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해소하고, 생각을 연결하고, 신뢰를 만드는 숙의 대화의 기술
Everything is plainer when spoken than when unspoken. - Socrates
턴어라운드 리더에게 대화는 무한히 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전략적 자원이다. 위기 상황을 전파하고, 개개인에게 변화를 설득하고, 도전 목표를 같이 만들고, 생각을 모아 혁신을 이루는 모든 과정에서 대화는 리더와 구성원, 개인과 개인을 연결시켜 팀워크를 만들어 낸다.
턴어라운드 리더에게 대화의 양은 에너지 레벨과 같다. 다양한 계층의 구성원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구성원들에게는 리더의 열정으로 여겨진다. 또한 조직 내에 대화의 양이 늘어가는 것을 보면서 리더는 조직의 에너지 레벨을 확인할 수 있다.
턴어라운드 리더의 대화는 질적인 측면에서도 대화를 소통으로 이끌 수 있는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 본질적인 의문에 대한 자유로운 질문, 동등함과 진지함에 기초한 경청과 대화, 건설적인 토론이 턴어라운드가 필요한 조직의 '사유 없는 믿음, 의지 없는 순응'을 깨뜨릴 수 있다. 진정한 리더십의 기술이다.
대화는 경청과 질문을 통해 동등함과 진지함을 표현해야
동등함과 진지함 속에 대화의 꽃이 핀다! 대화와 토론에 임하는 당사자들은 동등한 발언권을 가지고 있다. 위계를 강조하는 문화 속에서 대화의 꽃은 사라지고, 대화는 일방적 훈계나 지시로 끝나게 된다. '의견을 내 보세요!'라는 리더의 재촉에 구성원들은 리더의 기분을 관리하는 형식적인 대화로 응답한다. 리더가 대화에서 찾고자 하는 구성원들과의 공감이나 합의는 기껏해야 매우 얕은 수준에 그치게 된다. 권위는 위계가 아닌 그 사람이 한 말에서 나온다. 대화를 이끌어 가는 리더의 역량이 곧 리더십인 것이다. 미국 등 대화가 발달한 서구사회에서 대화 참가자는 모두 동등하게 대우받는다. 책상 위에 걸터앉아 커피잔을 들고 흉금 없이 의견을 교환한다. 워크숍 등에서 직책 대신 별칭을 만들어 부르게 하는 것도, 기업들이 직급체계를 단순화하는 것도 대화에 참석하는 사람들에게 동등함을 기초로 소통을 촉진하기 위함이다.
대화 참가자들은 서로를 존중하며 진지하게 대화에 임해야 한다. 일방이 의미, 생각,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데, 상대방이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대화는 실종되고 그 자리에는 불신만 남게 된다. 대화에 참여하는 사람 모두가 진지함에 기초한 관심과 호기심을 표현할 때 생산적인 대화와 건설적인 토론은 활성화된다. 사무실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는 주로 회의실이나 보고 자리에서 이루어진다. 리더는 올바른 자세로 앉아 대화에 귀 기울임으로써 구성원들에게 존중을 표시해야 한다. 리더의 대화는 객관적 질문들을 통해서 흥미를 가지고 진지하게 대화에 임하고 있다는 신호를 상대방에게 줄 수 있어야 한다. 못마땅한 내색을 하거나, 질책이 앞서거나, 대화를 끊어 버리는 리더의 행동은 대화를 단절시키는 예의에 어긋난 행동이다. 심리적, 육체적으로 대화가 어려운 상황이라면 회의나 보고를 미루어야 한다.
대화는 '마주 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음, ' 소통은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있다. 우리가 사무실에서 마주하는 대화는 '깻잎 논쟁'처럼 결론 없이 생각의 차이을 서로 확인하는 수준을 넘어선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이해 관심사인 실질적으로 얻고자 하는 것을 상대방에게 납득시켜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리더의 일방적 지시와 섣부른 결론은 사유 없는 믿음과 의지 없는 순응으로 구성원을 길들인다. 말 잘하는 리더가 아닌 소통하는 리더의 대화는 팀워크를 증진하여 성과의 차이를 만든다. 대화가 소통에 이르는 위해서는 시간과 열정을 투자하여 세 단계 과정을 거쳐야 한다. 경청을 통해 이해관계를 감싸고 있는 감정을 녹이고, 이해 관심사 파악과 조정의 과정을 통해 서로가 원하는 바를 교환해야 한다. 마지막 단계로 신뢰가 형성되면 새로운 전략적 협업을 통해 공동의 파이를 키울 수 있는 소통의 단계에 이르게 된다.
