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공부하기 전까지 저는 세상을 참 단순하게 나누면서 살아왔습니다. 좋은 감정과 나쁜 감정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이었습니다. 기쁘고 설레고 감사한 건 좋은 것이고, 불안하고 화나고 슬픈 건 나쁜 것이라고요. 그래서 좋은 감정은 붙잡아 두려고 애쓰고, 나쁜 감정은 최대한 빨리 밀어내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살아야 잘 사는 삶이라고 정의 내렸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렇게 자주 지치고, 별것 아닌 일에도 쉽게 마음의 상처를 입을까?' 좋은 감정만 남기려고 애썼는데 왜 마음은 점점 더 피폐해지고 예민해지만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그 질문이 감정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 출발점이었습니다.
감정은 착한 애, 나쁜 애가 아니라 전부 '메신저'
어른을 위한 애니메이션 영화인 <인사이드 아웃>을 보면 슬픔이는 주인공을 망치는 감정인 줄 알고 자신이 없어져야 행복할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그렇지만 영화를 다 보면 우리는 모든 감정을 인정하고 수용해야 비로소 '자아'를 찾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릴 적부터 '화를 내면 지는 거야', '슬퍼한다고 뭐가 달라지니? 그냥 잊어', '불안해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생각해'라는 말을 너무 자주 들으면서 자랍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감정을 선악처럼 나누기 시작합니다.
기쁨, 감사, 사랑 같은 감정은 '착한 애들', 분노, 슬픔, 불안 같은 감정은 '문제아'처럼 말이죠. 그래서 힘든 감정이 올라오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 하나 있습니다.
'아.. 또 내가 문제구나. 이런 걸 느끼면 안 되는데'
그런데 감정을 조금씩 꾸준히 공부하면서 저는 꽤 충격적인 사실을 하나 마주했습니다. 감정은 선악이 아니라, 전부 '정보'라는 것입니다. 나에게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지,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알려 주는 메신저라는 사실 말입니다.
기쁨이 알려주는 것, 분노가 알려주는 것.
어느 주말 오래 미뤄두었던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서 몸은 피곤한데 기분이 이상하게 가벼웠던 날이 있습니다. 주중 내내 괴롭혔던 일이 해결되어 해방된 느낌이었거든요. 그때 느꼈던 감정은 단순한 기쁨이 아니라 '뿌듯한 만족감'에 가까웠습니다. 그 감정은 저에게 '너는 의미 있다고 생각한 일을 해냈고, 그게 너에게 중요했어'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었습니다.
반대로 어떤 날은 회의 시간 내내 가슴이 답답하고 얼굴에 열이 오르는 걸 느꼈습니다. 말을 꺼내려다가도 막히고, 듣고 있다 보니 점점 화가 났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아.. 내가 또 괜히 예민해졌구나'라고 넘겼을 테지만, 그날은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보기로 했습니다.
'내 안에서 발생한 분노는 어떤 경고를 보내고 있을까?'
곰곰이 들여다보니 그 분노 안에는 '지금 경계가 침해되고 있어요. 나의 노력이 가볍게 무시당하고 있어요.'라는 메시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분노는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라, '여기까지가 내 경계선이다'라고 표시해 주는 굉장히 중요한 감정이기도 했던 겁니다.
다만 그러한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권리 주장'이 되기도 하고, 대상을 향한 '폭발'이 되기도 할 뿐이었습니다.
슬픔과 불안이 없었다면 아마 많은 일을 망쳤을 겁니다.
저는 발표나 중요한 회의를 앞두면 여전히 긴장을 많이 합니다. 전날 밤에는 숙면을 하지 못하고, 별별 실수 장면이 머릿속에서 반복 재생되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이러한 불안이 너무나 싫었습니다. 불안을 없애려고 계속 반복적으로 일에 매달리는 완벽주의가 발동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수는 곧 실패라는 당위적 사고에 지배당한 채였습니다.
그런데 모든 감정에는 양면성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불안이라는 감정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과연 불안이 하나도 없으면 발표 준비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적당한 불안이 있었기에 자료를 다시 한번 더 점검하고, 발표 대본을 몇 번씩 읽어보고 질문을 대비하는 연습도 할 수 있었습니다.
불안이 저를 괴롭히려고만 한 게 아니라, 어느 정도는 제가 '망치지 않도록 도와주고 있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만 그 불안이 지나치게 커져서 아무것도 못 하게 만드는 순간 그때는 이미 감정이 제 역할을 넘어선 상태였던 겁니다.
큰 실패를 했을 때, 혹은 가까운 사람과 관계가 틀어졌을 때, 저는 예전에는 최대한 빨리 회복하려고 애썼습니다. '괜찮아. 별일 아니야'라며 자신을 달래고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이가 들면 들수록 괜찮다고 말할수록 더 괜찮지 않았습니다.
표정은 괜찮은 사람인데 몸과 마음이 계속 뒤에서 잡아당기는 느낌이었지요. 그러다 어느 날 정말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서 그냥 하루를 비우다시피 하고 멍하니 슬픔을 다 느껴본 적이 있습니다. 그날 하루 동안은 아무것도 생산적인 일을 하지 못했습니다. 책상에도 앉지 못하고, 그냥 이불에 누워 멍하니 천장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슬픔을 피하지 않고 끝까지 느끼고 나니까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조금 정리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슬픔은 '멈추라'라고 말해주는 감정이었습니다. 억지로 일어나 뛰어가려는 저에게 '잠깐만. 여기를 애도하고 가야 해'라고 이야기해 주는 신호였던 겁니다.
