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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준원 Dec 20. 2019

이민이 '헬조선' 탈출 해법은 아니다

최근 10년간 한국 사회는 다양한 이슈로 몸살을 겪었다. 뒤숭숭한 상황에서 한국의 암울했던 시대로 회귀했다는 의미의 신조어가 탄생하기도 했다. 바로 '헬조선'이다. 한국은 지옥에 가깝고 전혀 희망이 없는 사회라는 뜻이다. 과연 한국은 선진국에 진입하지 못하고 개발도상국에 머무른 국가일까. 아니면 그보다 못한 후진국으로 전락하고 있을까. 아무래도 주위의 정보와 언론의 뉴스를 보면 암울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점점 어려워지는 취업난, 안전 불감증으로 인한 사고. OECD 국가 중 자살률 상위권. 이러한 언론의 보도 앞에 해답은 한국 사회의 탈출밖에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여럿 있다. 과연 한국 국민들에게 '이민'만이 풍요로운 삶을 가져다주는 정답일까.


<팩트풀니스>를 읽어보면 '이민'이라는 행동이 절대 이성적인 해답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저자 한스 로슬링은 세계의 모든 나라를 후진국, 개발도상국, 선진국으로 나누지 않고, 소득 분포에 따라 4단계로 나누었다. 한국 사회는 어디에 위치할까. 바로 4단계다. 한국 사회보다 더 잘 살고, 건강한 나라는 열 손가락 안에 꼽는다. 우리는 그만큼 세상을 넓게 보는 시야가 부족하고 오해한다. 우물 안 개구리라는 표현이 적절해 보인다.

보통 사람들은 세계관을 가지고 있지 않고, 그렇게 관심도 많이 없다. 내가 아프고 고통스러운 감정에 더욱 관심을 쏟는다. 대지진으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국가의 재난이 언론에 보도돼도, 지금 내가 다친 손가락의 아픔에 신경이 쓰이듯 우리는 세계와 나의 간극에서 나에게 더 집중한다. 그래서 <팩트풀니스>의 수많은 통계와 수치를 마주함에도 불구하고 불편한 감정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았다. 한국 사회가 4단계 생활로 풍요롭다고 하더라도 개인은 지금보다 개선된 삶을 살고 싶고, 그 무리 안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게 인간이다. 하지만 세상에 대해서는 오해하지 말고 살아야 할 필요는 있다. 인간의 뇌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속단하는 본능이 존재한다. <팩트풀니스>에서 언급하는 본능을 숙지하고 삶에 어떻게 적용할지 고민해봐야 한다.




[간극 본능]

사람들은 저소득 국가의 삶을 실제보다 훨씬 안 좋게 생각한다는 게 분명해졌다.
<팩트풀니스> 49p


한국 사회는 부유한 나라에 속한다. 물론 최고로 부유한 나라는 아니지만 아주 살만한 나라다. 이런 나라에서 이민만이 살길이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한국 사회는 고소득에 속한 국가다. 세계 대부분이 중간 소득 국가인데 이민을 간다면 결국 고소득 국가 중 하나를 고를 수밖에 없다. 과연 그런 국가는 얼마나 있을까. 또한, 더욱 좋은 사회라 일컫는 나라로 이민을 간다 해도 본인의 삶이 더 나아지리란 보장도 없다. 간극 본능은 아주 강렬하다. 그리고 인간은 이분법을 좋아한다. 부자와 빈자를 나누고, 빈자가 아니니 부자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서로 반대되는 이야기는 흥미롭고 도발적이며 솔깃해서 간극 본능은 매우 쉽게 촉발하지만 상황을 이해하는 데는 그다지 도움이 안 된다.




[부정 본능]

좋은 것보다 나쁜 것에 주목하는 현상이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좋지 않은 일에 대한 소식을 듣기는 쉽다. 하지만 좋은 일을 알기란 어렵다.
<팩트풀니스> 75p, 77p


주변 환경에 사람들은 대부분 영향을 받는다. 내가 보는 모습이 언제나 진리에 가깝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인다. 인지 편향으로 과열된 경쟁의식은 스트레스를 가중시키고, 살기 힘든 환경이라고 치부한다. 주변의 영향으로 판단하는 사람이 많으므로 당연하게도 스트레스가 높은 사회 구성원은 세상이 점차 나빠진다고 대답할 가능성이 높다. 자신의 맥락에서 판단하고 느끼는 감정은 모두가 다르다. 그러나 개개인의 미시적 관점이 아닌 거시적 관점의 통계 수치를 살펴보면 세상은 점점 나빠지지 않고 좋아진다고 말할 수 있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의 노동은 많은 부분에서 기계로 대체했고, 생산성을 높이고 있다. 그로 인해 백신과 인간 생활에 필수 용품은 더 값싸게 생산하고 전 세계로 유통한다.




