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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그거 어떻게 안 하는데

나 혼자만 매달리는 관계들

by 소정


기대

: 어떤 일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기다리는 태도

"그럼 기대를 하지 마." 타인과의 관계에서 의미를 찾는 이들은 심심치 않게 들어봤을 법한 말이다. 그래서 그걸 어떻게 안 하는데?라고 되물으면, 그들조차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 그저 기대는 불필요한 짐일 뿐이니, 내려놓는 것이 내 안위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것이 틀린 말은 아니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도 상처도 없다. 그러나 기대를 함으로써 생기는 실망과 상처가 무조건적으로 인간에게 좋지 않다는 것 또한 의심이 필요하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타인에게 기대를 한다.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우리는 깊은 유대감을 원하고, 서로의 마음을 교류하며 의미를 찾는다. 그렇다면 기대가 결코 부정적인 것만은 아닐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01 자연스러운 감정


인간은 누구나 크든 작든 타인에게 기대를 한다. 부모가 나를 사랑해 주기를, 친구가 내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기를, 연인이 나를 배려해 주기를, 그리고 내가 이 관계에 노력하는 만큼 상대방도 노력을 해주길. 이러한 기대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있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상대방을 좋아할수록 더 많은 기대를 하게 되고, 그 기대가 충족될 때 인간은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기대는 관계를 지속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어떤 관계에서든 신뢰와 배려가 있어야 지속이 될 수 있다. 또한, 혼자만 노력하는 관계는 결코 오래 지속되기 힘들다. 친구가 나에게 먼저 연락을 해 줄 거라는 기대가 없다면, 애초에 내가 먼저 연락을 하고자 하는 의지도 생기지 않는 것이다. 연인이 나를 위해 노력할 거라는 기대가 없다면, 이 관계를 계속 이어나가는 것도 의미 없이 느껴진다. 결국, 기대는 인간이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것에 필수적인 감정이다.

하지만 기대는 늘 충족되지 않는다. 인간은 자신이 타인에게 주는 만큼 돌려받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이타적이지 않다. 상대방은 생각보다 나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고, 그저 내 연락에 형식적인 호응만 던져줄 뿐이었다는 것. 내가 먼저 연락을 하지 않는다면 결코 먼저 연락을 하지 않는다는 것. 내가 먼저 건넸던 관심과 선물, 그리고 만남의 요청이 정말 나의 욕심에 불과했다는 것을 아는 순간, 모든 것은 부질없게 느껴진다. 피할 수 없는 실망과 상처는 관계에 대한 인간의 노력을 더 이상 무쓸모한 것처럼 여겨지게 한다. 그 모든 것들이 오로지 나의 주관만을 반영한다는 것을 아는데도, 무척 허무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일까.




02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크다. 상대방이 좋을수록 상처도 크다. 처음에는 가벼운 서운함에서 시작하지만, 점점 관계 자체에 대한 회의감으로 변질될 수 있다. '나는 이 관계를 위해 애쓰는데, 저 사람은 왜 이렇게 무심할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진다면, 그 관계는 피곤함으로 범벅이 되어 돌이키기 힘들어진다. 한 번만 더 기다리고, 먼저 다가가며 노력하면 달라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설득하며 관계를 붙잡고 있는 경우도 많다. 내가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 관계들이 원래부터 나와 맞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떠한 관계는 서로 기대고 의지하며 더 깊어지지만, 어떤 관계는 아무리 노력해도 상대방은 그 자리에 멈추어 있다. 어쩌면, 스스로의 욕심일 수도 있다. 관계를 오래 유지하고 싶은 일방적인 강박으로, 불필요한 인연을 오래 끌고 가는 것은 결코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진정으로 나와의 관계를 위해 적극적으로 연락하고 교류하며 노력하는 이들을 바라보아야 한다. 소용없는 관계까지 신경을 쓰는 것은, 나와의 관계에 적극적인 이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기대가 충족되지 않는 관계는 결국 나에게 감정적 소모만 남길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모든 관계를 쉽게 정리하라는 말은 아니다. 이 글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기대와 실망이 계속 반복되는 관계라면 한 번쯤은 그 관계가 내가 어떤 의미인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먼저 연락 한 번 주지 않는 타인에게 계속해서 에너지를 쏟는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일까? 우리는 종종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언제나 최선은 아니다. 특히, 기대가 실망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관계라면, 굳이 붙잡고 있을 필요가 없다.



03 무겁지 않은 관계


"기대를 하지 마."

기대를 버리면 실망할 일도 없고, 관계에서 상처를 받을 일도 줄어든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기대를 완전히 내려놓는다고 해서, 관계가 더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기대는 관계를 위해 노력하게 만든다. 기대를 하지 말라고 말하는 입장이라면, 한 번 정도는 자신의 관계들을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부담과 상처를 피하기 위해 상대방 혼자만 관계에 노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한다.

기대 자체를 버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기대를 걸어도 괜찮은 관계와 그렇지 않은 관계를 분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이는 기대를 해도 실망만을 안겨준다. 결코 관계를 유지하려 하지 않고, 작은 교류조차 스스로 시도한 것이 없는 타인. 이런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기대를 버리는 것이 맞다. 중요한 관계로서의 대접을 멈춰야 한다.

하지만 어떤 이는 상대방과의 관계를 존중하고, 일상 속에서의 작은 교류조차 신경 쓰며 노력한다. 상대방과의 약속을 저버리지 않으려 하며, 혹여나 약속을 지키지 못하더라도 그에 맞는 이유와 사정을 대며 사과한다. 약속 따위 모르는 척 입을 다무는 것이 아닌, 적절한 대응을 하며 상대방과의 관계를 존중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들을 한 두 명만 남겨두어도, 실망하고 상처받을 일들은 현저히 줄어들 것이라 확신한다. 이런 이들에게 더 마음을 쏟는 것이 현명한 것이다.

기대는 인간관계에서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관계에서의 상처를 피하기 위해 기대를 회피하는 것보다는, 기대할 가지가 있는 관계와 아닌 관계를 적절히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관계를 끌고 가기 위해 억지로 노력하여 상처받지 않아도 괜찮다. 그 무거운 관계는 내려놓아도 괜찮다. 대신, 함께 짊어질 수 있는 무겁지 않은 관계들을 곁에 두면 된다.


You are responsible for your life. You can’t keep blaming somebody else for your dysfunction. Life is really about moving on. - Oprah Gail Winfrey
당신은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이 있습니다. 당신은 다른 사람을 탓할 수 없습니다. 당신의 삶은 당신이 만든 결과입니다. - 오프라 윈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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