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이 있는 이케부쿠로에서 다같이 야마노테선을 타고 시부야로 향했다. 형은 지퍼로 채울 수 있는 점퍼를 입어서 고양이를 자기 품속에 넣고 얼굴만 밖으로 나오게 했다.
“아노 네코 멧챠 가와이야-.“
“소레나-”
지방에서 도쿄로 놀러 온 듯한 여고생 두 명이 고양이 때문인지 우리가 앉은 쪽을 바라보며 속닥거렸다. (나는 귀가 밝고 일본어도 꽤 잘 알아서 그런 말들이 들렸다) 고양이는 울지 않고 얌전히 하지만 그르렁 소릴 내며 전철을 타고 있었다.
“가이드님, 오늘은 어디 갑니까?”
“오늘은~ 에비스라는 곳을 갈 겁니다.”
“에비스? 맥주 먹으러 가냐?”
가족들이 함께 있으니 좋긴 한데 내가 일본에 가장 관심이 많았다는 이유로 날 너무 신뢰하고 있다. 나를 맹신하지 마셔라. 나는 가고 싶은 곳으로 언제든 갈 수 있는 존재입니다.
“맥주 대신에 소바를 먹을 겁니다. “
“시부야 역에 내리면 돼?”
“어, 시부야에 내려서 에비스까지 걸어가.”
엄마와 형은 에라 모르겠다, 니가 알아서 우릴 델꾸 다니겠지 하는지 더 이상 묻지 않았고 누나만이 내게 에비스의 무슨 소바집이냐, 근처에 구경할 거는 뭐냐 하며 물어댔다. 언론일을 해서 그런지 가만있질 못하는 사람이다.
“냐아옹--“
형 품에 조용히 있던 고양이가 범상치 않은 울음소릴 내더니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왜 그래?“
“자 이제 어느 역이냐...신주쿠네.“
엄마가 몸을 일으켜 역을 표시하는 전광판을 보는데 고양이가 푱-! 하고 형의 점퍼를 탈출해 전철 차량 바닥에 안착했다. 푹신한 젤리 덕분이려나.
“야 너 어디 가!“
- 도아가 시마리마스.
고양이는 열린 전철 차문 밖으로 쏜살같이 나가 버렸고, 나도 녀석을 따라 나가려 했지만 문이 닫혀 버렸다. 내가 처음 발견한 녀석이라 마음이 안 갈 수가 없었다. 황급히 차창 밖을 보니 녀석은 벌써 사라진 상태였다. 플랫폼에는 영문을 모르는 사람들만이 드문드문 존재했다.
‘아 이런... 어떡하지.’
다시금 죄책감 같은게 밀려드는 듯했다. 사실 내 고양이는 아니니까 신경 안 쓰고 싶었지만 걱정이 앞서고 있었다. 냥이 너도 나처럼 가고 싶은 곳으로 언제든 갈 수 있는 존재였네. 미안하다, 너를 너무 믿어서.
“*하치공 역시 인기 많아.“
시부야역은 언제나처럼 사람으로 붐볐다. 나는 여전히 사라진 고양이를 떠올렸지만 다른 가족들은 시부야 하치공 앞의 인파에 이미 다 잊은 듯 보였다.
“에비스는 여기서 얼마나 가는데?“
“가까워. 전철로 한 정거장 거리.”
누나의 질문에 답하며 엄마의 표정을 살폈다. 아버지는 생전에 끼니때가 됐을 때 밥을 못 먹으면 짜증을 내셨지만 엄마는 그런 타입은 아니었다. 그래도 약간은 입이 심심하신 듯했다.
“여러분, 편의점에 잠시 들를까요?”
“또 편의점이냐.”
형의 툴툴대는 투의 말에 아무도 반응이 없는 거 보니 편의점보다는 다른 데로 가는게 낫겠다 싶었다.
“맥도날* 어때요?”
“엄마 맥도날* 괜찮아?”
누나가 엄마의 식성을 우려해서 물어봤는데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너겟이랑 애플파이 먹고 싶다 얘.“
“어머 오케이- 울엄마 센스 있네. “
“너겟 소스는 바베큐 소스로!“
엄마는 아버지와 결혼하신 뒤 수십 년간 식구들 먹이시느라 주방에서 노동하셨다. 혼자 자취하며 음식 해먹어 보니 그런 엄마께 감사드리게 됐다. 사람이 내가 아닌 이의 식사를 준비하는 건 숭고하고도 아주 힘든 일이다. 나 먹을거 준비하기도 귀찮은데 네 명의 가족들까지, 얼마나 수고가 많으셨을까.
“제가 사올게요. 여기들 계셔요.”
세 사람을 하치공 근처에 있게 하고 돈키호테 근처에 있는 맥도날*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치공: 주인이 죽은 뒤에도 항상 그 자리에서 주인을 기다렸다는 하치코라는 충견의 별칭. 시부야 역 앞과 미야시타 공원에 동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