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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 Nov 01. 2021

독일 마트 물세일하는 날

미련해 보이지만 말 못 할 뿌듯함을 느낀다.  

물 3묶음을 정말 겨우겨우 들고 왔다. 근데 이 중에 하나가 터져있었다. 이래서 언어를 배워야 한다. 나는 반품을 할 자신이 없어 반만 남은 물 한 통은 그냥 잔디에 양호했다

  나는 이젠 제법 핸드폰 앱으로 마트별로 회원가입을 하고 쿠폰을 다운로드할 줄 알게 되었다.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 거 같다. 독일어를 잘 몰라도 하도 회원가입을 하다 보면 이게 동의구나 싶어 누르면 가입이 된다.

  내가 핸드폰 마트별 앱을 깔게 된 이유는 동네 무료신문에 껴오는 전단지에 우리 동네 마트 것은 하나밖에 없어서 다른 곳의 세일을 알 길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신문은 신문대로 모으고 앱을 깔기로 했다. 동네 마트마다 검색을 한 후 다운을 받고 인적사항 등을 적으면 메일이 오고 회원가입이 되었다고 축하한다는 메시지가 온다. 그럼 가입이 된 것이다. 이젠 집주소와 우편번호 등을 안 보고도 친다.

 나는 앱에 들어가 이번 주 쿠폰을 하나씩 다운을 받다 이번 주는 RE**마트에서 물세 일을 한다고 나와 있었다. 아.. 물이라면 지난번 2묶음을 들고 오다 죽음을 맞봤는데 사실 고민이 살짝 되었다. 너무 힘들 거 같았다. 더구나 이 마트는 우리 집에서 20분을 걸어가야 한다. 가다 신호등도 많고 넘어야 할 난관이 많았다. 그렇다고 이런 물세일을 그냥 넘어간다면 난 주부 9단에 진입할 수가 없다.   


  물세일을 하는 마트는 아침 7시부터 문을 연다. 나는 아이들과 남편에게 선전포고를 하듯이 내가 내일 물을 2묶음을 사오겠노라 이야기를 했다. 애들은 엄마 지난번에도 너무 힘들었는데 그냥 물을 적게 먹으면 안돼요? 힘들 거 같아 걱정된다나.. 남편은 무거우니 독일에서 산 자전거를 타고 가라고 했고 나는 과감히 걸어가겠노라 이야기했다. 사실 독일에서는 자전거를 탈 때 수신호도 하고 자전거 도로에서만 타야 하고 바퀴도 엄청 크다. 나는 독일에 와서 독일 아이들과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보고 자전거 타기에 자신감이 잃었다.

  어차피 5시에 일어나 집안일을 다 끝내 놓으니 앉아있는다고 독일어 공부가 잘 되는 것도 아니고 해서 아이들은 학교에 남편은 회사로 나는 마트를 향했다. 지난번 실수를 번복하지 않기 위해 엄청 큰 배낭을 메고 주말에 산 장갑을 꼈다. 장갑을 껴야 무거운 걸 들어도 내려놓지 않고 당당히 걸어갈 수 있다. 내가 마트를 다녀본 결과 나같이 독일어 잘 못하는 사람들은 아침 일찍 사람들이 없을 때 가는 게 제일 좋다. 사람들도 많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8시 10분쯤 마트에 도착했을 때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았다. 역시 독일 사람들은 부지런하구나 싶었다. 나는 물 코너로 가서 2묶음을 살지 3묶을 살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물세일의 경우 2,3일이면 끝나기 때문에 일찍 와서 사야한다. 그래서 남편이 쉬는 주말에 장보기를 내가 포기한 것이다. 그 때가면 세일하는 물건들이 많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물을 하나씩 사서 여러 번 가느냐 한 번에 사느냐 생각보다 고민이 되었다. 난 결국 과감하게 3묶음을 선택했다. 큰 배낭에 6개 넣고 양손으로 하나씩 들고 오겠노라고.. 결재를 하고 가방에 넣고 양손으로 들고 오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창피함이라기보다 나를 신기하게 보는 듯했다. 아무 말 없이 나는 힘들다는 표정 없이 차분한 얼굴을 들고 왔다. 사실 너무 무겁고 어깨가 나갈 거 같고 했지만 물이 채워졌을 때의 기쁨을 상상하며 걸었다. 장갑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장갑이 두툼해서 안 아팠다. 주말에 1.49유로를 쓴 게 하나도 안 아까웠다.

 



  집에 와서 물을 내려놓고 기쁨의 사진을 찍는데 물 한 통이 이상했다. 아래 구멍이 나 있어서 반밖에 없었다. 순간 짜증이 밀려왔지만 이걸 다시 들고 가서 환불한 자신과 체력이 없었다. 그래. 세일했으니 하나 정도는 내가 넘어가자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가을바람이 많이 부는데 나혼자 땀을 내고 걸어왔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 거 같다. 처음에 물 2묶음이 너무 힘들었는데 이젠 3묶음이 가능하다. 물이 17개를 일렬로 세워놓았는데 너무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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