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큰언니와 2박 3일

by 동화작가 몽글몽글

우리는 세 자매다. 그중 큰언니는 서울에 살고 있어 자주 보지 못한다. 나이 차이는 많이 나지만 큰언니는 어릴 적부터 나의 이상형이다. 고운 심성에 그 심성이 돋보이는 외모, 그리고 시골이었지만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실력까지. 단언컨대 돌아가신 아버지는 큰언니를 서울로 대학 보낼 때, 그리고 시집보냈을 때 분명 울었다. 아버지의 눈물을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분명 그랬다. 내가 큰방 문을 열었을 때 돌아누운 등이 그랬고 술 먹고 온 날 마루에 앉아 앞산 보던 옆얼굴이 그랬다.


여전히 언니는 곱고 다정하다. 같이 있으면 따뜻하다. 작은 것에도 잘 웃고 언니의 손길이 지나가면 엄마의 낡은 살림도 반짝반짝 윤이 난다. 우리 모두 퇴직을 했으니 자주 만나고 여기저기 같이 다닐 줄 알았다. 이러저러한 이유들로 한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여름의 한복판에서 엄마가 계신 친정집에서 함께 보내게 되었다. 그 사이 몸이 더 약해진 엄마는 오랜만에 온 언니를 보기만 해도 좋으신가 보다. 없던 기력을 모두 모아 밥도 먹고 이야기도 하신다. 언니가 사 온 호박죽이며 장어국을 맛있게 드셨다. 불고기에 상추쌈도 드셨다.


여름 저녁, 쏟아질 듯 쏟아지지 않는 비를 품은 구름이 내려앉은 시골길은 아직도 후덥 하다. 부채 하나씩 들고 산책 삼아 나선 길에는 여전히 밭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 우리 엄마도 해가 다 지도록 일하고 오셨는데.

- 맞아, 그럼 우리가 양파 볶아 놓고 밥 해 놓고 했지.

언니랑 있으면 자연스레 옛날 기억이다. 걸어서 학교 다니던 그 길들을 돌아 돌아오도록 자매의 수다는 끝이 없다. 겁 많은 것도 비슷해서 조금만 어둑해도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허둥지둥 돌아 나온다. 그러면 장군 같은 작은 언니가 면박을 줬을 텐데 아쉽게도 이번엔 같이 가지 못했다.

이야기는 돌고 돌아 건강이다. 각자 알고 있는 꿀팁이 다 나온다. 체질도 비슷하고 증상도 비슷하니 바로 적용해 볼만한 것들이 많다. 추위를 많이 타는 엄마를 위해 에어컨도 없이 잠드는 밤, 구순 노모는 기력이 없어 누웠는데 둘이서 마루에서 온갖 스트레칭을 다 하고 있으니 엄마가 웃는다.

다정한 언니랑 있으면 모든 것이 다정해진다. 박꽃 같은 우리 언니, 어려움은 작게, 행복은 크게 만들 줄 아는 우리 언니, 엄살 없는 언니가 힘들다고 하는 이 상황은 진짜 힘든 것임을 알기에, 지금처럼 잘 버텨주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그래서 엄마가 계시는 시골집에서라도 한 번씩 얼굴 볼 수 있길! 시골집 양철 지붕 위에 요란히 내리며 세상 시끄러운 소리를 삼켜버리던 그젯밤의 빗소리를 기억하길! 여름 논에 내려앉아 물 먹고 가던 작은 새들의 포르르거리던 소리를 기억하길!


언니가 말한 대로 언젠간 세 자매 함께 모여 사는 날이 온다면, 그땐 분명 지금 이 순간도 그리울 것임을. 언니와 함께 한 여름 한 자락을 봉숭아 꽃물처럼 남겨본다.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19화도서관이 이렇게 먼 곳일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