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능력이 떨어진 빨간 펜 꼰대, 앵그리맨, 그리고 독재자
동전의 양면 '오만과 카리스마'
최근 우리 사회는 정상적인 사람의 시선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나 발언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는 연예인, 정치인, 기업인들로 넘쳐난다. ‘갑질'이라는 단어로 사회현상화 되어 버린 이러한 행동은 권력을 가진 갑이 부당하고 불공정한 행위를 을에게 일삼는 것을 말한다. 갑질을 하는 사람들은 권력에 취해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극히 떨어진 상태에서 자기 결정에 대한 과도한 확신에 빠진 나머지 자신이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을 가지게 된다. 세계적인 뇌신경학자인 이안 로버트슨(Ian Robertson) 교수에 의하면 권력을 가지게 되면 신경전달 물질 도파민과 남성 호르몬 테스토스테론 분비가 활성화되어 술이나 마약에 취한 것과 유사한 상태가 된다고 한다. 자신에게 과도하게 집중하여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떨어지게 되고, 지나친 확신으로 성공을 위해 반사회적인 행동을 서슴없이 한다.
리더는 팀장, 사업부장 등 조직을 이끄는 보직을 맡으면서 타인의 행동을 규정할 수 있는 권력을 조금씩 키우게 되는데, 오만증후군(Hubris Syndrome)을 항상 경계하며 깨어 있어야 한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 자신의 신념에 대한 강한 확신, 타인에게 영향력을 미치고자 하는 권력욕은 오만 증후군에 걸린 리더나 카리스마 있는 리더 모두의 공통된 특징이다. 이 둘을 구분하는 것은 리더와 구성원들 간의 소통의 양과 질이다. 오만증후군 걸린 리더는 일방적 지시나 질책으로 구성원들을 수동적으로 만들지만, 카리스마 있는 리더는 적극적 소통으로 명확한 목표를 제시하고 구성원들에게 공감과 신뢰를 표출한다. 카리스마 있는 리더는 구성원들의 자발성과 헌신을 이끌어 낸다. 턴어라운드가 필요한 조직의 리더는 빠르고 강해야 하지만 오만 증후군에 걸린 리더가 아닌 카리스마 있는 리더여야 한다.
오만 증후군에 걸린 리더의 세 가지 유형
필자의 경험으로 오만 증후군은 크게 3가지 단계로 나뉜다. 첫 번째 단계는 ‘빨간 펜 꼰대’이다. 꼰대는 자신의 경험과 지식만을 강요하기 때문에 구성원들은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느낀다. 이들은 자신의 입장과 생각에 부합하는 의견만을 수용하는 확증 편향에 사로 잡혀있다. 경청보다는 잔소리가 많고, 의견을 구하기보다는 지시에 익숙하다. 구성원들의 의견에 통찰력을 더하거나 전략적인 방향을 제시하기보다 잔소리와 자신의 입장을 강요하면서 빨간 펜으로 보고서를 수정한다. 업무적인 역량이 뛰어나고 실무적으로 직접 일 처리를 하는 빨간 펜 리더라면 일이 집중되기 때문에 번아웃(Burnout) 상태에 쉽게 빠질 수도 있다. 반면 실무 역량이 부족하거나 회사의 이익보다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경우 리더십에 실질적인 공백이 발생하여 팀이 수행하는 일에 다양한 문제가 발생한다.
두 번째 단계는 분노 조절 장애가 있는 것처럼 지나치게 화를 내는 ‘앵그리맨(Angry man)’이다. 자신의 판단에 대한 과도한 확신을 넘어서 권력자로서 자신의 강한 정체성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 자기애가 병적으로 강한 나르시스트(Narcissist)가 탄생한 것이다. 구성원의 자유로운 의견개진을 자신에 대한 도전이며 모욕이라고 여기면서 개인에게 모욕감을 줄 수 있는 지나친 언행이나 질책으로 반응한다. 리더 스스로는 화를 내는 것이 열정과 성실함의 표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구성원의 공식적인 저항 등 문제가 될 수 있는 '사건'이 발생하지 않으면 행동은 더욱 강화된다. 구성원들은 리더와 협업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느끼고, 리더의 지시에만 반응한다. 질책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서 책임을 회피하면서 일을 한다. 사소한 일에도 리더의 의사결정에 지나치게 의존하여 일이 지연되거나, 불명확한 소통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으로 일이 흘러가기도 한다. 개인은 파티션 안에 스스로 고립되어 리더의 눈치만 살핀다.
