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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산과 그녀

산과 그녀

(6)

by 쏴재

해양생물학과가 있는 대학들 중에서 가장 멀리 있는 곳을 골랐다. 할머니가 사라진 산도, 아버지의 한숨도 닿지 않을 만큼 먼 곳이었다. 그녀가 처음 도착한 날, 서울은 낯설었다. 학교 식당의 밥은 싱거웠고 국물은 늘 미지근했다. 복도를 지나칠 때마다 스치는 사람들 얼굴은 컴퓨터 배경화면이나 벽지의 무늬 같았다. 저녁이면 지하철로 몸을 옮겼다. 객실은 사람들로 가득했지만 모두가 각자의 화면 속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녀는 창밖을 보려 했지만 어둠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만 마주할 뿐이었다.


자취방의 불을 켜면 그제야 하루가 끝나는 삶을 반복적으로 보냈다. 텔레비전을 틀어도, 핸드폰을 들여다봐도 방 안의 적막은 가시지 않았다. 창밖으로 도시의 불빛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였다. 집 마당에서 보던 별들은 이렇게 차갑지 않았다. 할머니의 이야기처럼 따뜻했던 그때의 별들을 생각했다. 가끔 혼자 산책을 나가서 도시의 밤거리를 걸으며 발걸음을 헤아렸다. 할머니는 산에서는 발걸음을 세지 말라고 했지만 이곳에서는 그렇게라도 해야 길을 잃지 않을 것 같았다. 밤이면 종종 창문을 열어두었다.


어머니의 메시지는 항상 비슷한 시간에 왔다. 저녁 여섯 시 삼십 분, 아버지가 퇴근하기 전. 어머니는 그 시간에 늘 부엌에 있었다. 된장찌개를 끓이거나 시금치를 다듬거나.

"지수야, 이번 주말에는 집에 올 수 있니?" "아버지가 퇴직하셨어." "날도 좋은데 잠깐 다녀가지 그러니."그녀는 그 메시지들을 읽고 또 읽는다. 때로는 답장을 쓰다가 지우고, 또 쓰다가 지운다.


이번에는 저녁 일곱 시. 아마도 아버지가 퇴근하고 씻으실 시간. 어머니의 메시지가 또 왔다."오늘 아버지가 네 방 창문을 닦으셨어." 내 방 창문. 그 창문으로 바라보던 산자락이 떠오른다. 봄이면 진달래가 피고, 가을이면 단풍이 들던. 답장을 보내지 않은 메시지들이 쌓인다. 한 통, 두 통, 서너 통. 그것들은 마치 등산로의 이정표처럼 나를 집으로 이끈다. 하지만 나는 그 이정표를 지나치기로 했다. 창가에 놓인 등산화는 먼지가 쌓였고 멀리 보이는 산머리는 일부러 처다 보지 않았다. 할머니처럼 그녀도 그곳으로 숨어들고 싶어질까 봐, 매일 아침 창문을 열 때마다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가 내 방 창문을 닦는 동안, 그녀는 서울의 창문을 닦았다.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그녀는 저녁 여섯 시 삼십 분이 되면 휴대폰을 진동으로 바꾸었다. 바람 좋은 날, 비 오는 날, 눈 오는 날. 어머니의 메시지는 계속해서 왔다. 그리고 그녀는 답장하지 않았다. 할 수 있는 유일한 대화 방식이었다. 침묵으로 대답하는 것. 아버지에게서 배운 그 방식 그대로.


답장을 미루다 보니 다음주가 되었다. 다음주가 쌓여 다음 해가 되고 여러 해가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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