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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쏴재 Jul 14. 2022

나와 타인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 진정 가능한 것인가?

명상을 통해 나를 바라보고 명상을 통해 나를 지워낸다. 물아일체?

내가 없으면 기쁨도 슬픔도 없다. 내 고통도 없다. 수행을 통해 열반을 찾는 길도 같은 걸까? 

묵언하며 속세에서 떨어져 나를 찾고 나를 없애기 위한 것인가?


내가 나 자신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타인이 필요하다. 타인이라는 거울이 없으면 나를 보기가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거울이 없다고 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아기가 태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말은 타자인 엄마이고 그 전엔 자아를 인식하지 못한다. 검정 또한 엄마와 분리시키지 못한다.

나 스스로에게 친절하기 위해서는 남이 필요하고. 나의 고통이 더 크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룹에서 분리되는 상실 불안 공포가 크다.


자기를 자기로 존재하기 위한 의식과 감정이 수행으로 바뀔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1. 나를 인식하기 위해선 타자가 필요하다. 

2. 명상이나 수행은 나를 찾고 나를 없앤다.


하나의 결론은 타자가 없으면 내가 없고 내가 없으면 더 이상 수행할 필요가 없다이다.

하지만 사회 속에서 태어나 자라는 동안 타자 없이 성장할 수 있는 경우는 특히 드물 것이다.


타자를 경험하고 체험하는 나의 의식과 감정은 얼마나 불가역적일까?

고독한 것을 즐기는 사람이 인생의 고뇌와 고통이 덜할 것인가?

타인을 사랑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인생의 고통과 고뇌에 더 얽혀버리는 것은 아닐까?


고독을 사랑하고 타인도 사랑하려면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 것인가?

내 그룹의 사람은 자신과 그룹원 타인을 동일시할 것이며 타 그룹은 배척할 것이다.

내가 타 그룹에게 친절하다면 내 그룹의 극렬주의자는 나를 싫어할 수도 있다.

선동꾼들에게선 멀어지고 평화주의자와 함께하는 것이 내가 속한 사회에서 잘 처세하는 방법일 테지.


내가 생각할 때 나의 그룹과 타인의 그룹을 가르는 가장 큰 질문이 바로 삶의 목표이다. 서로의 목표가 너무 다르다면 내가 타인의 삶을 볼 땐 그저 유희일뿐이다. 티브이나 영화 속 희극일 뿐이다.


자의식이란 것은 기본적으로 내 의식을 자기와 다른 무언가를 구분하는 말이다. 다른 무언가가 자기가 될 수 있고 타자가 될 수도 있다. 자기의 의식에서도 자기를 되돌아본다. 무한 거울 같기도 하다.

자기 곁에 무엇을 두냐에 따라 자기 정체성을 선택하기도 한다. 친구. 배우자 물건 등이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결과로 나타난다.

헤르만 헤세가 말했다. 곁에 두기 위해 꽃을 꺾은 사람은 인생의 기쁨에 한 발짝 다가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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