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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준원 Jan 02. 2021

자아가 불완전하면 관계의 착취를 끊어낼 수 없다

착취란 무엇일까. 마르크스 이론에서는 노동 계급이 실제보다 낮은 임금으로 자본가를 위해 일하고, 자본가는 노동 계급의 성과에 대한 잉여가치를 수탈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이러한 계급이 알게 모르게 형성되어 있는 인간관계에서 착취는 무엇을 의미할까.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고 상대방에게 강요하는 행위에서 파생하지 않을까.


<인간관계 착취>에서는 이처럼 다양한 서열 관계에서 발생하는 착취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임상심리사인 저자의 처방전을 담고 있다. 인간관계에서 친분 있는 친구 사이에는 착취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이런 관계에서는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관계를 지속한다. 동등한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다면 친구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나 결혼 관계, 애인관계, 가족관계, 직장 관계는 서열이 생기고, 권력이 작동하는 관계 구조가 될 수 있다. 각각의 관계에서 어떤 현상이 벌어지는지 책에서 사례를 언급한다. 그리고 임상심리사인 저자의 처방전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계 속에서 발생하는 착취

© priscilladupreez, 출처 Unsplash


우리는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착취를 견디기 힘들어한다. 그리고 자신의 욕심을 이루려고 타인을 수탈하는 행위에 거리낌이 없다. 정작 착취하는 사람은 자신의 행동이 잘못인지 모르는 경우도 상당하다. 우리는 왜 착취를 피하려 할까? 별다른 이유는 딱히 없다. 그저 인생을 잘 살고 싶어서 그런 것뿐이다.


어린 시절 가족관계에서 착취는 고통 그 자체였다. 지금은 아버지의 착취를 벗어나 2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다. 여전히 부모님은 애증의 관계라고 느껴진다. 그렇지만 '애(愛)'보다는 '증(憎)'을 더욱 강하게 인식하여 잘 살고 싶은 마음에 잠시 마주치지 않고 지낸다. 부모 자식 간의 관계에서 부모는 항상 자식이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강하다. 그런데 자식의 '성공'이 마치 자신의 성공처럼 과시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하기 시작하면 욕심은 끝도 없이 펼쳐진다.


나의 아버지가 그랬다. 자식이 성공하고 출세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더욱 컸나 보다. 자식이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진 부모라면 자식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사회에서 발생하는 관계의 어려움은 무엇인지 귀담아듣고 알려줘야 하는 위치가 아닐까. 아버지는 전혀 그러지 않았다. 그저 서울 상위권 대학 (그것도 서울대)를 가야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여 경제적 지원만 해주면 끝이라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학창 시절에는 전교에서 상위 성적은 아니더라도 나름 우수한 성적을 받아도, 대학에서 반액 장학금을 받아도 만족하지 못하셨다. 칭찬은 절대 하지 않고 항상 '더 잘해 임마'라는 말로 일관하셨다. 이러한 착취 관계에서 인간관계가 어렵게 느껴졌다. 무엇을 하든 만족하지 못했고, 항상 더 잘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이 상당했다. 이러한 압박 증상은 다름 아닌 강박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기에 이르렀다.


인간은 풍족한 삶을 살려면 주변 사람들과 관계가 돈독해야 한다. 아무리 잘났어도 주변 사람들과 관계가 부진하다면 과연 그 인생이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성공한 인생은 어떤 삶일까

© krakenimages, 출처 Unsplash


3년 전 겨울 외삼촌은 알코올 중독자로 홀로 오랜 세월을 지내고 세상을 떠나셨다.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조문객은 친척을 제외하고 없었다. 외삼촌의 마지막 모습이 그렇게 쓸쓸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외삼촌 장례식에서 한 가지 다짐했다. 나의 죽음을 슬퍼하고 애도해 주는 사람을 살아생전에 많이 만들겠다고 말이다.


