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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야 Sep 20. 2024

떼쓰며 울던 아이가 흐느끼며 웁니다

아이가 다섯 살이 되니,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지는지 점점 질문도 많아진다.

스파이더맨에 빠져 있던 아이는 무얼 먹으면 손에서 거미줄이 나오냐는 엉뚱한 질문을 하기도 했고,


“엄마는 어렸을 때가 좋아, 지금이 좋아?”


다소 철학적(?)인 질문을 하기도 했다.

여섯 살이 되어 연도에 대한 개념을 알고, 자신이 2003년에 태어났다는 걸 알고 나서는 그러면 자기가 2002년에는 어디에 있었냐고 묻는 것이다.


“그땐 없었지.”


라고 대답했는데, 어떻게 자기가 없을 수 있냐면서 방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운다.

사람의 손에선 거미줄이 나올 수 없다고 했을 때도 실망은 했지만 울지는 않았는데, 아이의 우는 모습이 꽤 당혹스러웠다.



성장하는 아이를 보며 뿌듯한 마음이 들지만, 한편으론 점점 겁이 난다.     

아이가 더 자라서 엄마, 아빠가 이혼한 걸 알고, 그러려면 왜 날 낳았냐는 원망 섞인 말을 듣게 될까 봐 겁이 난다. 그 정도면 다행인데, 행여나 자신을 삶을 비관하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고민이 되었다. ‘종교를 가져볼까?' 하는 고민을 깊게 하게 됐다.

종교에 대한 열린 생각으로 이곳저곳 탐색하려고 마음먹었지만, 결정은 너무 쉽게 집 앞의 교회를 다니기로 다.

그렇게 된 데에는, 그즈음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고교 동창이 한몫했다. 그리고 나, 그때까지 살면서 종교를 접해본 게 교회밖에 없었다. 어쩌면 익숙한 곳이 편했는지도 모르겠다.          

고교 동창의 권유로 아이와 한 번 교회에 갔다.


"우리 앞으로 일요일마다 교회 갈까?"


집에 오는 길에 아이에게 물었더니, 아이는 흔쾌히 좋다고 했다.



일요일에는 아이와 하루 종일 놀아줘야 하는 것도 힘들었는데, 교회에 가니 나는 나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예배를 드리고, 예배가 끝나면 함께 점심을 먹고,

나는 성가대 연습을 하고, 아이는 또래 아이들과 뛰어놀고 하니 오히려 하루가 더 빨리 지나갔다. 아이는 아이대로 친구를 사귀고, 나는 나대로 친구를 사귈 수 있었다.          



그러나 왜 이혼했냐는 질문을 받는 건, 내가 사람을 사귈 때 들어야 하는 통과의례처럼 되어 버렸다.

     

"요즘 유행이잖아. 내가 좀 유행을 앞서가는 사람이거든.”

     

무례한, 그래서 별로 친해지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렇게 대답하고 말았는데, 교회에선 그러지 못했다. 나의 구질구질한 이야기를 풀어놓아야 했다.



그런데 놀라운 건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이혼하고 싶어 안달 난 사람들이었다.

오히려 자신의 사연을 풀어놓으며, 자신도 이혼하고 싶다고 내게 하소연을 해 온다.

‘이혼하고 싶으면 하면 되지, 왜 내게 하소연이란 말인가.’

그런 일이 반복되니 짜증도 났지만, 그런 것에 짜증 낸다면 난 세상 외톨이로 살아야 할 것이다. 그냥 참는다. 하지만 재밌는 것이 그들 중에 두 사람은 몇 년이 지나서 이혼하고 만세를 부르며, 무슨 합격 소식을 전하듯이 기쁨에 찬 얼굴로 자신의 이혼을 나에게 보고하듯이 말하기도 했다.           



교회의 많은 사람들이 내가 이혼녀라는 걸 알았다. 행여나 아이가 이런 말을 듣게 될까 봐 겁이 났다. 언젠가 알게 될 일이지만, 남에게 듣게 하는 것보다 내가 먼저 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요일 밤, 저녁을 먹고 아이와 씻고 누웠다. 난 아이에게 조심스럽게 결혼과 이혼에 대해,

그리고 나의 이혼에 대해 얘기했다.


“미안해.”


 "괜찮아.”


라고 말하며, 아이는 흐느껴 울기 시작한다. 아이가 이렇게 우는 걸 처음 본다.   

  

"너 하고 싶은 대로 더 크게 울어도 돼."    

 

라고 말했지만, 아이는     


"아니야."     


라고 대답하고도 한참을 흐느껴 울었다.

나 이혼을 했을망정 그동안 아이에게 좋은 엄마라고 자부했는데, 아이의 울음을 보니 또 자책감이 밀려온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친김에 아이 아빠에게도 얘기했다. 아이에게 우리의 이혼 사실을 알렸으며, 이젠 아이가 컸으니, 아이를 보러 오거든 아이와 둘이 시간을 보내라고 했다.

아이 아빠는 결국 이거였냐며, 버럭 화를 냈다.

아이 아빠는 아이를 만나러 왔을 때, 종종 내게 재결합 의지를 보이곤 했다. 어떨 땐 못 들은 척했고, 어떨 땐 난 절대 그럴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결국 이거냐니? 동상이몽이 따로 없었다.



아이 아빠는 체취가 보통 사람들보다 좀 강한 편이었다. 연애할 땐 그 냄새가 좋아서 가슴팍에 코를 박고 있었는데, 요즘은 반경 1미터 안으로 들어오면 그 냄새가 역하게 느껴져 슬쩍 뒤로 물러나게 된다. 몇 년 사이 확 늙어버린 것도 아니고, 같은 냄새일 텐데 신기하게도 코가 먼저 내 마음을 알아차렸다.      



때를 놓친 후회와 반성은 아무런 효력이 없었다.



괜히 내가 나쁜 사람이 된 것 같다. 나 혼자서 잘 키울 테니, 양육비 안 보내도 된다고 말해 버렸다. (돌이켜 생각하면 정말 미친 짓이었다)

아이 아빠는 한 달 후, 마지막 양육비라며 돈을 보내고, 나의 장래(재혼)를 위해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아이 앞에 나타나지 않겠다고, 그리고 미안하다는 장문의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나도 이제는 아이 아빠에게 미안함 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아빠의 빈자리는 아이가 자랄수록 여러 곳에서 드러났다.

나의 선택이었으니 모두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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