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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세젤이맘 Jul 04. 2022

마흔쯤 살아보니 보이는 것들

나의 해방 일지



20대 중반쯤 친구 J와 자취하던 시절, J 얼굴에 붉은 여드름 3개가 올라왔다. 여드름은 마주 앉아 있으면 눈에 띌 정도의 화농성 여드름이었고, 유난히도 작았던 친구 얼굴에서 3개의 여드름은 더 두드러져 보였다. 한참 피부에 예민할 나이 20대, 친구는 하루 종일 거울을 보며 속상해했다. 그리고는 피부과에 가볼 거라고 했다.


피부과? 여드름은 누구나 한 번쯤 쉽게 생기는 것 아닌가? 제대로 짜내기만 하면 흉터도 남지 않고 자연스럽게 없어지는 것 아니었나? 여드름이 나면 대충 손으로 짜고 말았던 나와는 달리, 친구는 피부과에 가겠다고 했다. 피부과는 다른 병원에 비해 비용이 많이 들고 약도 독하다고 해서 기피하던 병원이었다. 고작 여드름 몇 개에 피부과에 가겠다던 친구가 조금 이해하기가 힘들었었다.


반면 나는 피부보다는 옷에 관심이 많았다.

신림동에서 수험생활을 하던 때도 철마다 쇼핑몰에 고 유행하는 옷을 예쁘게 차려입으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겨울에는 부츠를 신고 독서실에 다녔을 정도니 운동복이 교복 같은 신림동에서 코트에 부츠를 신고 독서실을 다녔던 나는 아마도 무늬만 수험생으로 보였을 것이다.


'옷이 날개다'라는 말에 200% 공감한다.

반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있던 남성이 세련된 슈트만 차려입어도 완전 다른 사람이 된다. 옷차림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상, 직업, 성격, 나이가 달라 보이고 결과적으로 사람 자체가 달라 보이게 된다.


고등학교 졸업 후 한 번도 보지 않았던 친구의 친구를 서울 강남역에서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이유로 만나게 되었을 때, 당시 여대생의 로망처럼 유행했던 모직코트와 모직 치마, 검은색 스타킹에 검은색 단화, 팔에 들린 명품 가방까지, 세련되고 예뻤던 친구의 옷차림에 수험생이었던 나는 잔뜩 주늑이 들었고 내가 그렇게 초라해 보일 수가 없었다.


최신 유행을 선도하며 개성 있는 옷차림까지 멋들어지게 소화할 정도는 아니지만 유행을 따라가며 심플하고 단정하게 차려입고 싶었다. 옷으로 나를 돋보이게 하고 싶었다. 어쩐지 내 눈에도 예뻐 보이는 날엔 오늘따라 내가 더 괜찮아 보이는 것 같은,  스스로 만족감을 느끼는 기분도 꽤 좋았다.


여자가 귀걸이를 하면 7배가 예뻐 보인다고 하던데 굽 있는 구두도 마찬가지다. 청바지에 운동화보다는 청바지에 굽 있는 뾰족한 구두가 더 섹시하게 보인다. 운동화보다는 구두를 신고 있는 종아리의 각선미가 어쩐지 더 돋보인다. 또각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질 때는 묘한 자존감까지 느껴지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마흔쯤 되고 보니 어느 순간 구두보다는 운동화를 자주 신게 되었고, 아무리 노력해도 얼굴에 생기는 기미와 주름살을 막을 수는 없었다.


주름도 주름이지만 둘째를 낳고 기미가 부쩍 늘었다.

그 무렵 나도 모르게 화장이 점점 더 두터워지기 시작했는지 남편은 맨 얼굴이 훨씬 예쁘다는 말로 화장이 두텁다는 말을 대신했다. 그게 말이 되냐고 하자 '기미를 가리려 하지 말고 그냥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게 예쁘다'라고 했다.





사람들은 왜 젊어 보이고 싶어 할까

노화의 자연스러운 증상인 주름과 기미를 없애는 것이 더 예뻐지는 걸까? 40대, 50대가 되어도 주름 하나 없이 백옥 같은 피부가 예쁜 피부일까?


나이 듦을 거스르는 것이 아름다운 것일까?  


