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환야 Jan 12. 2023

단편영화 <고마운 사람>

멈춤을 위한 관성, 의도된 갈림길.

<고마운 사람>

2020, 이경호, 허지은




갈수록 넘쳐나는 내러티브 영상들 사이에서, 우리는 각자의 흥미에 부합하는 부분에 맞춰 작품을 선택한다. 보통 특정한 ‘장르’, ‘배우’ 등이 바로 그것일 텐데, 다양성을 가치로 내세우는 독립·단편의 영역 안에서도 해당 요소는 관객들의 선택을 좌지우지한다. 그리고 그것은 작품 자체가 아닌, 그 밖에 존재하는 특정 ‘연출자’인 경우 역시 점점 늘어가고 있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자본이 더 적게 드는 ‘단편’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도 결국 한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 영화이기에, 매력적인 단편작을 만든 어떤 연출자의 차기작을 만나지 못하는 일도 부지기수이다. 따라서 한 연출가의 좋은 작품들을 나열하며 비교해 보는 것은 장편뿐 아니라 단편에서도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단편이라는 영역에서 그만큼의 입지를 보여준 연출자가 있다면, 그중 하나는 바로 공동 연출한 작품으로 관객을 사로잡는 ‘이경호, 허지은’ 두 사람으로 보인다.

출처 - 네이버 시리즈온

<신기록>과 <해미를 찾아서>에 이어 세 번째 공동 연출작인 <고마운 사람>은 앞선 두 작품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만큼이나 서사·연출적인 부분에서의 변화를 흥미롭게 담고 있다. 물론 변화라는 부분은 언급한 외적 요소이며, 작품 자체의 미학을 살피는 데에 있어 한계를 만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글을 쓴 이유는 분명 그 변화에서 시작됐으며, 이를 기반으로 두 연출자의 변화 그리고 더 나아가 <고마운 사람>이 닿은 어떤 성취를 언급하고자 한다.



변화들

     

<고마운 사람> 속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조명과 촬영’이라는 기술적인 영역이다. 사실 이 부분은 변화라기보다는 아쉬운 지점이며, ‘미디어센터’라는 공간에서 돌출적으로 드러난다. 주광(main light)을 햇빛으로 다룬 ‘교실’이나 ‘진아(신지이)의 집’과 달리, ‘미디어센터’라는 공간은 그 자체로 협소할 뿐 아니라 작은 창문으로 인해 빛을 오롯이 조명에 의지하는 모습을 보인다. 물론 가장 일반적인 미디어센터의 모습을 위한 선택일지도 모르지만, 다양한 구도가 나오지 못하고, 플리커 현상(flicker)마저 드러내기 때문에 등장 때마다 몰입을 방해하는 공간 된다. 물론 해당 문제를 포함하는 단편작들은 수없이 많지만, 지금까지의 몰입을 방해하는 기술적 요소를 거의 보여주지 않던 이전 작품들의 공이 큰 탓에 두드러지는 부분이리라.


그리고 서사와 연출적인 변화가 있다. 앞선 연출작인 <신기록>과 <해미를 찾아서>는 피해 입은 약자들이 마침내 마주보며 뜨거운 연대(連帶)의 힘을 표출한다. 그런데 <고마운 사람> 속 두 사람의 마주함은 동력을 얻어 발산하는 연대의 힘이 아닌, 서로의 상황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드러내며 수렴한다. 이러한 변화는 이경호, 허지은 두 사람의 2021년 연출작인 <행인>에서도 드러나는데, 이때의 두 여성의 시선 역시 뜨겁게 공명하거나 마주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는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출처 - 네이버 시리즈온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이유가 있다면 각본과 연출의 시선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앞선 두 작품의 메인 플롯이자 갈등은 주인공과 주변인의 갈등이 이어지거나 동일시되면서 그 자체로 동력을 얻어 나아간다. 다시 말해 눈앞에 있는 나의 갈등이 타자의 갈등과 맞물리기에 서사와 연대의 힘이 더욱 커진다. 반면 <고마운 사람> 속 두 여성의 이야기는 해당 서사의 현재 시점에서 가장 사회적이고 동적(動的)인 갈등에 시선을 두지 않는다. 나와 당신을 포함한 ‘우리’의 이야기가 아닌, 의도치 않게 ‘고마운 사람’이 되어버린 나와 당신이라는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이야기인 것이다. 그런데 결말에서 드러나는 이 시선은 어딘가 의문스럽다. 분명 전작들에서 느꼈던 동적인 부분이 해당 작품에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선택과 시선


