 사실 공부를 진짜 잘하는 애들은 모의고사에서 어떤 문제가 나와도 상위권에 들 것이다. 그런데 나처럼 합격권일지 아닐지 간당간당한 학생에게는 모의고사를 치를 시간에 공부 한 자 더 하는 게 이득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PEET 모의고사에는 PEET 준비생이 모두 응시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PEET 본고사의 점수가 나올 때까지, 아니 학교의 합격 발표가 날 때까지는 끝까지 나의 합격여부를 알 수가 없다.
PEET 본고사
드디어 2014년 8월 마지막 주 일요일, PEET 본고사 날이 되었다. 여전히 나는 내가 어느 정도 위치인지도 모르고 합격할 것인지에 대한 확신도 없다. 그렇게 시험 당일 날이 되었으니 그저 오늘 최선을 다해 문제를 푸는 수밖에 없다. 내가 시험을 봤던 장소는 여의도였다. 점심시간에 먹을 도시락을 싸고 남편과 함께 시험 장소로 향했다. 이번에는 남편에게 부끄럽지 않은 점수를 얻어야 할 텐데...남편이 태워 준 차에서 내려 인사하고 시험을 보는 여의도고등학교로 걸어 들어갔다.
내가 앉게 되는 자리를 어디일까. 수험표의 수험번호를 보아가며 나의 위치를 찾아본다. 예전에 홍익대학교 미대에 합격한 친구의 얘기가 생각났다. 다른 학생들에 비해 미대 입시 준비를 늦게 시작했는데도 불구하고 친구는 미대로 유명한 홍대에 합격했다. 친구들이 비결을 물어봤을 때 이런 얘기를 했다. 실기시험 당일 날 배정받은 자리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자리였다고 말이다. 그때부터 기분이 좋아서 실기시험도 잘 치를 수 있었다고 했다. 시험을 보러 갈 일이 있을 때면 나는 항상 그 친구 얘기가 생각난다. 오늘 나는 어떤 자리에 배정받을까? 오늘 나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까? PEET 본고사 날도 마찬가지 생각으로 나의 자리를 확인했다. 그렇지만 내가 배정받은 자리는 딱히 좋은 자리도 나쁜 자리도 아닌 중간자리였다. 구석자리가 마음도 편하고 집중력이 올라갈 것 같은데 중간 자리라서 오히려 조금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PEET 시험 1교시 일반화학
1교시는 일반화학시간이었다. 일반화학은 언제나 시간이 부족한 과목이다. 아는 문제는 풀고 모르는 문제는 제껴야 한다. 시간 내에 모든 문제를 보겠다는 전략으로 접근해야 하는 과목이다. 안 풀리는 문제에 시간을 보내다가는 내가 풀 수 있었던 문제들을 놓쳐버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느낌은 나쁘지 않았다. 모르는 문제도 있었지만 아는 문제를 실수하지 않고 풀려고 노력했다.
PEET 시험 2교시 유기화학
2교시는 유기화학시간이었다. 유기화학은 PEET 시험을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접한 과목이다. 벌집같이 생긴 걸 계속 그리면서 문제를 푸는 유기화학이 처음에는 너무 낯설었다. 배경지식이 전무해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학원을 2월 중순부터 다니기 시작한 터라 이미 기본 강의가 끝나고 심화 강의로 넘어가는 시기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기본기 없이 강의를 따라가려니 버거움이 불쑥불쑥 찾아왔던 과목이다. 그래도 생물은 한글을 읽을 수라도 있지, 유기화학은 벌집같이 생긴 도형을 보면서 문제를 풀어야 하니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막막했었다. 어쨌든 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나의 것으로 만들어보고자 노력했던 과목이다. 시험날짜에 가까워질수록 학원 내에서 테스트를 하면 그래도 제법 점수가 나와줘서 마지막에는 자신감도 붙었었다. 드디어 정복한 것 같은 기분도 들었었다.
시험날 시험지를 받아 들고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어라? 모르는 문제는 제끼고 아는 문제부터 푼다는 게 나의 전략인데 계속 넘어가는 문제 개수가 늘어나기 시작한다. 이 문제도 모르겠고, 다음 문제도 모르겠고... 몇 개월 동안 열심히 했고 학원 테스트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았는데 왜 이렇게 모르는 문제가 많지? 내가 알던 유기화학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이러다가 망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마지막까지 붙들고 있었던 문제들... 끝까지 붙들고 있어 봤지만 모르는 지식으로 아무리 봐도 답이 나오지가 않았다. 결국 여러 문제를 찍고 말았다.
