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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 Nov 06. 2022

독일에서 거절하는 법을 연습 중이다.

  이웃의 택배에 함부로 서명할 수 없어요.

  이번 주 목요일에 우리 집 벨이 울렸다. 택배기사님이었다. 나는 대부분 마트에서 물건을 사기 때문에 택배를 받을 게 없었는데 계속 우리 집 벨을 누르길래 무슨 일인가 하고 나가봤다.

  무슨 일이냐고 하자 택배 기사님은 나에게 택배를 보여주며 택배 시킨 이웃이 지금 집에 없다고 말을 하셨다. 보통 나는 그럴 때 입구에 두고 가라고 이야기를 드린다. 우리 이웃들은 집에 없을 때가 많고 나는 독일어 학원을 갔다 오고 대부분 오후에 집에 있기 때문에 이웃의 택배를 많이 받아주게 된다. 사실 한 두 번도 아니고 내 택배도 아닌데 현관문을 열어주고 받아서 입구에 두고 가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현관 입구에 모인 택배들은 퇴근하고 오는 이웃들이 찾아간다.

  나는 이번에도 택배 기사님에게 택배를 입구에 두시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이 택배는 핸드폰이라며 받는 사람의 서명이 필요한단다. 택배 기사님은 나보고 서명을 하고 그 집에 갖다 놔 달라고 이야기를 하셨다. 나는 나도 모르게 택배 기사님에게 핸드폰은 비싸고 중요하다.라고 하자 택배 기사님은 나보고 맞다. 핸드폰은 비싸고 중요하다. 그러니 나의 서명이 필요하다고 이야기를 하셨다. 심지어 핸드폰 박스도 3개였다. 나는 택배 기사님에게 나는 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이 사람이 누군지도 모른다고 이야기를 했다. 가끔 만날 때 얼굴만 봤지 외국 이웃들의 이름을 알 길이 없다. 괜히 서명까지 했는데 분실되면 난감할 때 뻔하다. 속으로 이렇게 중요한 것은 직접 본인에게 줘야지 왜 이름도 모르는 이웃에게 서명을 강요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택배기사님에게 다시 서명을 할 수가 없고 이 이웃 이름을 모른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이건 직접 이웃이 받아야 한다.라고 하자 택배기사님도 그렇다며 근데 이웃이 없다고 말을 하길래 나는 택배에 서명할 수 없다.라고 이야기를 하자 택배 기사님이 뭐라고 하면서 가셨다. 들리기에 좋은 억양은 아니었다. 이럴 땐 독일어를 잘 못 알아 드는 것도 나쁘지 않은 거 같다.



 거절할 수 있는 용기

  택배 기사님이 가고 나서 받아서 보관했다가 줄 걸 그랬나? 하는 생각과 그래도 이름도 모르는 이웃을 집에 보관하거나 택배를 잘 못 뒀다가 문제가 생기는 것보다 직접 본인에게 가는 게 낫지 하는 생각 등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내가 내린 결론은 택배기사님이 핸드폰을 3개나 시킨 이웃에게 전화를 하겠지 라는 생각으로 마무리지었다.

  마냥 상냥하고 다 받아주는 이웃일 수는 없다. 사실 나는 그런 걸 잘 못하는 성격이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인데 내가 못하거나 하기 싫은 건 당당히 거절할 수 있는 게 용기도 필요하다. 거절하는 것도 연습이 필요한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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