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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랑비탈 Jun 10. 2023

21. 경시대회와 대학입시

선과 나무의 홈스쿨링


봄에는 시 교육청에서 주체하는 수학경시 대회가 열렸다.

시 교육청에서 주체하는 경시대회에는 학교마다 인원제한이 있어서 교내 경시를 통해 참가자를 선발하는데, 1학년에서는 유일하게 나무만 선발되었고 나머지는 모두 2학년 학생들이었다.


그런데 이변이 연출되었다.

당연히 금상인 줄 알았던 나무가 금상 명단에는 물론, 은상에도 동상 명단에도 없었다. 심지어 일반고 학생들로 채워진 장려상 명단에도 나무의 이름이 없었다.


과학고 학생이 시 경시에서 본상을 타지 못하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었다.

선생님들은 나무가 상처를 받을까 봐 내색을 하지 않는 눈치였다.

선도 그 상황이 약간 민망했지만 아이의 성장과정에서 지나가는 일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선은 이 얘기를 나무의 선배 엄마와 같이 차를 타고 가면서 우스갯소리로 말했는데, 선배 엄마는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     

“그래도 지금 교장 선생님이라 다행이지 전임 교장 선생님 같았으면 학교 명예를 떨어뜨렸다고, 아마 난리가 났을 거야!”

“정말요?”

“그럼, 동상만 타도 그것밖에 안 되냐고 망신을 주는데!”

“나무 때문에 선생님들이 교장 선생님한테 한 마디 들었을 수도 있었겠다!”

“아마, 그랬을 걸! 선생님들이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나무는 선생님들의 배려에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여름방학에는 전국 규모로 진행되는 P공대 경시가 있었다.

P공대 경시는 수상인원도 작고 출제 경향도 KMO와는 좀 달라서 KMO에서 우수한 성적을 낸 학생들도 입상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입시에 중요한 실적이어서 전국에서 수학을 잘하는 학생들은 여름만 되면 P공대가 있는 P시에 모여들었다.     

그런데 특별히 준비하지도 않았는데 뜻밖에, 나무가 은상이라는 공지가 떴다.

그것도 전국 4등 안에 드는 은상이었다(이후, P공대 경시는 대상, 금상, 은상, 동상으로 입상자를 확대해 수상자가 대폭 늘어났지만 나무가 응시했던 해에는 금상 1명, 은상 3명 등, 본상 수상자가 적었다).  


그때, 시 경시에서 나무가 상을 타지 못한 이유가 회자되었다.

선생님들에게서 흘러나온 이야기는 나무가 악필이어서 시 경시에서 채점을 담당했던 선생님이 나무의 답안지를 한 번에 ‘쫙’ 그어버렸다는 후문이었다.

선과 나무는 그 소리를 듣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후에 나무의 학교로 전근 온 선생님이 그 답안지를 본인이 채점을 했는데 만약 나무가 이의를 제기했으면 본인은 시말서를 썼을 것이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선이 홈스쿨링을 마무리하면서 아쉬웠던 점은 글씨였다.

나무가 화교 학교에 다닐 때, 한자를 제법 잘 썼기 때문에―화교학교는 1학년 때부터 쓰기를 엄청 강요했다―별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예쁜 글씨를 강요하면 상상력이나 창의력을 방해할 것 같아 선은 어릴 때 글씨를 좀 못 쓰더라도 성장하면서 미적인 감각이 발달하면 잘 쓰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악필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대학교에서도 잘못된 채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해서 점수가 바뀐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선은 나무가 시험을 볼 때마다 글씨를 잘 쓰라고 당부해야 했다.     

                                          



담임선생님이 면담 시간에 나무에게 말했다.      


“밖에서 상은 잘 받아오는데 내신은 잘 오르지가 않네. 입학 때, 그렇게 좋은 성적으로 들어와서 내신이 이렇게 떨어졌으면 억울해서라도 악착같이 할 텐데 그런 것도 없고……”     


선은 안타까워하는 선생님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지만, 나무는 내신을 잘 받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밤을 새워 공부하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그냥 자기의 리듬대로 살다가(공부하다가) 어느 순간 결과물이 ‘툭’ 튀어나오는 스타일이었다.


어느 날, 점심시간에 학교에 있는 나무에게 전화가 왔다.     

“알고 있지?”

“뭘?”

“나 상 받은 거!”

“몰라! 무슨 상 받았는데?”

“과학 동아 논술!”

“그래? 언제 쓴 건데?”

“국어시간에 써서 낸 건데, 전국 동상이래.”     


선은 인터넷에 올라온 나무의 글을 읽어보았다.

‘이기적 유전자’에 대한 독후감이었다. 문장은 매끄럽지 않았지만 ‘이기적 유전자’에서 유추한 생각의 발상이 독특했다.     

선은 나무의 (공부) 스타일을 존중해주고 싶었다. 내신 때문에 입시에 좀 손해를 보더라도 그게 뭐 대수라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공부 스타일은 삶의 스타일로 연결되는 게 아닐까?

아등바등하지 않고 자기의 리듬대로 사는 것이 더 행복한 삶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나무는 대학 때도, 시험 전 날, 좋아하는 뮤지컬 공연이 있으면 놓치지 않고 보러 다녔다.      


2학년이 되자, 학교는 입시 때문에 술렁이고 있었다.

지금은 좀 달라졌지만 나무가 과학고에 다닐 때만 하더라도 거의 조기졸업을 하고 대학교에 입학하는 분위기였다.

선생님들은 나무에게 말했다.     

“나무는 1차 서류전형만 통과하면 2차는 무조건 합격일 텐데……”     


1차 서류전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신이었다. 그리고 선생님들이 말하는 대학은 S 대였다.

그러나 나무는 P공대에 마음이 기울어져 있었고 선과 아빠도 비교적 집에서 가까운 S대도 좋지만, 이공계의 명문인 P공대나 K공대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2학기가 되면서 자기소개서를 쓰기 시작했다.

선은 입학요강을 여러 번 읽어보고 자기소개서와 추천서도 1차 전형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요소라고 판단했다.

여러 선생님들이 나무에게 추천서를 써 준다고 했지만, 나무는 1학년 담임선생님과 2학년 담임선생님에게 추천서를 부탁하기로 했다.

1학년 선생님은 나무를 아들처럼 예뻐해 주셨고,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나무의 수학적 재능을 특별하게 인정해 주었다.

선은 두 선생님에게 추천서를 부탁하기 전에 나무의 성장 과정에 대해 에세이를 써서 선생님들에게 참고 자료로 보내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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