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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야 Oct 02. 2024

떠난 사람이 남기고 간 흔적들

다음 날 밤이 되어서야 아이와 얘기할 만한 시간이 주어졌다. 


“아빠가 돌아가셨데.”


“사인이 뭐래?”   

  

사인? 초등학교 6학년 짜리 입에서 흔히 나올 말은 아니다. 아이는 내가 사회복지과 공무원과 통화하는 것을 들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여태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고 엄마가 말해 줄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음, 심장마비. 40대가 되면 과로하다가 그런 일이 생길 수도 있어.”


아이에게 사실 그대로 말할 수 없었고, 내가 말하는 사인이 궁색해 사족을 붙였다.     


“근데, 아빠 미국 간 거 아니었어?”     


아이가 여섯 살 때, 더 이상 아빠가 오지 않을 거라는 상황을 설명하기 어려워 그렇게 말했었다. 아이는 그동안 아빠를 찾은 적이 없었는데, 그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네가 너무 어려서 설명하기가 어려워서, 그렇게 말했어.”


아이는 생각보다 덤덤하게 이 상황을 받아들였다. 


“괜찮아?”     


“어차피 안 만나고 살았는데 뭐.”      

    

아이가 크게 슬퍼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엄마라고 해도 아이의 속을 다 아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어른들의 세계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그래서 최대한 아이에게 어떤 의혹을 남기는 것보다 솔직하게 말해 주는 것이 옳다고 여기며 아이를 키워왔다. 그런데 또 어쩔 수 없이 두 번째 거짓말을 했다.       


    



2주가 지난 뒤에 구청 직원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그가 살던 오피스텔 주인이 보증금을 내어 주어야 한다고 연고자를 애타고 찾고 있다고 한다. 집주인이라고 해도 세입자 집에 함부로 들어갈 수 없으니, 그도 애가 타는 상황일 것이다. 

집주인과 통화를 하고 약속을 잡았다. 이번에도 친구가 함께 가 주었다. 

오피스텔 상가 부동산에서 집주인과 공인중개사, 오피스텔 경비아저씨가 함께 모여 앉았다. 최근의 그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경비 아저씨였다. 경비 아저씨는 그를 예의 바른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집주인도 월세도 꼬박꼬박 내는 좋은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집에서 그러지(죽지) 않아서 고맙다는 말까지 한다. 그가 집에서 죽었다면 시간이 지나 악취로 인해 그의 죽음이 발견되었을 거다. 그의 선택은 집주인과 이웃을 위한 배려였을까? 물어볼 수가 없으니, 그의 마음을 알 수도 없다. 그의 죽음에 대해 탄식을 섞은 허무한 얘기를 하다가 그의 집에 가보았다.      



문 사이로 수많은 광고 전단지가 꽂혀 있었다. 문고리를 돌리니 전단지가 우두둑 떨어지며 그냥 문이 열렸다. 

벽 한쪽엔 백 개쯤, 되어 보이는 많은 모자가 걸려 있었고, 가전제품들은 모두 신제품이라 할 만한 것들이다. 최근에 주문한 책은 개봉만 한 채로 그대로 박스 안에 담겨 있었다. 

얼마 전까지 그는 죽을 생각이 없었다는 것을 새로 주문한 책 박스가 알려주는 것 같았다. 

책상 위에 컴퓨터 모니터가 켜져 있었다. 책상 위엔 빈틈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음료수병들이 가득했고, 책상 구석에 있는 재떨이엔 담배꽁초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컴퓨터 끌 생각도 안 했단 말이야.’ 그런 일에 무심한 그의 성격이 새삼 떠올랐다. 하물며 죽으러 집 밖으로 나갔는데, 그것이 눈에 들어올 리가 있었을까. 그가 죽었어도 컴퓨터는 계속 켜져 있었고, 따라서 전기미터기는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좀 전 부동산에 앉아 그의 죽음을 애도했던 사람들이 새 가전제품들을 보며 ‘와.’하는 탄성을 내지른다. 내가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는다면 그들에겐 새 가전제품을 무료로 가져갈 수 있는 기회였다. 그의 집 바로 옆이 관리실이었는데, 관리소장이라는 사람은 딱 봐도 고성능일 것 같은 복사기를 자꾸만 쳐다봤다.      

집을 정리하는 일은 장례식보다 훨씬 복잡한 일이었다. 여기저기 전화를 걸고, 사람이 다녀가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복사기와 정수기에 남은 렌털 기간이 있나 확인했다. 복사기는 그의 소유라고 하고 정수기는 렌탈 의무 기간이 끝난 상태여서 해지를 요청했더니 바로 가져갔다. 

마지막으로 컴퓨터 옆 모뎀에 있는 통신사로 전화를 걸었다. 통신사도 다행히 의무 약정기간이 모두 끝난 상태였다. 이용자가 사망했다고 하며 해지를 요청했음에도 안내 직원은 몇 번을 반복해서 나에게 인터넷을 승계하라고 권한다.     

 

“사람이 죽었다고요!”     


안내 직원은 그제야 무슨 상황인지 이해했다는 듯이,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며 숙연해졌다. 

나는 그 기억으로 절대 그 통신사를 사용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누군가 새로 휴대폰이나 인터넷을 설치한다면, 그 통신사는 이용하지 말라고 뜯어말릴 것 같다. 

하지만 그의 사후 처리를 하면서 여러 인간 군상을 마주하게 된 건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그 물건들을 집으로 가져올 수는 없다. 물건들을 볼 때마다 그가 생각날 것이다. 경비 아저씨께 얼마간의 사례비를 주고 물건들을 정리해 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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