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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 Dec 25. 2021

독일에 한국 짐이 도착했다.

독일 집에 한국 짐의 조화

  이번 주 월요일은 드디어 한국에서 부친 우리 한국 짐들이 독일 우리 집으로 오는 날이었다. 해외에 나와 살아보는 게 처음인 나는 이삿짐을 받는 것도 처음이었다. 한국에서 이삿짐을 쌀 때 한국의 해외이사팀 직원 분이 해외에서는 짐을 정리해주거나 하지 않는다는 말만 들었을 뿐 사실 어떻게 이뤄지는지는 감이 안 왔다.

  나는 이삿짐이 온다는 생각에 잠도 제대로 못 잤다. 남편과 지난주부터 짐을 어떻게 놓을지 구상을 하고 종이에 그림까지 그려놨지만 무슨 감정인지 잠이 잘 안 왔다. 예전 초등학교 다닐 때 소풍 가기 전날의 감정이랄까.  3개월 만에 받아보는 이삿짐이라 더 그런 거 같았다.

  나는 새벽에 일어나 빨리 해가 뜨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독일은 해가 너무 늦게 뜬다. 7시에 창문을 열어 봤는데 밤같은데 해는 뜨고 있었다.

이삿짐 오는 날 멋진 풍경이 연출되었다.

이삿짐이 들어오는 역사적인 순간이다.

  이삿짐이 9시 전에 온다고 해서 나는 아이들과 남편과 밥을 먹고 아이들은 짐이 안 들어가도 되는 방에서 숙제와 자유놀이를 할 수 있도록 하고 큰 애에게 동생을 잘 데리고 있어 달라고 부탁을 했다. 큰 애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남편과 나는 마스크와 장갑을 끼고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나는 차 소리만 들어도 나가서 이삿짐이 오는지 확인을 했다.

  드디어 이삿짐 차가 들어오고 이사업체 회사 한국 직원분들도 오셨다. 한국인을 만나니 너무 반가웠다. 나는 이사업체 외국분들에게 Guten Tag이라고 인사를 했는데 알고 보니 폴란드분들이란다. 독일어도 어려운데 폴란드 언어는 배울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해외에 3개월 살아보니 각 나라 인사말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할 것 같다.

이삿짐이 도착했다.

 

  폴란드 이사업체 직원분들은 키가 정말 컸다. 말을 할 때 위를 봐야 해서 목이 아플 정도였다.

  해외 이삿짐센터에는 부엌을 담당해주시는 이모님이 없기 때문에 내가 부엌에서 대기하고 남편의 진두지휘로 어디에 짐을 둘 지를 안내해줬다. 대충 짐만 놓고 박스만 풀어주면 나는 정리를 할 생각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나는 청소와 정리하는 걸 좋아한다. 그러나 짐들이 계속 들어오고 계속 쌓이는 걸 보고 있자니 언제 정리를 하나 싶어 걱정이 되었다.

  부엌 외에 다른 짐들은 남편이 어디다 둘 지 안내를 해주고 나는 부엌에서 짐을 풀어 정리를 시작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부엌용품도 많았고 3개월 동안 박스 안에 있었으니 바로 그릇을 쓰기 어려울 거 같아 그릇이 나오는 대로 식기세척기에 넣어 소독을 했다. 독일에 와서 처음 식기세척기를 써보는데 신세계다. 그렇게 부엌을 정리하고 나니 2시 정도가 되었다. 부엌은 완벽하게 되었다. 나 스스로 너무 뿌듯했다. 우선 부엌이 정리가 되어야 이삿짐센터 직원분들이 가면 아이들에게 점심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거실이나 애들 방에도 짐들이 어느 정도 다 들어가고 이삿짐 박스들은 밖에 다 두었다.

  남편은 어느정도 짐정리가 마무리될 쯤 일이 있어 회사를 가야 했다. 회사를 가는 남편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언제 정리를 하나 싶은 표정이었다. 나는 걱정하지 말고 가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다행인 건 언어가 통하는 한국 직원이 있어 폴란드 이삿짐 팀장과 함께 집을 돌아다니며 파손된 곳들을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고 계약서 같은 곳에 서명을 하고 마무리를 했다.

 이제부터 나의 이삿짐 정리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방 안에 갇혀있던 아이들은 이삿짐 업체가 돌아가자마자 밖으로 나왔다. 아이들은 배가 고프다고 했다. 이삿날은 짜장면이지 하며 짜파게티를 끓여주었다. 여기 와서 한국 중국집의 짜장면이 너무 먹고 싶긴 한다. 이건 내가 해줄 수가 없다. 어디다 시켜먹을 수도 없고 오늘은 다 간편식으로 해주겠다고 아침부터 이야기를 했던 터다. 아이들은 짜파게티도 너무 좋단다. 나는 아이들에게 점심을 차려주고 거실 정리를 시작했다. 한국에서 한국 이사는 이삿짐을 싸는 분이나 정리해주는 분이 같기 때문에 거의 99.9% 이상 제자리에 넣어주시는데 여기는 이삿짐을 싼 분들과 정리를 해주시는 분들이 다르기 때문에 제자리에 있을 수 없다. 그래도 고맙게도 비슷하게 넣어주고 가셨다.

  이삿짐센터가 가고 정말 발에 모터단 것처럼 빠르게 정리를 하고 나니 저녁 8시가 되었다. 정말 힘들었다. 거실을 정리하고 거실에 있던 걸 안방에 가면 안방은 그대로이고 정리는 하는데 정리가 안 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꾸준히 정리를 하다보니  어느 정도 짐들이 제자리에 들어갔다. 나는 아이들과 남편이 밤에 잠은 자게 해줘야 하기 때문에 정말 부단히 정리를 했다.

  남편이 퇴근하고 와서 밤에 와서 정리한 것을 보고 놀랐다. 나 스스로 너무 대견하고 뿌듯했다. 나머지 잔짐들은 내일부터 더 깔끔하게 정리할 생각이었다. 한 번에 다했다가 아프면 나와 가족들만 고생이다. 그렇게 이번 주 수요일까지 모든 정리를 깔끔하게 끝냈다.



  이젠 청소기도 있어서 빗자루질을 안 해도 되고 헤어빔도 와서 머리에 쓰고 있어도 되고 전기밥솥도 와서 냄비밥을 안 해도 된다. 한국 짐들이 안전하게 다 오니 몸도 편해지고 마음도 든든해졌다. 3일 동안 짐 정리가 다 되고 나니 정말 집 같은 집이 되었다.

  나는 이번 이삿짐 정리를 통해 한 번 더 정리의 기술을 터득하게 된 거 같다. 근데 2번의 해외이사는 힘들 거 같다. 한동안 파스를 어깨와 허리에 부치고 있어야 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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