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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랑비탈 May 27. 2023

19. 아이를 키우는 데는 많은 사람의 선의가 필요했다

선과 나무의 홈스쿨링(과학고의 입시 과정)

    

나무가 열다섯 살 때, 선의 남편은 일 때문에 서울에 있었다.

선은 서울로 이사 갈 것을 염두에 두고 서울에 있는 과학고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으신 교감 선생님은 30분 넘게 친절하게 상담에 응해 주었다.

그런데 사무실 계약이 만료되면서 선의 남편은 경기도 쪽으로 이사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선은 또 경기도에 있는 과학고에 전화를 했다.

그곳의 교감 선생님도 긍정적으로 전화를 받아 주었다.

그들의 친절은 선에게 용기를 주었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친절과 선의가 필요했다.     

                                      *     

영재고(2006년에는 부산에 있는 한국 과학 영재고 한 곳뿐이었다) 입시가 먼저였고 과학고 입시는 영재고 입시가 끝난 다음에 시작되었다.

KMO 1차가 끝나고 영재 교육원 원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곧, 영재고 원서접수가 시작되는데 나무에게 추천서를 써줄 터이니 응시해 보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했던 입원과 퇴원으로 준비가 부족했던 나무는 영재고 입시에서 떨어졌다. 남은 것은 과학고 입시뿐이었다.

선은 고민했다.

이사를 가지 않고 그 지역에 있는 학교에 보낼지, 아니면 아빠가 있는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할지.

아빠는 나무가 아팠던 이후로 가족은 함께 있어야 한다고 고집했지만 선은 생각이 많았다.

어느 학교에서 홈스쿨러를 호의적으로 받아줄지, 그 걱정이 먼저 앞섰다.


     



선은 우선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G과학고에 전화를 하고 찾아갔다.

가족과 함께 주말을 보낸 아빠가 거래처로 가는 길에 데려다주겠다고 해서 온 식구가 1톤 봉고 트럭에 몸을 실었다. 선은 나무에게 진학하게 될 학교를 미리 보여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빠는 운전석에, 선은 가운데 (좁은) 자리에, 덩치가 큰 나무는 조수석에 에 앉았다.

선이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는 아직도 ‘인간 시대’ 찍고 있네!”      


선의 남편이 웃으면서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 좋은 일이 곧, 있겠지! 우리라고 맨날 화물차만 타겠냐?”      


차가 달리는 동안, 세 식구의 웃음소리가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처럼 차창 밖으로 뿌려지고 있었다.      


내비가 공사장처럼 삭막한 곳에 우뚝 서있는 건물 앞으로 세 식구를 데려다주었다.

선이 차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햇살이 고집 센 늙은 청지기처럼 모든 걸 가두고 있었다.

깊은 정적뿐이었다.

이런 곳에 학교가 있다니!

선은 햇살이 부담스러운 듯, 얼굴을 찡그리며 남편에게 말했다.


“여기 있을래?”


“여기 있지 뭐…… 어디 갈 데도 없는 것 같은데.”


“그래, 둘이 오순도순 얘기하고 있어! 갔다 올게!”


인적이 보이지 않는(전혀 현실적으로 보이지 않는) 건물(교사)로 선이 들어가고 있는 뒷모습을 남편과 아들이 조용한 눈길로 지켜보고 있었다.      



선은 당연히 교무부장 선생님이 상담해 줄 것이라고 믿었는데, 30대의 교무부장 선생님은 선을 본체만체하고, 발령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20대의 젊은 수학 선생님의 자리로 안내되었다.

젊은 수학 선생님의 자리는 교무부장 선생님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


선이 수학 선생님이 내어준 자리에 앉았을 때, 50대 중반의 남자가 들어오더니 이내 교무부장 선생님의 자리로 총총히 걸어갔다.

그리고 뭐가 그리 좋은 지, 두 사람은 마주 보자마자 시시덕거리면서 낄낄거리고 웃기 시작했다.

선의 시선이 느껴졌을까.

그는 곧 교무부장 선생님의 바로 뒤에 있는 문이 열린 교감실로 들어갔고, 50대의 여자 선생님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서류를 들고 그곳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방금 그렇게 시시덕거리고 들어간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여자 선생님을 호되게 나무라는 소리가 들렸다.

선은 민망했다.

요즘 학교들의 수준이 이 정도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외부인도 있는데 어떻게 나이도 있는 선생님에게 저렇게 모욕적인 말들을 늘어놓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쩔 줄 몰라하면서 계속 웃음으로 넘기던 여자 선생님이 선을 의식했는지 열린 교감실의 문을 조용히 닫고 다시 들어갔다.

그런데도 교감실에서는 화를 참지 못하는 남자의 목소리와 상황을 웃음으로 만회해 보려는 여자 선생님의 쩔쩔매는 목소리가 계속 새어 나왔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상담 시간은 30분 이상 이어지고 있었다.

선은 작은 희망이라도 잡고 가려고 애를 쓰고 있었고, 착한 인상의 젊은 수학 선생님은 결정권이 없는 듯, 선의 질문에 (난처한 듯) 모호한 대답만 내놓고 있었다.


어느 순간, 선은 교무부장 선생님이 앉아 있는 자리를 힐끗 쳐다보게 되었다. 그는 일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서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선이 말했다.     


