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지금 독일 카셀에서 현대미술전시회가 열리고 있다며 주말에 아이들과 가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했었다. 아는 지인에게 이야기를 들었다며 5년에 한 번 열리는 카셀 도쿠멘타가 있다며 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맛있는 음식점도 알려주며 독일어로 예약을 부탁한다고 했다. 나는 독일 식당도 예약하고 내심 기대에 부풀었다.
사실 독일에서 주말마다 운전을 하고 나가는 것은 쉽지는 않다. 내가 사는 프랑크푸르트에서 유명한 관광지를 가기 위해서는 운전을 많이 해야 한다. 보통 2~3시간, 아님 4시간 정도 이상을 운전하고 가야 관광지들이 나오기 때문에 주말에 남편에게 있어 왕복 4시간 이상 운전은 피곤하다. 이런 상황에서 같은 헤센주에 속해있는 Kassel은 시간도 적당하고 우리 가족이 구경가기 좋은 도시였다.
독일 식당을 13시에 예약을 해놓은 상황이라 우리는 천천히 준비하고 Kassel로 향했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해 식당에 가서 예약한 이름을 대고 우리가 조금 일찍 왔다고 이야기를 하자 점원은 괜찮다고 점자리로 안내해줬다.
우리는 독일 식당에 왔으니 독일식 스파게티도 같이 주문했다. 우리 옆에는 독일 어린이 생일파티를 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하는 생일파티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우리가 간 곳은 야외식당이었는데 독일 어린이들이 식사를 하고 뛰어놀고 부모님들은 식사를 했다. 독일 어린이 생일파티도 구경하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점심식사를 했다. 다행히 독일의 여름은 해는 너무 뜨거운데 습하지는 않다. 그래서 여름에 밖에서 밥을 먹어도 해가 뜨거울 뿐이지 땀이 많이 나지 않는다.
Spareribs, Käse Spätzle, Schwinne Pfanne, Burger Die Modder 독일 음식에서 감자는 절대 빠지지 않는다.
우리는 맛있는 점심식사를 마치고 현대미술전시회가 열리는 곳으로 향했다. 그러나 Kassel 벼룩시장이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독일은 주말마다 벼룩시장이 열리는 곳이 많기 때문에 언제 벼룩시장을 만날지 몰라 항상 지갑에 현금을 들고 다녀야 한다.
독일 벼룩시장에는 돌에서부터 뜨개질, 책, 옛날 액자, 옛날 컵 등 잘 찾아보면 좋은 것도 많고 구경하는 재미가 좋다. 요즘 돌 모으기에 취미를 붙인 남편은 벼룩시장에 나온 돌부터 열심히 관찰을 한다. 내가 그동안 참여한 독일의 벼룩시장의 경우 돌은 항상 빠지지 않았다. 나는 요즘 상대방의 말에 호응하는 것에 대해 아주 적극적이어서 돌을 판매하는 할머니에게 돌이 너무 예쁘다. 목걸이가 멋지다. 등 최대한 독일어 발음으로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벼룩시장은 물건도 물어봐야 하고 가격 흥정도 해야 하니까 이보다 독일 현지인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없다. 돌을 파신 할머니는 집에 있는 걸 갖고 나오셨다고 이야기하셨다. 흰머리도 꽤 있고 나이가 지긋하셨는데 말씀하시는 모습은 소녀 같으셨다. 비닐도 다 준비해오셔서 돌을 잘 담아주셨다. 우리는 벼룩시장에서 작은 돌을 구입하고 물건을 판매하신 할머니와 인사를 하고 다시 전시회로 향했다.
독일 벼룩시장, 우리 동네나 Kassel 이나 벼룩시장엔 없는 게 없다.
