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 Oct 20. 2021

아이들을 기다리는 마음

난생처음으로 가족을 위해 식빵을 만들어봤다. 빵이 익어가는 시간이 생각보다 즐거웠다.

  어제 독일은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새벽에 창문을 열 때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오후 3시 정도까지 내렸으니 꽤 오래 내렸다. 차라리 소나기처럼 내리고 말면 좋은데 하루 종일 잔잔하게 비가 내리니 내 기분도 같이 처지는 거 같았다. 환기를 한다고 하루 종일 창문을 열어놓으니 빗소리가 더 잘 들렸다.

  이번 주 월요일부터 아이들이 8시면 학교로 갔다.  나는 독일에 와서 하루를 길게 쓰기 위해 한국에서 직장을 다녔을 때처럼 동일하게 5시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가족들이 일어나기 전에 모든 걸 해놓고 깨울 때가 내 나름의 행복감이 있다. 8시에 남편과 아이들이 다 가버리고 집안 일도 새벽에 다 해놨으니 지금부터가 나와의 시간이다. 한국에서라면 이렇게 청소를 하고 같이  출근을 했을 텐데 여기서는 집에 있으니 조금 이상했다. 한국서 직장을 다닐 때는 쉬고 싶을 때도 있었고 아이들과 온전히 있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근데 막상 아이들과 남편이 가버리니 이 적막감이 익숙하지가 않았다. 너무 고요해도 고요했다.

드디어 건포도 식빵이 완성되었다.  정말 맛있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식빵의 맛이 났다. 항상  우리 아이들은 맛있단다.

  나는 커피 한잔을 내리고 독일어 공부를 시작하려고 안경을 끼고 거실 책상에 앉았다. 그러나 공부도 안 되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서 잘하고 있을지 여러 가지 생각이 났다. 조금 끄적이며 공부를 하고 나서는 아이들이 집에 오면 배가 고플 거 같아 그리고 내일 학교에서 먹을 간식도 사야 할 겸 마트에 갔다. 사실 마트를 가면서 이리도 집중력이 없나 나 스스로 책망을 했지만 아이들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해주겠다는 마음이 더 큰 거라고 스스로 위안을 했다.

   나는 아이들이 오면 환하게 반겨주며 간식을 챙겨주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한국에선 항상 바쁘게 공부하라고 재촉하는 엄마였는데 독일에서는 아이들을 기다리며 여유로운 엄마가 되고 싶었다. 천천히 카트를 끌며 장을 보다가 제빵 코너에 미처 보지 못했던 밀가루며 쿠키 만들기 재료 등이 눈에 띄었다. 사실 빵은 안 만들어봤는데 한 번쯤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었다. 집에 오븐기도 있겠다 이때다 싶어 몇 가지 재료를 구입했다. 인터넷의 레시피를 보고 처음 도전이었지만 나름 선방했다. 빵을 반죽하고 만들고 기다리는 시간 동안 정말 맛있게 돼서 아이들이 오는 시간에 따끈한 빵이랑 잼이랑 해서 간식으로 주면 좋겠다는 기대감으로 부풀었다. 근데 아직 모든 물품이 구비가 되지 않아 100%의 완성은 아니었다. 신기하게도 식빵 맛은 났다.  역시 전문가들이 넣으라는 것은 다 넣어야 하는 거 같다.



스파게티면이 들어간 짬뽕이지만 맛은 일품이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하면 된다.

  식빵과 함께 지난번에 짬뽕이 먹고 먹고 싶다고 해서 면대신 스파게티 면으로 한참 요리를 만들고 있는데 첫째가 전화가 왔다. 지금 끝나서 동생을 놀이터에서 찾고 있는데 애들이 너무 많아 힘들다며 동생도 핸드폰을 하나 해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첫째에게 잘 찾아보고 찾으면 같이 버스를 타고 오라고 했더니 알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첫째는 엄마가 집에 있으니까 너무 좋다고 이야기를 했다.  

  집 근처에 오면 전화하라고 이야기를 하고 마중을 나가 있었다. 아이들은 각자 짐을 매고 차에서 내렸다. 사실 둘째가 자기는 벨을 누르지 않고 엄마가 나와있어 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더 신경을 써서 나가 서있었다. 아이들이 집에 오자마자 피구에서 피구왕이 되었다는 이야기, 간식 시간 이야기, 독일어 이야기 등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러면서 집에서 맛있는 냄새가 난다고 해서 짬뽕을 해놨다고 이야기를 했다. 아이들은 신나서 맛있겠다며 아직은 학교 점심이 입맛에 안 맞는다고 집에 오면 배가 고프다고 했다.  얼른 손 닦고 오라고 이야기를 하고 짬뽕과 빵을 주었다. 사실 음식 궁합으로는 안 맞는 거 같은데 아이들은 역시 식당을 차려도 된다면서 맛있다고 이야기를 해줬다. 고요하던 집이 순식간에 북적북적 되었다.



  아직은 나도 아이들과 남편을 보내고 혼자 있는 시간의 적응이 필요하다. 당분간은 이렇게 아이들을 위해 음식을 해놓고 기다리는 시간을 즐겨봐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독일에서 찾은 취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