어떤 사진작가와 유명 여배우의 일화가 있다.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는 여배우가 실력은 있지만 아직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사진작가가 촬영을 한 후 나눈 대화 내용이다

사진작가 : 선생님 오늘 찍은 사진에서 뭔가 마음에 안 드시는 부분이 있나요?
여배우 : 오늘 찍은 사진을 보니 이제 제 얼굴에도 주름이 가득해 보이네요
사진작가 : 아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진에서 보이는 주름살을 깨끗하게 수정하겠습니다.

그러자 여배우가 미소를 지으면서 작가에게 말했다.
여배우 : 아니요 수정하지 말아 주세요, 저는 제가 아끼는 지금의 얼굴을 만드는데 평생이 걸렸거든요



20대, 30대를 지나 마흔쯤이 되고 보니 피부, 옷차림에 따른 미의 기준에 대한 생각이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최강 동안이라고 매체에 소개되는 사람들을 보면 자기 관리에 철저한 그 사람들의 노력은 정말 대단해 보이지만, 어딘가 어색했다. 놀라울 정도로 젊어 보이는 외모보다도 자연스러움을 거스른듯한 흔적이 더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내가 구두를 벗어던진 건 아이들이 생기고 난 뒤에는 구두가 아주 많이 불편해졌기 때문이다. 아이들 등원 가방에 이불가방, 내 출근 가방까지 들고 어떨 때는 아이까지 손에 들고 움직여야 하는 일상에서 굽 있는 구두는 두 손뿐 아니라 두발까지 묶어놓는 격이었다. 그 와중에도 가끔 쫙 빼입은 치마 정장에 구두를 신고 성공한 커리어우먼의 정석 같은 옷을 입은 여자를 보면 예쁘다, 부럽다, 나도 입고 싶다 라는 마음을 숨기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지금은 굽 있는 구두보다는 운동화를 신고 그 안에서 풍겨 나오는 그 사람의 자유로움과 편안함이 더 좋다. 굳이 기미를 가리려는 두터운 화장보다는 기미가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화장이 더 예쁘다는 것도 알게 됐다. 뭐든 자연스러움을 거스르는 인위적인 행동은 어딘가 어색하기 마련이었다.


나이 들수록 그 사람의 성격은 얼굴에 드러나고 생활태도는 체형에 드러난다고 한다. 웃는 일보다 인상 쓰는 일이 많았던 사람은 자연스럽게 이마에 주름이 생기고 입꼬리가 처지게 된다. 다리를 꼬고 앉거나 허리를 곧게 세우지 않았던 생활태도는 그 사람 체형에 굽은 허리로, 틀어진 골반으로 화석처럼 굳어져 버리고 만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노화와 더불어 그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또한 몸에 새겨지는 것이다.


20대에 맞는 예쁜 얼굴이 있고, 30대에 더 어울리는 얼굴이 있다. 40대에  주름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50대, 60대가 되면 피부는 눈에 띄게 수분과 탄력이 없어질 것이다


지금 내 나이에 맞는 예쁜 외모를 갖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주름 한 줄 없는 꿀광피부보다는 웃는 모습이 얼굴에 베어 자연스럽게 눈가 주름이 만들어지도록, 기미와 검버섯이 만들어진 시간들 속에 인자하고 온화한 그 사람의 성품이 드러나는 외모를 만들어야겠다.


굽은 허리를 더 꼿꼿이 세워 바른 체형을 만들고, 일상을 좀 더 활력 있게 채워 줄 근육을 위해 꾸준한 운동으로 탄탄한 몸을 만들어 가야겠다.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샤르트르의 말처럼 타인에게 보이는 시선과 나의 욕망 사이 간극을 줄이기 위해 애쓰며 살았던 삶은 꽤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신경 쓰이던 것들을 하나, 둘씩 더 내려놓기로 했다. 신경 쓰이던 것에서 벗어나는 느낌, 그것은 자유롭고 해방감을 준다.


한해 한해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를 가두는, 나를 제약했던 것들을 하나둘씩 내려놓는다는 것


채우기보다는 비우기, 붙들기보다는 잠시 손에서 놓아보는 것, 이것이 진정한 나의 해방일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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