전시회가 열리는 방향으로 향할수록 사람들이 많아졌다. 가다가 길게 줄 서있는 아이스크림 가게가 나오면 또 줄을 서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이러다 전시회를 볼 수 있겠냐 싶어 얼른 아이들을 재촉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전시회는 한 곳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이 건물을 중심으로 두고 여러 곳으로 분산되어 우리가 찾아다니며 구경을 하는 것이었다. 남편과 나는 고민 끝에 시간이 늦은 오후고 하니 여기 시내 구경을 하다 다른 곳을 찾아 구경을 하고 집에 가기로 했다. 다행히 여기서 10분 좀 넘게 걸리는 곳에Löwenburg가 있었다.
전시회가 여러 곳에서 열리고 있다.
우리가 차를 타고 Löwenburg에 가기 위해 주차장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우리 옆 쪽으로 큰 기둥이 눈에 띄었다. 뭔가 싶어 계단을 올라가서 읽어보니 독일어로 나는 이방인이었고 너는 나를 접대했다.라고 쓰여있었다. 독일어 외에도 각 면마다 영어와 다른 2개 언어로 같은 뜻이 쓰여있었다.
나는 읽으면서 글의 내용이 많이 와닿았다. 독일은 난민이나 이민자를 많이 받는 나라이다. 그러나 보니 세계 각국의 나라에서 이민을 온다. 내가 듣는 독일어 수업에서도 굉장히 다양한 나라에서 이민을 온 친구들이 많다. 나는 이 탑의 글이 현재 독일사회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는 거 같았다.
우리는 누구나 이방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타인의 따뜻한 배려나 관심도 적응하고 변화할 수 있다. 나는 남편과 아이들과 이 글을 읽고 걸어오면서 글이 너무 따뜻하다고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누구나 이방인이 될 수도 있고 주변에서 이방인을 만날 수 있지만 상대방에 대한 따뜻한 배려를 가지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심오 있는 이야기를 했다. 비록 현대미술 전시는 못 봤지만 큰 울림을 주는 탑을 보고 와서 기분이 따뜻했다. 아마 내가 아직 독일 사회에서 이방인이기 때문인 거 같다.
나는 이방인이었고 너는 나를 대접했다.
우리는 따뜻한 Kassel을 느끼며 Löwenburg에 도착했다. 차를 주차하고 걸어가야 나오는 성이었다. 우리는 걸어갔지만 자전거를 타고 오는 할머니, 할아버지도 계셨고 심지어 어린 남자아이가 아빠와 자전거를 타고 온 경우도 있었다. 독일인의 자전거 사랑은 정말 최고인 거 같다.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며 숲을 15분 정도 걸었을까 동화 속에 나올 법한 성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성이 크지는 않았지만 굉장히 견고해 보였다. 아이들을 위한 행사로 성 모양의 뛰는 모형도 준비되어 있었고 성 안에서는 어린이들에게 풍선도 귀여운 동물 모형으로 만들어서 무료로 나눠줬다.
그러나 시간이 다 돼 나의 앞 앞에서 끊겼다. 내 앞에 여자아이는 정말 울 거 같았고 나도 아쉽고 둘째도 아쉬워했다. 풍선을 만들어주시는 분이 5시에 끝이라고 하니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좋은 공기를 마시며 산속에 있는 성을 구경하기 위해 운동도 하고 가족과 대화도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좋았다.
한참을 걸어올라오다 보니 아이들 놀이터 성이 보였다. 둘째는 이게 성이냐고... 다행히 옆에 Löwenburg가 있었다.
성 내부
어린이들에게 무료로 해주는 행사인데 내 앞의 앞에서 끝났다. 진짜 아쉬웠다.
계획에 짜인 나들이도 좋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가족과 함께 간다며 어느 나들이건 행복한 거 같다. 비록 카셀 도쿠멘타는 못 봤지만 생각지도 않는 탑의 글을 보고 마음이 따뜻해진 시간이었다. 요즘 내가 나이가 들었는지 요즘은 이런 문구를 보거나 하면 마음의 울림이 크다.
Kassel은 유네스코 선정된 문화재도 많으니 오늘 못 본 다른 문화재들과 정원, 그리고 5년에 한 번만 열린다는 카셀 도쿠멘타 전시를 볼 겸 다시 한 번 방문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