대화가 소통에 이르는 세 가지 단계
첫 번째 단계, 경청으로 이해 관심사를 감싸고 있는 상대방의 감정 녹이기. 대화를 위해 자발적으로 마주 앉은 사람의 머릿속에는 진정으로 바라는 것, 명확한 '이해 관심사'가 있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메신저나 지금까지의 과정에 대한 불만족한 '감정'이 억눌려 있을 수 있다. 마음이 머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대화에서 보이는 말과 몸짓 언어로는 감정에 가려진 이해 관심사를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이 사람이 도무지 무엇을 원하는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느끼는 순간이 생긴다. 이해 관심사를 파악하지도 못한 이 상태에서 섣부르게 반론을 제기하거나 감정으로 맞서는 것은 대화를 중단시키고 어렵게 마주 앉은 관계마저 단절시킬 수 있다. 상대방을 동등한 파트너로 인정하면서 감정적 대응을 억제하고 진지한 경청으로 존중을 표현하면 파트너는 감정을 비교적 차분하게 분출하고 해소한다. 이제 이해 관심사가 보이기 시작한다.
'좋고 싫음'의 주관적 입장으로 표현되는 '희노애구애오욕(기쁨喜, 노여움怒, 슬픔哀, 두려움懼, 사랑愛, 싫어함惡, 바람欲)'의 감정은 다양한 원인에서 발생한다. 우리가 2차 집단에서 마주하는 감정은 주로 세 가지 원인에서 발생한다. 목표로 하는 수준과 현실 사이의 괴리에서 느끼는 개인 심리적 원인, 관계와 비교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원인, 그리고 정의감이나 균형감과 같은 문화적 원인이다. 감정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바를 직시하지 못하게 한다. 실질적으로 원하는 이해관심사가 감정에 가려져 있고, 감정은 '좋고 싫음과 불합리한 요구'의 입장으로 표현된다. 대화가 소통에 이르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방의 감정을 녹여야 한다. 상대방의 불합리해 보이는 입장이나 격양된 감정에 반응하지 말고 경청을 통해 이해관심사를 감싸고 있는 감정을 녹여야 한다. 상대방도 감정을 분출하고 나면 이성이 말을 하기 시작한다.
FMCG(Fast-moving consumer goods, 일용 소비재) 산업에서 '강성 고객'의 클레임은 골칫거리로 인식된다. 필자의 경험에서 보면 처음부터 강성인 고객은 존재하지 않는다. 불만처리 과정이나 소요시간, 담당자의 태도 등이 불만고객을 강성 고객으로 만든다. 필자가 대표이사 신분으로 진해까지 찾아가서 만난 고객도 그랬다. 카페에서 만나 인사를 드리니 엄청난 분노를 표출하였다. 이성적으로 중간중간 해명하려는 고객만족 부서장을 제지했다. 묻기 전에는 대답하지 않았고,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현했다. 그렇게 30여분이 흐르자 고객의 목소리는 차분하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때 몇 가지 핵심적인 질문, 그리고 처리 과정과 불량에 대한 사과를 드렸다. 경청은 말하는 사람의 감정을 해소시키고,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진실과 오해를 구분하게 한다.
두 번째 단계, 질문으로 이해관심사(Interest)를 파악하고 명분과 실리를 교환하기. 감정을 해소했다면 이해관심사 파악에 나서야 한다. 불합리하고 무리한 요구, 즉 입장 뒤에 숨어있는 '진정으로 그리고 실질적으로 원하는 것'을 확인한다. 이해관심사는 명분과 실리의 양면을 가지고 있다. 하나로 집약된 이해관심사는 나누어 교환하고, 나누어져 있는 이해관심사는 뭉쳐서 교환하면 좀 더 쉽게 대화할 수 있다. 이해관심사를 교환한다는 것은 전체 최적화를 위해 조금씩 양보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양보를 위해서는 명분도 중요하다. 막연한 우려가 있다면 '이럴 경우 이렇게 한다'와 같은 구체적인 단서를 만들어 해소한다. 대화를 위해 자리에 마주 앉은 사람은 찬반, 호불호, 선택의 이유 등 각자의 표면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 입장 뒤에 숨어있는 명분과 실리의 이해관심사 항목과 항목별 중요도를 파악해야 한다. 이제 공정한 교환을 제안하면 된다.
감정을 녹이고 나면 상대방의 입장과 태도, '왜 그렇게 불합리하고 무리한 요구'를 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이제는 말로 표현된 입장 뒤에 숨어있는 '진정 무엇을 원하고 지지하는지'에 대한 이해관심사를 질문을 통해서 확인해야 한다. 어떤 명분과 실리를 얻기 원하는지, 그리고 각각의 요소들의 상대적인 중요성을 파악하는 것이다. 직장을 선택할 때도 작은 회사의 높은 연봉보다 그럴듯한 회사 브랜드가 중요할 수도 있고, 작은 회사라도 핵심부서에서 일한다는 명분이 회사 브랜드나 복지제도보다 중요할 수도 있다. 개인과 집단의 특성에 따라 명분과 실리를 구성하는 항목이나 우선순위도 달라진다. 이것을 질문을 통해서 파악하면 교환이 이루어질 수 있다. 나에게 덜 중요한 데 상대방에게 중요한 것이면 교환한다. 명분과 실리도 교환할 수 있다. 명분을 주고 실리를 취할 수도, 실리를 주고 명분을 가져올 수도 있다.
