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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준원 Nov 26. 2020

우울증을 치유하기에 늦은 때란 없다

트라우마는 과거에 경험했던 위기나 공포와 같이 흔히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순간을 재차 마주하여 심리적 불안을 겪는 증상을 말한다. 전쟁과 재난과 같은 위기 상황뿐만 아니라 가까운 지인의 죽음, 교통사고와 같이 일상에서 흔히 발생하는 사건에서도 트라우마가 나타날 수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트라우마를 일으킨 상황이 그대로 재현되기 보다 다른 형태로 나타나지만 알아차리지 못한다. 심리적 불안을 트라우마와 연관 짓지 못하고 심지어 인지하지도 못한 채 분노하기도 한다. 분노라는 1차원적인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은 짜증이라는 모호한 감정을 앞세우기도 한다.


<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는 이러한 트라우마, 즉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유독성 스트레스가 어떻게 인간에게 영향을 주는지 설명한다. 트라우마는 몸이 기억하고 있어서 인지하지 못한 채 정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오랜 시간 영향을 미친다고 수많은 연구와 책을 통해 알려져 있다. 이 책은 한 걸음 나아가 유년 시절 감당하기 힘든 환경으로 스트레스 받는 아이들을 치료하며 신경계, 면역계, 호르몬계, 심혈관계에도 심대한 타격을 주어 건강 문제를 일으킨다고 언급한다. 그리고 이를 뇌과학, 신경과학, 면역학, 임상의학 등 최신 과학을 동원해 1만 7천여 명의 대규모 역학 연구의 분석 자료로 증명한다.


이처럼 방대한 자료를 모으기 위한 첫걸음은 샌프란시스코의 가난한 동네인 베이뷰 헌터스부터 시작한다. 소아과 의사인 저자는 심상치 않은 증상을 안고 진료실을 찾아오는 수많은 어린 환자를 만났다. 그런데 치료를 감행할수록 의구심이 든다. '도대체 이 아이들이 갖고 있는 질환의 원인은 무엇일까?' 이러한 질문에서 시작한 저자의 행보는 유전자와 환경의 복잡함을 연구하는 토대가 되었다.


뭔가 딱 안 맞는 걸 발견하다.

저자는 진료실을 운영하며 의학적으로 접근하다가 문득 아이들의 질병이 어디서부터 시작했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인간의 질병은 단순히 생물학적인 원인으로만 발생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생물학적으로 밝혀지는 내용은 결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분자 수준까지 구조를 파악한 현대 의학의 놀라운 발전으로 뇌과학, 신경과학과 호르몬의 분비, 그리고 면역 체계에 관련된 내용은 수준급이라고 할 수 있다. 책에서도 소아과 의사인 저자가 치료로 이러한 학문을 기초로 아이들의 진료를 진행한 묘사가 자주 나온다.


물론 이러한 분자 구조에 입각하여 치료를 진행하는 건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질병도 치료가 가능하다. 그렇지만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하지 않는 한 또다시 질병에 노출될 확률은 남아있다. 그래서 치료도 중요하지만 예방도 병행해야 한다. 저자는 아이들의 질병에 어떤 유사점이 있는지 찾으려 애썼지만 공통점을 발견하지 못한다. 열악한 환경에 처한 지역에서 소아과 진료를 보던 저자는 환경의 요인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평소에 전혀 문제가 없었던 43세의 성인 남성이 심혈관계 질환을 앓고, 가장의 수많은 폭력에 노출되어 있던 7세 아이가 성장이 멈춘 상태를 확인하며 그들의 환경을 면밀히 분석한다.



새끼를 핥지 않는 어미 쥐

유독성 스트레스가 어디서부터 시작인지, 원인을 찾다 보니까 가정 환경에서 시작했다는 통찰을 얻었다. 아이들의 면역체계가 망가져 여러 질병에 노출이 되는 상황을 인지하게 된다. 물론 약물 치료도 필요하지만, 가족이 어떻게 환경을 조성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이야기한다. 저자는 한 가지 실험을 한다. 스트레스를 주입한 새끼 쥐를 보살피는 어미와 그렇지 않은 어미를 대조군으로 유독성 스트레스가 어떻게 변하는지 살펴보았다. 결과는 우리가 모두 예상한 그대로다. 새끼를 아끼고 핥아 스트레스로부터 보호하는 어미 쥐와 함께하면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새끼 쥐는 회복세를 보였다.