그 시기까지 인간관계가 중요하다는 생각보다는 서로의 이익을 추구하는 만남이 대부분이라 짧은 생각에 인맥관리라는 말을 혐오할 정도로 싫어했다. 그렇지만 인간의 사회적 동물이라 하지 않았던가. 단어가 주는 의미는 겉치레가 아닌 진정한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라는 의미로 해석해야 마땅했다.


생각의 전환으로 삼은 그날 이후로 독서하며 다양한 관점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이분법적인 사고방식과 당위적 사고로 똘똘 뭉쳐 언제나 옳고 그름을 집요하게 따지는 습성을 버리고, 맥락을 이해하려는 방향성을 설정했다. 지금은 동일한 신념으로 뭉친 사람들로 주변을 채워나가고 있다. 사회적 안전망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실감하고 있다.


동양 사회는 순종을 중요하게 따진다. 이동 채집 생활이 아닌 농경 사회가 가져온 문화가 현재 세대까지 뿌리 깊게 남아 있다. 현대 사회는 이러한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섞여 공진화한다. 문화의 흐름을 파악하고 예전 시대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시기가 아닐까. 그런 삶이야말로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불완전한 자아를 들여다보기

© lgence, 출처 Unsplash
자신의 생각을 용감하게 밀고 나가야 한다. 그것이 바로 효순이고, 지혜로운 삶이다.
<인간관계 착취> 中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원 가족과 관계를 끊고 아내와 아이에게 집중했다. 그리고 자아의 감정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세심하게 관찰했다. 그런 과정을 겪고 안정감이 조금씩 생성되면서 타인의 관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금의 삶은 풍족한 삶이다. 부모님의 원하는 '자식이 잘 되는 삶'을 살고 있다. 이런 삶이 저자가 이야기한 효순이고 지혜로운 삶이 아닐까.


완벽한 삶은 그 어디에도 없다. 부모님에게 물질적으로 지원하는 행동에서 '효'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부족한 자식임에는 틀림없다. 그렇지만 그 외 다른 면에서 나름 '잘' 살고 있다. 착취를 벗어나 이룩한 삶이다. 그래서 다시 예전 관계로 돌아가기가 두렵다.


권력관계에서 말하는 사람은 힘들지 않다. 듣는 사람이 고통스러울 뿐이다. 부모 자식 관계에서 윽박지르고 호통치는 역할은 대부분 부모가 한다. 이러한 착취 관계에서 고통스럽게 듣기만 해야 할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부정적인 감정을 '창피'해 할 필요 없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물론 선을 넘는 발언은 피해야겠지만, 인간이 느끼는 감정에 부끄러운 건 없다.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차분히 말하는 습관으로 일관한다면 착취 관계는 조금씩 변할지도 모른다.



관계에서 지켜야 할 선을 넘지 말자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너무나 당당하게 자기 생각을 주장하고, 신랄하고 차가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고, 태만과 무시가 지속적으로 쌓이다 보면 인간관계의 붕괴는 시작된다.


서로의 관계가 아무리 편하고 자유롭다고 해도 서로 지켜야 할 선이 있다. 편하고 자유롭다고 아무런 제약 없이 상대를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점을 자각해야 한다. 아이들은 가끔 놀이를 진행하다 보면 선을 넘는 경우가 있다. 서로 장난치다가 모르고 자식이 부모의 뺨을 때리는 행위를 웃으며 넘어가서는 안된다. 선을 넘어갔다고 타일러주고 아무리 장난이라도 선을 넘는 행위에 대해서는 교정이 필요하다.


서로에게 익숙해지면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감정이 생기기 쉽다. 그래서 일정 정도 선을 지키며 말과 행동을 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어야 한다고 배우지만 자신 역시 대접받고 살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지금의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뜻일까? 자신과 타인에게 유연한 태도를 가질 수 있어야 누구에게나 자신의 고민과 무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아의 긍정적이 마인드를 심는 태도가 인간관계 착취를 방어하는 강력한 무기라 볼 수 있다.



※ 해당 도서 리뷰는 '미래지향' 출판사에서 무료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글입니다.


참고 도서 : <인간관계 착취>

저자 : 훙페이윈

출판 : 미래지향

발매 : 2020.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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