리더로서 연봉협상에 임해보면 구성원들은 대부분 불만을 표시한다. 리더는 역량과 성과평가 자료를 가지고, 구성원은 '불만'이라는 감정과 '더'라는 입장을 가지고 마주 앉으면 대화는 평행선을 달린다. 자칫하면 우수한 인력이 평가에 불만을 가지고 이직을 결심할 수도 있다. '왜, 무엇이'라고 질문해 보자. 연봉을 중요시하는 사람도 있지만 승진이나 직책, 성장의 기회, 그리고 리더의 인정에 목말라하는 사람도 있다. 다른 이해관심사를 가진 구성원들에게 개인들의 역량 및 성과평가 결과만을 가지고 회사의 기준으로 줄 세워 놓고 통보하면 만족도는 낮아진다.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파악하고 평가결과에 따른 보상과 연계하면 동일한 자원으로 양측의 만족도는 배가 될 수 있다. 학위 취득을 위해 일주일에 하루 정도 휴가를 내야 할 수도 있고, 연구소에서 일하고 싶을 수도 있고, TF 팀의 리더가 되고 싶을 수도 있다.
세 번째 단계, 신뢰를 바탕으로 공통의 파이를 키우기. 대화 당사자들이 명분과 실리가 만족스럽게 교환되었다고 느끼는 것은 어렵다. 서로가 양보했고 조금씩 밑졌다는 생각이 들면 그 대화는 소통으로 갈 수 있는 신뢰를 구축한 것이다. 문제해결, 갈등조정, 대안선택 등에서 대화를 통한 숙의의 과정은 감정해소, 이해증진을 넘어 참여자 간 자연스러운 연결과 약한 연대감을 형성시킨다. 당사자간 대화의 거래비용도 줄어들고, 대화와 소통에도 속도가 붙는다. 작은 합의를 바탕으로 더 큰 성과를 창출하기 위한 협력의 토대도 마련된다. 시간과 열정을 투자했던 '숙의'의 과정과 명분과 실리를 교환한 결과를 바탕으로 관계는 증진되고 소통의 거래비용은 사라진다. 상호 이해와 신뢰를 기반으로 한 공동의 가치도 생겨난다. 이제 관계는 증진되었고 새로운 협력 관계에 대해서도 격이 없이 대화할 수 있다.
우리가 대화에 시간을 투자하고 진심을 다하는 것이 사안의 중요성 때문인 듯 보이지만, 관계의 의존성과 지속성이 더 큰 원인이다. 일회성 관계라고 인식하면 대화는 소통에 이를 수 없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전략(tit for tat)'으로 상대방을 약탈하면 된다. 관계의 지속성과 의존성은 대화의 과정에서 서로 이해하고 양보해야 하는 이유이다. 미래에 더 큰 것을 얻기 위해 조금씩 양보하는 것이다. 팀플레이도 구성원들 간 관계의 지속성과 의존성 때문에 대화에 시간을 투자하고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소통이 활성화된 팀에는 감정은 녹아 없어졌고, 팀과 개인의 이해 관심사는 명확하게 공유하고 있으며, 리더와 구성원들이 신뢰를 기반으로 연대하고 있다. 대화가 증진될수록 새로운 것을 같이 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분업의 전문성과 협업의 시너지가 동시에 발휘될 수 있는 더 큰 기회, 공통의 파이를 키우는 것이다.
필자가 제조업 대표이사로 재직 시 중국 업체에서 원료를 공급받고 있었는데, 품질문제가 자주 발생했다. 공급선을 바꾸면 쉽게 해결할 수 있었지만 해당 업체 총경리에게 대화를 요청했다. 해당 업체는 신공장에 선진적인 품질관리 노하우를 갖추고 싶은 니즈가 있었고, 우리는 고품질 제품을 경쟁력 있는 가격에 안정적으로 공급받기를 희망했다. 양사 경영진과 품질팀이 6개월여에 걸쳐 상호 방문과 숙의를 진행했다. 중국 생산현장의 개선활동과 품질기준을 우리 회사 기준으로 상향시키면서 해당 업체의 품질은 급속히 고품질 안정화되었다. 해당 업체는 한국의 다른 고객사들에게 프리미엄 가격을 받을 수 있었고, 우리 회사는 품질개선 활동 전수의 대가로 고품질 제품을 경쟁력 있는 가격에 최우선적으로 공급받았다. 단순한 갈등 관계가 감정을 해소하고 '숙의'에 기반한 소통을 통해 전략적 협력관계로 파이가 커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