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도민이 되다(4)

러닝이 제주를 선택하게 도왔다

by 쏴재

부동산에서 소개받은 법인 소유 아파트는 신탁 등기가 되어 있었다. 집을 보러 갔을 때 그런 세부 사항은 안내받지 못했지만, 부동산 거래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다만, 전세 대출을 받기 위해서는 소유자가 신탁사가 아닌 일반 법인으로 되어 있는 것이 더 유리하다. 은행 담당자 입장에서는 비일반적인 사항이 있으면 대출 절차가 복잡해지기 마련이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행사 대리 역할을 하는 분양대행사와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 과정에서 구체적인 질문을 던졌다.


"신탁을 해지하고 대출 전에 계약서 상 소유주가 법인으로 바뀌는 건가요?"

"아니요. 전세계약 이후에 소유주가 법인으로 돌아옵니다."

"그렇다면 전세금은 신탁사 계좌가 아닌 시행사 계좌로 들어가야 하는 거잖아요? 그러면 대출이 어려울 것 같은데요. 이 부분을 보완할 방안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대출자금 보호 조항을 추가하거나 에스크로를 활용하는 방법으로요."

"계약서 변경은 어렵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다른 분들은 대출받는 데 문제없었어요."

"네? 그게 무슨 말인가요? 당연히 문제가 될 부분인데, 해결 방법에 대해 더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그건 은행에 가서 알아보셔야 해요."


이런 대답은 그에게 매우 황당하게 다가왔다. 이전 직장에서 부동산 펀드를 다루며 은행 및 신탁사와 여러 번 업무를 진행했던 그는, 이런 과정이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문제를 알아채지 못할 만큼 교묘하다는 점에서 놀랐다. 결국, 집을 구하는 일을 잠시 미루고 단기 숙소를 마련한 뒤,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러닝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가 단기로 구한 숙소에서는 남쪽으로 푸른 바다가, 북쪽으로 한라산이 보였다. 짐을 어느 정도 정리한 다음 날, 그는 제주로 오기 전부터 기대했던 러닝을 시작했다. 숙소에서 남쪽 해변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천천히 몸을 풀며 준비운동을 한 뒤, 길게 이어진 올레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바람은 적당히 시원했고, 공기는 서울의 매연과 먼지가 섞인 공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맑았다. 처음에는 몸을 움직이는 데만 집중했지만, 점차 시선은 주변 환경으로 확장되었다. 은빛으로 빛나는 억새가 계절의 변화를 알렸고, 제주의 자연은 그에게 시간의 흐름을 더 강렬하게 느끼게 했다.


러닝은 단순한 운동이 아니다. 처음에는 신체를 단련하기 위한 수단으로 시작했지만, 점차 그의 삶의 중심이 되었다. 아침 러닝으로 하루를 시작하며 그는 몸뿐만 아니라 정신도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러닝은 그에게 일종의 명상이었다. 호흡에 집중하며 다른 생각을 내려놓는 과정에서 스트레스와 감정적 문제들이 자연스럽게 해소되었다.


러닝은 또한 시간을 새롭게 바라보게 했다. 도시의 속도는 목표와 성과를 좇는 사람들에 의해 조급하게 돌아가지만, 제주의 속도는 자연의 리듬을 따른다. 러닝 중 호흡에 집중하면서 그는 자신이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하는 인간의 본능적 한계를 깨달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숨을 한 번에 여러 번 쉴 수는 없다. 결국 삶은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것, 호흡과 같은 단순한 것에 만족하며 사는 것임을 배웠다.


긴 거리를 달릴 때는 정신적인 탄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불편함과 피로가 몰려와도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내면의 강인함을 발견하게 된다. 러닝은 그에게 저항과 인내 속에서 작지만 확실한 성공을 경험하게 해 주었다. 이런 작은 승리들이 모여 삶에서 더 큰 변화를 만들어냈다.


러닝을 통해 사람은 삶이 단거리 경주가 아닌 마라톤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호흡은 현재에 집중하라고 가르치고, 느린 속도는 인내하라고 말하며, 저항을 넘어서라고 응원한다.

'매 순간의 호흡에 집중하라, 삶은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것이다.'

'속도를 조절하라, 모든 것을 한 번에 이루려 하지 말라'

'불편함을 이겨내라, 성장은 언제나 어려움을 넘어설 때 온다'


러닝이 그가 제주를 선택하게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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