점심시간
2교시까지 치르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밥을 먹고 학교 운동장을 산책했다. 일반화학은 괜찮은 것 같은데 유기화학은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아니, 사실은 문제가 너무 어려웠다고 생각했고 나만 어려운 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모두 어렵다고 느끼기를 바랐다. 어차피 점수는 상대평가니까.
PEET 시험 3교시 일반물리
3교시는 일반물리시간이었다. 물리는 고등학교 때부터 내가 좋아하던 과목이다. PEET를 준비하면서 그래도 가장 친숙하고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과목이다. 그래서일까? 공부량이 다른 과목에 비해 적었다. PEET 시험은 망하는 과목이 있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1과목을 잘 본다 하더라도 다른 과목에서 커버가 안 되면 총점수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다른 학생들도 웬만큼 잘 보기 때문에 내가 한 과목을 눈에 띄게 잘하는 것은 어렵다. 모두 90%가 넘는데 내가 한 과목만 100% 받는 것보다 모두가 90%를 넘길 때 나도 70%, 60%를 받는 과목이 없고 고른 점수가 나와야 합격이 가능하다.
그런데 학생들이 실패하는 원인 중의 하나가 나와 같은 경우이다. 자신감 없는 과목은 열심히 하고, 자신 있는 과목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했다. 나에게는 물리가 그런 과목이었다. 시험지를 받아서 문제를 풀기 시작하는데 모르는 문제가 속출하기 시작한다. 유기화학에 비해 물리까지 이런 상황이 되니 멘붕이다. 끝까지 풀지 못했던 문제를 결국 찍으며 마무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자 이번 시험 결과가 어떻게 될지 막막해진다.
PEET 시험 4교시 일반생물
4교시는 내가 막판에 재미를 붙였던 일반생물이다. 생물은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역시나 풀지 못하는 문제들이 있었지만 다른 과목에 비해 문항수가 많아서 내가 아는 것을 제대로 풀기만 해도 승산이 있는 과목이다. 생물은 암기했던 지식을 이용해 푸는 문제가 많다. 다른 사람 신경 쓸 틈도 없이 바쁘게 계산해야 하는 일반화학과 다르게, 문제를 골똘히 보면서 답을 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갑자기 대각선에 앉아있는 학생이 다리를 떨기 시작한다. 신경 쓰지 않고 문제에 집중하려 할수록 다리 떠는 것에 더 신경이 쓰인다. 명상할 때 다른 잡생각을 흘려보내려 노력할수록 다른 생각이 더 머릿속을 헤집고 들어오는 것과 같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제발 그만 다리를 떨었으면 좋겠는데 멈추지를 않는다. 나와 달리 다른 학생들은 초연하게 문제에 집중하는 것 같은데 나는 도저히 집중이 되질 않는다.
나는 다리 떠는 걸 싫어한다. 우리 남편이 다리를 떠는데 나는 그게 거슬려서 다리를 떨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 남편의 사소한 습관이고 오히려 다리를 떨면서 남편의 집중력이 올라갈 수도 있는 걸 알지만 나는 신경 쓰여서 그러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 그래서 PEET 시험 날도 감독관에게 말할까 말까 몇 분을 고민했다. 하지만 당장 내 시험 점수가 중요한데 너무 눈치 보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감독관에게 다리를 떠는 학생이 신경 쓰여서 시험에 집중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감독관은 난처한 듯했다. 다리를 떨어서 소리를 내는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듣게 되었다. 다리 떠는 것에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문제를 풀었다.
사실 모든 문제를 다 맞아야만 합격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내가 모르는 문제가 나만 모르는 것인지 다른 학생도 모르는 것인지, 내가 이 정도 문제를 못 푼 게 합격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는 것인지, 시험 점수가 나올 때까지는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불안하고 초조하다. 그리고 나는 유기화학 때 마지막까지 문제를 풀려고 시도하다가 시간 부족으로 가채점을 위한 나의 답안을 수험표에 적어오지 못했다. 찍은 문제가 많아서 내가 무슨 답을 썼는지 기억이 안 나서 문제를 다시 풀어보며 채점해 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시험 결과가 과연 어떻게 나올지... PEET 시험이 끝나고 점수가 나오는 한 달까지는 내내 초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