“입학전형에서 KMO 수상실적이면 특별전형도 가능하다고 되어 있는데 검정고시생도 해당되는 거지요?”     


교부부장 선생님이 잠시 고개를 살짝 들어, 젊은 수학 선생님을 쳐다보는 것이 선의 눈에 들어왔다. 젊은 수학 선생님은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알아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모집 요강에 나와 있는 사실을 알아보고 연락을 드리겠다고? 어이가 없었지만 선은 전화번호를 적어놓고 교무실을 나왔다.




선이 건물에서 나오고 있는 것을 1톤 봉고 트럭 안에서 남편과 나무가 지켜보고 있었다. 선을 태우기 위해 나무가 차에서 내리고, 선이 차에 올라타려고 하자 남편이 선에게 물었다.     


“뭐래?”


선은 남편과 눈을 맞추지 못하고 차에 올라타면서 혼잣말처럼 말했다.


“여긴 아닌 것 같아……”      


선과 나무가 차에 올라탄 후, 1톤 트럭은 출발했다.

차가 떠난 자리에 흙먼지만 뿌옇게 일어났을 뿐, 차창 밖으로 웃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예상대로 G과학고에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선은 봄에 있었던 영재교육원 행사에 G과학고 교무부장 선생님이 왔을 때, 교무부장 선생님이 나무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영재교육원 원장님이 나무를 G과학고 교무부장 선생님에게 데리고 가서 인사를 시키면서 이번에 영재학교에 원서를 썼다고 소개하자, 그 교무부장 선생님의 말이 나무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영재학교 떨어지면 우리 학교는 절대 오지 마라!”     


웃으면서 던진 농담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말은 웃자고 한 농담이 아니었다.

교육자가 어린 학생을 향해 던진 비수였다.




선과 나무는 미련 없이 아빠가 있는 곳으로 이사했다.

셋이 살기에는 턱없이 좁은 집이었지만 가족의 정을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었고, 여행을 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선이 이삿짐을 정리하는데 몇 번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 영재교육원 학부형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는 전국적으로 특목고에 많이 입학시키는 프랜차이즈 학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과학고에서 나무를 받아주지 않으면 본인에게 연락해 달라고 말했다. 지방에 있는 외고에 특별전형으로 입학시켜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의 목소리에서 나무에 대한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영재고나 과학고를 목표로 공부했는데 외고?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선은 고마웠다.     


선은 새로 이사한 지역에 있는 E과학고에 전화를 걸었다.

교무부장 선생님이 전화를 받았다.

교무부장 선생님은 수업에 들어가는 시간 전까지, 꽤 긴 시간 동안 성의 있게 답변을 해주었다.

그러나 홈스쿨링 학생을 받는데 대한 고민도 있었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홈스쿨링을 하는 것도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것이지만, 홈스쿨링 학생을 받는 학교 또한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것이다.

그러나 G과학고처럼 (노골적으로 또는 적극적으로) 배척하고 따돌리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선은 확실한 대답을 듣고 싶어서 학교로 찾아갔다.

복도에서 만난 선생님에게 입시 문제로 교무부장 선생님을 찾아왔다고 말하자 그는 친절하게 교무실로 안내해 주면서 지금 수업 중이신데 수업이 끝나면 오실 거라고 말하면서 녹차나 커피 좀 드릴까요?라고 물었다.


선은 녹차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교무부장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님들의 작은 웃음과 나직한 대화들이 오고 가는 교무실이었다.

교무부장 선생님이 들어왔다.

선이 일어서서 조금 전에 전화드렸던 사람이라고 밝히자, 웃으면서 “걱정되셔서 오셨지요?”라고 맞아주었다.


선은 나무에 대해 솔직하게 말했다.

그리고 전형에 따르면 나무는 KMO 실적으로 특별 전형 대상인데 홈스쿨링도 그대로 적용되는지 물어보았다.

교무부장 선생님은 당연히 해당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홈스쿨링을 한 학생을 받아들이는 것은 학교에서도 부담이 적지 않은 것 같았다.

선의 어깨가 내려간 것을 보았던 것일까?

상담을 마치고 선이 교무실을 나올 때, 교무실의 문까지 따라 나온 교무부장 선생님이 선의 등 뒤에서 소리쳤다.     


“원서 넣으세요! 원서 넣으세요!”     

                                           



교무부장 선생님의 마지막 한 마디는 선에게 결정적인 힘이 되어 주었다.

원서를 접수하는 날, 특별 전형으로 접수하려고 하는데 접수를 맡은 선생님이 선에게 잠깐 기다리라고 하면서 교무부장 선생님을 호출했다.

교무부장 선생님이 들어오더니 선에게 말했다.     


“원래 특별 전형 대상이지만 홈스쿨링이라서 학교에서 일반 전형으로 다시 한번 시험을 보는 걸로 결정했어요. 실력만 되면 어떤 전형이든 상관없잖아요!”     


그랬다. 실력만 있으면 어떤 전형이든 상관없었다.

선이 학교를 방문한 다음, 학교에서는 여러 선생님들의 의견을 수렴한 것 같았다.

선은 고마웠다.

그렇게 긍정적으로, 적극적으로 검토해 준 학교에 대해!

선은 나무의 서류를 일반전형으로 접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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