문제는 감정이 아니라 감정을 대하는 나의 태도
이런 경험들이 쌓이다 보니 '감정이 나에게 보내는 긍정적 메시지는 무엇일까?', '감정이 너무 커졌을 때의 부작용은 무엇일까?'를 나눠보는 연습이 되었습니다.
기쁨은 동기 부여를 해주지만, 너무 들뜨면 현실을 잊고 무리하게 됩니다. 분노는 경계를 지키게 해 주지만, 조절되지 않으면 관계를 파괴하죠. 불안은 철저한 준비를 하게 만들지만, 지나치면 회피와 무기력으로 이어집니다. 슬픔은 치유의 시작이지만, 끝없이 머무르면 우울에 가둬 버립니다. 그래서 이제는 감정 자체를 두고 '이건 나쁘니까 빨리 없애버려야 한다'라고 생각하기보다 지금 느끼는 감정은 나에게 어떤 기능을 하는지, 감정의 크기는 적당한지 판단해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삶을 살다 보면 감정을 드러내기 참 곤란한 순간이 많습니다. 회사에서는 속상해도 웃어야 할 때가 있고, 집에서는 힘들어도 부모의 역할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감정을 '참는 법'에 너무 능숙해져 버렸습니다. 저도 한동안은 "괜찮아요."를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습니다.
회의에서 부당한 말을 들어도, "네. 제가 부족한 탓입니다."라고 자책하고, 내 몫의 책임이 아닌 일이 자꾸 넘어와도 "뭐. 어쩌겠어요. 제가 해야죠"라며 감정을 내면에 쌓아두었습니다. 그런데 억눌린 감정은 절대 조용히 사라져 주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은 별것 아닌 일에 터무니없이 크게 화를 내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나중에 생각해 보면 그 상황 하나만 놓고 보면 화낼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폭발했던 건 그 사건 하나가 아니라 그동안 쌓이고 쌓여 있던 '표현되지 못한 감정들'이었습니다.
감정을 다이어트하던 시절, 그리고 소화라는 개념
어떤 강의에서 이런 표현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감정 다이어트는 느껴도 된다는 허락 없이 무조건 줄이고 참는 것이며, 감정 소화는 느끼고, 이해하고, 표현하면서 건강하게 처리하는 것이다.'이 말을 듣고 스스로를 돌아보니 저는 늘 '감정 다이어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정도로 힘들다고 느끼는 건 과한 거야. 다른 사람도 다 힘들어.'
'이 상황에서 화가 나는 내가 이상한 거야. 예민한 성격을 어떻게 바꿀 수 없나'
'다른 사람들은 다 잘 버티는데, 나만 이렇게 견디지 못하고 약한 걸까'
그래서 감정을 느끼는 순간마다 그 감정을 줄이고, 깎고, 덮어버리려고만 했습니다. 타인이 실수해도, 스스로 실수해도 모두 화살은 제 자신을 향해 있었습니다. 이제는 그 방향을 조금 바꾸려고 노력합니다. 다이어트하지 않고 감정을 소화하는 쪽으로요.
음식 소화라는 건 대충 씹지 않고 삼키는 게 아니라 입에서부터 천천히 씹고, 위에서 잘게 부수고, 몸이 쓸 수 있는 형태로 바꿔주는 과정입니다. 감정의 소화도 이와 비슷합니다.
인식하기: 지금 화났구나, 불안하구나, 서운하구나.
수용하기: 이 감정을 느끼는 건 이상한 게 아니야. 이유가 있겠지.
해석하기: 이 감정은 나에게 무엇을 알려주려는 걸까.
표현하기: 말, 글, 행동으로 최대한 부드럽게 드러내 보기.
이러한 4단계를 전부 완벽하게 해내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참으면 없어지겠지'라는 기대 하나만큼은 이제 내려놓으려 애씁니다.
감정을 판단하지 않고 해석하려는 태도
요즘 제가 조용히 해보는 연습이 하나 있습니다. 하루가 끝날 무렵, 노트를 펼쳐서 오늘 가장 강하게 느꼈던 감정 하나를 떠올립니다. 그리고 한 문장을 작성합니다.
나는 오늘 ___한 상황에서 ___라는 감정을 느꼈고, 그 감정은 나에게 ___라는 메시지를 전해 주었다.
예를 들면 '오늘 나는 해야 할 일을 미루고 SNS만 보다가 초조함과 자기 비난을 느꼈고, 그 감정은 실패가 두려워 시작을 미루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라는 식입니다. 이렇게 한 문장을 쓰고 나면 감정이 조금은 '이해 가능한 존재'가 됩니다. 막연한 덩어리에 눌려 있지 않고, 자신에게 말을 건네는 메신저로 느껴집니다.
이제는 감정이 올라올 때 예전처럼 '아. 이 기분 나쁜 감정은 뭐지'라고 단정 짓기보다 '지금 이 감정은 나를 괴롭히려는 걸까? 아니면 나를 지키려고 신호를 보내는 걸까?'라고 물어보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여전히 감정에 휩쓸려 원하는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순식간에 말이 앞서 나가 후회할 때도 있고, 슬픔에 빠져서 한참 동안 헤어 나오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 분명히 달라진 점이 있습니다.
이제 저는 감정을 무조건 없애야 할 '문제'로만 바라보진 않습니다. 감정은 제가 놓치고 있던 무언가를 알려주는 힌트일 수 있다는 걸 믿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글을 읽고 혹시 마음 한편에서 조용히 고개를 드는 감정이 있다면 그 감정에게 이렇게 물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지금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서 이렇게 날 찾아온 거니?"
그 질문 하나가 감정에 쫓기던 자리에서 감정을 이해하는 자리로 작게나마 옮겨가는 첫걸음이 되어 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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