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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당황스러운 독일 택배시스템

그리운 한국의 택배시스템

by su

독일에 와서 나는 마트에서 사기 어렵거나 대량으로 살 때 더 싼 물건들은 인터넷 배송을 이용하고 있다. 이젠 물건 반송도 잘하고 있어 이 정도면 혼자서도 독일 택배에 잘 적응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살았었다.

내가 이용하는 독일 배송 사이트에서는 반송을 할 때 택배업체를 2군데를 선택할 수 있어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배송 업체를 체크하면 가입했을 때의 등록한 메일로 QR코드가 온다. 해당 배송 업체에 반품 물건을 들고 Ich möchte dieses Produkt zurückgeben.(저는 이 물건을 반송하고 싶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QR코드를 보여주면 점원이 스캔을 하면 반송표가 출력된다. 그럼 반송이 완료된 것이다. 처음만 떨리지 몇 번 하다 보니 이젠 제법 발음도 좋아졌다.


운송 서비스하는 곳에서 가져가라는 알람이 왔다.

그러다 최근에 물건을 주문했다. 전기제품이었는데 어제 오기로 했었다. 독일도 한국처럼 언제 도착하는지 알림이 오고 시간도 정확하다. 도착하기 몇 걸음까지 남았다고 나오기도 한다. 이번 택배는 3시부터 7시 사이에 온다고 알림이 왔다. 나는 택배가 온다는 시간은 대부분 집에 머문다. 맡길 곳도 없고 해서 웬만해서 기다린다. 그러다 1시쯤에 갑자기 알림이 오더니 운송 서비스하는 곳에서 가져가라는 알림이 떴다. 유감스럽지만 배송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고 우선 가만히 있었다. 아직 3시가 안 되었으니 기다려보기로 했다. 전화번호까지 안내가 있었지만 전화를 해서 왜 내가 가져가야 하는지 항의를 할 정도로 유창하지도 않다. 그렇다고 이 정도 일은 남편에게 말하지 않는다. 독일어를 못해서 나 혼자 할 수 있다.

아이들이 올 시간에 맞춰 나는 쓰레기를 버리러 밖에 나갔다가 우체통을 확인했는데 어디서 물건을 가져가라고 QR코드가 포함된 종이가 들어가 있었다. 순간 한숨이 나왔다. 인터넷으로 지도를 검색해보니 우리 집에서 25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편리함을 위해 택배를 시켰는데 내가 택배업체에서 가져가야 하다니... 그나마 내가 우리 동네 역 주변 지리는 밝은 편이라 다행이었다. 오늘 3시 이후부터 찾아갈 수 있다고 되어 있어서 아이들이 학교에서 오는 대로 저녁을 챙겨주고 큰 가방과 가방에 안 들어갈 걸 대비해서 마트 가방을 들고나갔다. 독일은 식료품 마트 말고는 대부분 상점들은 7시면 문을 닫는다. 내가 갈 택배 상점은 오늘 7시 30분에 문을 닫는다고 나와 있었다. 그래서 택배 상점이 닫기 전에 얼른 가야 한다.



생각보다 무거웠지만 택배를 찾을 수 있어 다행이다.

내 택배가 맡겨져 있는 곳은 우리 동네 역의 한 핸드폰 가게였다.

독일은 세탁소, 키오스크, 핸드폰 가게 등에서 택배를 받아주기도 한다. 한국은 택배를 직접 택배 하시는 분들이 가져가시지만 독일은 그렇지 않다. 최근에 반품을 해보면서 내 주변에 택배를 받아주는 곳이 이렇게 많은지 처음 알았다.

금요일 6시라 사람들이 역 주변에 많았고 북적북적했다. 그동안 나는 저녁 6시에 역 주변을 나온 적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 아침 일찍 마트를 가다 보니 한적한 역 주변만 보다 북적북적 되는 역 주변을 보니 조금 낯설었다.

지도의 안내에 따라 택배를 찾으러 가니 조금 왜진 곳에 있는 핸드폰 가게였다. 그래도 그동안 가족들과 자전거를 타고 주말에 지나다니던 길이라 좀 익숙했다. 핸드폰 가게에는 터키 아저씨 2명이 있었다. 나는 인사를 하고 Ich bin hier, um ein Paket zu holen.(저는 택배를 가지러 왔습니다.) 하고 QR코드가 있는 종이를 보여주고 이름을 이야기하니 택배를 줬다. 우리 택배 말고도 주인을 기다리는 택배들이 많았다. 이 업체를 쓰면 이렇게 가져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할 말은 많았지만 인사만 하고 주말 잘 보내라고 인사까지 하고 나왔다. 나는 항상 마트나 상점을 나올 때 뭐라도 말을 하고 나와야 무시하지 않을 거 같은 생각에 습관적으로 열심히 인사를 하고 나온다.



물건 부피가 커서 뒤로 매는 가방에는 안 들어가고 다행히 장바구니가 있어 그 안에 넣고 걷기 시작했다. 집에 오다 우리 동네 역에 휴지를 싸게 파는 곳이 있어 온 김에 휴지를 20개짜리를 2개나 샀다. 오면서 괜히 샀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가 독일에 오고 나서 물가가 많이 올라 다른 곳 보다 싼 게 있으면 미리 사려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나는 한쪽 어깨에는 택배를 메고 양쪽에는 휴지를 들고 걸어오는데 길거리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커피를 마시던 아저씨 2명이 나보고 뭘 샀냐고 물어보길래 나는 휴지를 샀다며 휴지를 산 마트 이름까지 이야기하고 지나왔다.

나는 택배를 가지러 역 부근까지 갔다 오면서 사실 무겁고 살짝 화가 났다. 그래도 집에 오다가 터키 아저씨의 독일어를 알아듣고 대답을 한 것에 내가 알아듣고 대답했다는 것에 기분이 좀 나아졌다.

독일에 와서 택배 반송도 해보고 택배를 직접 찾으려도 가보고 하면서 내가 한국에서 편리하게 택배를 이용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름 열심히 적응하려고 노력하는데 아직도 나에게 적응기가 필요한 거 같다. 이런 상황에도 왜 그런지를 묻고 알아들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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