국어 선생이었던 서인(최유송)을 마주하기 전, 우리는 진아의 갈등을 보았다. 정확히는 ‘갈등의 가능성’을 보았을 텐데, 엄마(윤부진)에게 동성애자인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거나 성소수자 단체에서 활동하는 그녀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두 연출자가 보여준 그간의 서사를 상기하면, 초반부터 드러나는 이 갈등의 요소들이 이야기의 주축이 될 것을 암시한다. 그런데 <고마운 사람>의 시선은 사회 속 다수를 바라보지 않고 같은 상황에 놓인 ‘진아와 서인’ 두 사람을 향한다. 어쩌면 이 때문에 앞선 갈등의 요소들은 불필요한 요소가 돼버리는 결과에 놓일지도 모른다.

출처 - 네이버 시리즈온

만약 그것이 진아가 가진 캐릭터 구축을 위한 것이라면, 동성애자로서의 ‘정체성’은 사랑과 같은 직접적인 감정을 통해서, 그리고 ‘적극성’은 소속된 성소수자 집단의 누군가와의 통화로도 표현이 가능할 것이다. 그렇기에 진아가 퀴어축제를 준비하는 과정과, 충돌하는 두 집단 사이에 서 있는 엄마를 영화가 직접 보여주는 선택은 한편으로 돌출적이고 비효율적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이것은 약자들의 갈등을 다루어온 연출이 타성에 젖어 어떻게든 표출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비롯된 풍경일까.


그러나 축제의 참가자들과 이를 반대하는 집단 사이에서 고민에 빠진 엄마의 모습은 딸인 진아가 의지하는 방향을 향해 미소 짓는 수동성을 갖지 않는다. 되려 마지막까지 엄마는 어떠한 선택도 하지 않으며, 이를 통해 <고마운 사람>은 어떤 의지를 드러낸다. 상기해보면 이 작품은 관성에 빠질 수 있는 부분을 의도적으로 배치한 뒤 거부했다. 동성애자임을 고백하는 진아에게 돈 이야기를 하며 갈등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노동이라는 현실적인 이유로 퀴어 축제가 아닌 수업에 가는 진아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작품 스스로가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는 부분을 확실히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출처 - 네이버 시리즈온

이 작품이 말하는 것은 ‘뜨겁게 확장하는 연대’가 아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준 ‘고마운 사람’이 어떤 갈등 앞에 놓이는지에 대한 확인이다. 고마운 사람으로 남는 건 의도치 않은 책임을 수반한다. 나로부터 촉발된 타인의 행동이 되려 나의 가치관을 훼손한다면, 나는 서인처럼 책임을 통감하고 그의 깨달음이나 성숙을 기다려야 할까, 아니면 진아처럼 ‘싫어요 버튼’을 눌러 또 다른 책임을 감수해야 할까. <고마운 사람>은 그것에 대해 선택하지 않는다. 다만, 각자의 책임을 보여준 두 사람이 마주하며 서로를 이해할 뿐이다. 그리고 이것은 선택을 거부하는 ‘회피’나 ‘방관’이 아니다. 누구나 행동할 수 있는 갈등의 양상 앞에서 잠시 뒤를 바라보며 고민하는 확장의 시선이다. 그런 점에서 고민하는 엄마의 모습은 어느 순간 갈림길을 선택한 두 연출자의 경건한 태도로 느껴진다.




다양한 영상 컨텐츠에 대한 수요와 공급 덕분에 갈수록 영상의 질이 높아지는 만큼, 자본과 제작 측면에서 영상의 기술적인 틈은 더 쉽게 눈에 띄어 몰입을 방해한다. 아무리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준 이경호,허지은의 작품 역시 이 한계를 극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신기록>부터 최근작인 <행인>과 <연기실습>까지의 확장된 시선은 여전히 연출의 가치를 설득하고 있다.





*이경호, 허지은 감독의 공동 연출작에 대한 글은 다음 링크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ssklsypen/6

https://brunch.co.kr/@ssklsypen/43


작가의 이전글 단편영화 <부스럭>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