그 후로 소아과 진료에서 심각한 발달 장애와 심리적 불안을 호소하는 아이들을 진료하면서 부모도 함께 상담을 토대로 어떤 환경에 아이들이 노출되었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은 가정에서 폭력과 심한 갈등으로 내면이 불안한 상태였다. 그래서 저자는 이러한 어린 시절의 불행으로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도 면역력 체계와 심혈관계의 질환이 발생할 확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를 얻어낸다.


이후 여러 학회의 콘퍼런스를 참여하며 자신이 발견한 내용을 발표하지만, 다수의 의사에게 지지를 받지는 못한다. 그 후에도 꾸준히 분석 자료를 토대로 심혈관계 질환이 높다는 연구를 ACE라는 논문을 발표한다.



치유하기에 늦은 때란 결코 없다

유년 시절의 유독성 스트레스에 얼마나 노출되었는지 판단할 수 있는 설문지를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인 저자는 45만 달러의 펀드를 유치하지만, 지역에서 반발이 발생하여 사명감을 갖고 하는 일에 난처한 상황을 맞닥뜨리기도 한다. 어떤 질병은 하나의 관점으로만 해석이 되지 않아, 다방면으로 정보를 취합해야 치료와 예방이 가능하다. 유년 시절의 환경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 영향으로 어떤 결과를 도출하는지 또 어떻게 예방하는지 우리는 아는 바가 거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의 DNA만 갖고 인간의 질병을 진단하기에 역부족이다. 물론 유전자로 인해 발현이 되는 질환도 존재한다. 조현병이 대표적인 유전으로 발생하는 질환이다. 일란성 쌍둥이와 이란성 쌍둥이를 비교 실험한 연구로 학자들은 조현병이 유전자로 인해 발생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일란성 쌍둥이 중 한쪽에서 조현병이 발병하면 다른 쪽에서 발병할 확률이 90%에 육박한다. 이러한 유전자가 질환에 관여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유전자만으로 모든 질병을 논하기는 어렵다. 그 이유는 바로 환경에 있다. 유전자와 환경의 다양한 관여로 시냅스의 스위치가 온, 오프 되는 현상으로 유전체가 변화한다.


유전자와 유전체를 조금 쉽게 설명하자면 피아노의 건반과 피아니스트, 피아노 곡으로 예를 들 수 있다. 피아노의 건반은 변경할 수 없는 유전자와 유사하다. 피아니스트는 태어남과 동시에 만나는 다양한 환경이다. 피아니스트는 건반을 누르며 수많은 피아노 곡을 연주한다. 바로 이러한 피아노 곡을 유전체라고 부를 수 있다. 유전자 뿐만 아니라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유전체의 작용을 알아야 질병의 원인을 파악하고 예방이 가능하다.



자기 고통만 바라보는 사람들

저자는 소아과에서 확장하여 클리닉 센터를 만들며 여러 전문가들과 함께 운영한다. 생물학적 반응을 토대로 진료하는 의학에는 의사인 저자 본인이 참여하고, 내면의 깊은 심리를 판단하는 심리상담사 그리고 사회복지사와 간호사, 영양사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함께 클리닉 센터를 운영한다. 아동기의 불행은 개인과 한 가정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저자가 강조하는 점은 치료에만 있지 않다. 예방의 차원에서 의료를 실행해야 건강한 유전체를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고 대물림되지 않을 것이다. 이는 분명 사회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중대한 사항이다. 유독성 스트레스로 인한 질병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피해를 줄 수 있다.

마지막 부분에 ACE 설문지가 있다. 정신과의 설문이 그렇듯 비교적 주관적인 결과를 내포하고 있다. 각자 느끼는 고통의 스펙트럼은 모두 달라 정량적으로 스트레스 지수를 확인하기 어렵다. 아무래도 설문에 자신이 느끼기에 적절한지 아닌지를 체크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도 10가지 문항에 성심성의껏 답변하고 자신의 점수가 얼마인지 체크해볼 필요는 있다.


10가지 문항을 살펴보며 체크해본 결과, 3점이라는 수치를 얻었다. 책에서 나온 여러 사례에서는 7점 이상이면 유독성 스트레스가 상당하다고 본다. 3점이라고 하더라도 오래도록 지속해서인지 강박증을 오래도록 앓고 있다. SSRI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를 1년 넘게 복용 중이다. 1년 넘게 복용하면 약의 용량을 줄이자는 이야기가 나올 법한데 정신과에서는 아직 용량에 관한 언급은 없다. 책의 내용이 어떻게 보면 어려운 이야기이고, 꺼내기 상당히 고된 내용이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참고 도서 : 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

저자 : 네이딘 버크 해리스

출판 : 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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