[직선 본능]

호모 사피엔스의 인구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계속 증가할까? 인구는 증가하다가 어느 정도 선에서 유지될 것이라 예측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인구가 계속 선형적으로 증가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직선 본능이다. 200년 전만 하더라도 유아 생존율은 지극히 낮았다. 평균 6명의 자녀를 낳아도 30세 이상의 성인으로 생존하는 자녀는 평균 2명에 불과했다. 의학과 기술의 발달로 인간은 유아 사망률을 급격히 낮추었다. 그래서 인간 스스로 인구의 증가를 제어할 수 있는 2명의 자녀를 갖도록 스스로 조절했다. 하지만 유아 사망률을 낮추는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로 인구의 증가는 필연적으로 뒤따른다. 앞으로 전 세계의 인구는 노인이나 유아의 증가보다 15세~75세인 성인 인구가 증가한다. 그러다 인구의 증가는 평행하게 진행한다고 예측한다.




[공포 본능]

지진, 전쟁, 난민, 질병, 화재, 홍수, 상어 공격, 테러, 이런 드문 사건은 일상적 사건보다 뉴스로서 더 가치가 있다.
<팩트풀니스> 149p


911 쌍둥이 빌딩이 테러당한 이후 미국의 많은 사람들은 비행기 탑승에 공포심을 갖게 되어, 오히려 연간 사망자가 더 발생했다. 비행기를 이용하지 않고 자동차 운전량이 평균치를 넘어섰고, 그에 따른 교통사고로 연간 사망자가 증가했다. 이런 사례 하나만 보아도 인간은 쉽게 공포에 반응하고, 자주 일어나는 일처럼 느낀다는 점을 알 수 있다. 50여 년 전만 하더라도 비행기는 안전하지 않았지만, 세계 각국의 협력으로 기술의 한계를 뛰어넘어 사고율을 극도로 낮추었다. 아무리 극도로 낮추었다고 해도 0.001%의 확률로 사고는 발생한다. 결국 이러한 거의 일어나지 않는 사건은 보도 자료로 자주 쓰인다.




[일반화 본능]

사람은 끊임없이 범주화하고 일반화하는 성향이 있다. 무의식 중에 나오는 성향이지 편견이 있다거나 깨우치지 못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팩트풀니스> 208p


뉴턴은 사과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며 중력의 법칙을 고안했고, 그 당시 태양계에서 발견한 행성들에 법칙을 적용했다. 당연하게도 수성은 그 시대에는 발견되지 않은 행성이므로 중력의 법칙을 적용하지 않아도 무방했다. 세월이 한참 흘러 천문학의 발전으로 수성이 발견되고, 중력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점을 발견했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으로 수성에서 작용하는 운동을 설명하는 데 성공했고, 인간의 지식을 확장하는 계기를 수 세기 만에 만들었다. 이처럼 세상에 대한 해석은 현재 시점에만 적용할 수 있을 뿐 언제 어떻게 변화할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렇다고 무조건 현재의 진리를 배척하자는 말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일반화가 아닌 합리적 의심이 필요하다.




[운명 본능]

아프리카는 계속 가난할 운명이라는 생각은 매우 널리 퍼져 있지만 단지 느낌에서 비롯한 생각일 때가 많다.
<팩트풀니스> 242p


아프리카는 다른 국가에 비해 평균적으로 뒤처져 있지만 아프리카 국가들이 모두 뒤져져 있는 건 아니다. 사회와 문화는 끊임없이 움직인다. 사소하고 더뎌 보이는 변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축적된다. 현재 극빈층의 빈곤이 사라지는 중이라면 연간 높은 성장세는 50년 뒤에 적어도 비슷한 수준으로 바뀔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인공지능의 기술을 뒤늦게 받아들이고 개발하는 그들에게 신기술의 파급력을 간극은 다시 발생하지 않을까 의문이 든다.


운명 본능을 억제하려면 늘 새로운 데이터를 받아들이면서 지식을 신선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팩트풀니스> 257p


사회과학은 변화무쌍하다. 그래서 어렵다. 인간이 변하고 그들이 사는 세상이 변하니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쏟아지는 새로운 데이터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할 필요가 있다. 급변하는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는 통찰이 필요하다.




겸손하면 모든 것에 대해 내 견해가 있어야 한다는 압박감도 없고, 항상 내 견해를 옹호할 준비를 해야 할 필요도 없이 마음이 편하다. 호기심이란 새로운 정보를 마다하지 않고 적극 받아들이는 자세를 말한다. 아울러 내 세계관에 맞지 않는 사실을 끌어안고 그것이 내포한 의미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치열한 경쟁 사회이기도 하지만 세계에서 살기 좋은 나라 중에 하나다. 현재 개인의 관점에서 삶이 어렵고 힘들어도 세계관으로 본다면 꽤 괜찮은 삶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이래도 '헬조선'을 벗어나 이민을 가고 싶은가. 아니면 변화무쌍한 사회과학을 이해하려고 보다 깊이 책을 읽고 사색을 할 것인가. 선택에 따른 결과는 본인의 몫이라 생각한다. 나는 책을 읽고 문해력을 높여 '헬조선'을 '헬로조선'으로 만드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참고 도서 : <팩트풀니스> by 한스 로슬링

#씽큐베이션 #체인지그라운드 #디지털시대와아날로그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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