마지막 단계는 리더가 무소불위의 ‘독재자’로 변하는 것이다. 이 단계에선 비정상적인 이거나 불법적인 상황조차도 본인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이 극대화되는 단계이다. 타인과 사회적 인식에 대한 공감능력은 사라지고 자기 중심성이 극대화되면서 도를 넘는 자기 확신을 가지고 의사결정을 한다. 문제를 은폐하거나 부당하게 처리하는 잘못된 의사결정이 빈번하게 일어날 수 있다. 독재자는 결과가 좋지 못한 일을 자신의 의사결정의 문제라기보다는 실무진에서 실행을 잘못했거나 구조적인 문제로 인식한다. 구성원들은 일말의 저항도 멈추고 두려움에 떨게 된다. 이러한 리더를 조직에서 분리시키지 못하면 최근 여러 기업의 '오너 리스크'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회사는 재앙적인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 리더는 구성원을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해야 하고, 경영활동은 사회적 규정 안에서만 자율성을 보장받을 수 있다.
리더는 대화와 토론, 경청과 공감으로
회사는 제도와 절차, 문화와 협업으로 오만을 경계
오만 증후군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회사와 리더 개인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회사 차원에서는 정기적인 리더십 교육을 통해 리더들에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생산적인 회의와 수평적 기업 문화를 조성하여 협업의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평가시스템도 역량과 업적 평가 중심에서 인성과 리더십 평가를 강화한 360도 다면평가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와 같이 위계가 기본이 되는 경직된 기업문화 속에서는 회사 내에 리더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할 수 있는 실질적인 채널이 없는 것이 일반적이다. 회사는 오만증후군에 걸린 리더에 대해 성과를 창출하기 위한 필연적 요소, 리더의 개인적 성향의 문제, 리더와 특정 조직원 간의 관계갈등으로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이제는 수평적 조직 문화의 시대이다. 구성원들이 공식적인 조정기구 등을 통해서 오만 증후군에 걸린 리더와 갈등을 투명하게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회사는 이러한 갈등을 가리고 싶은 치부로 여기기보다는 투명하고 공식적인 갈등해결을 통해서 협업의 기업문화로 전환하는 발전적 과정으로 만들어야 한다.
리더 개인적으로도 구성원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면서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미덕을 연습하고 실천해야 한다. 자기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자세가 자신이 높아질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권력은 행사할수록 그리고 오래 가지고 있을수록 리더를 오만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의사결정이나 토론의 과정에 확증편향을 경계하는 것이다. 자신의 입장과 논리에 부합하는 정보만을 수용하는 확증편향은 객관적 정보에 근거한 의사결정을 저해하는 요소이다. 리더의 확증편향은 구성원들의 다양한 의견 개진과 냉정한 평가를 막는 협업의 장애요소다. 구성원들이 의견을 개진하면 취사선택을 할 것이 아니라 화이트보드에 기록하고 나열해 보자! 리더 자신의 의견과 다르다면 반대를 표시하기보다 질문을 통해서 이유를 물어보자! 주관적 판단보다 정보의 객관성에 초점을 맞추어 의견을 나열하고, 구성원들의 평가를 듣고, 그리고 같이 결정하면 된다.
리더는 집단사고(Group Thinking)를 경계해야 한다. 강한 결속력을 가진 조직처럼 오만증후군에 빠진 리더가 지배하는 조직도 어떤 사안에 대해 만장일치를 이루려는 집단사고의 경향이 있다. 리더가 입장을 강하게 표현하면 조직원들은 소외받지 않기 위해서 합리적 의심이나 반대를 유보하고 찬성을 한다. 외부에서 보면 부당하고 불합리한 의사결정이 조직 내에서는 만장일치로 결정된다. 독단적인 리더 옆에 일상적으로 존재하면서 리더의 심기를 살피는 마인드가드(Mind Guard)와 토론의 시간제한 때문에 집단사고는 강화된다. 마인드가드는 자유롭고 충분한 토론을 제한하면서 리더의 입장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결론을 유도한다. 시간제약 역시 충분한 논의 없이 리더의 입장을 받아들이게 한다. 리더는 회의시간에 마인드가드를 통제하고 모든 사람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어야 한다. 이견이 없다는 것이 리더의 권력에 복종하는 것인지, 의견을 개진할 충분한 시간이 없는 것인지, 정말로 이견 없이 합의를 이루었다는 것인지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화(Anger)를 경계해야 한다. 사람은 상황이나 타인을 통제할 수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화를 낸다. 또한 기대 수준이 높은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때도 화를 내는 방식으로 상황이나 사람을 통제하려고 한다. 하지만 화(火)를 내는 것은 화(禍)를 불러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팀 스피릿은 무너지고 존중받아야 할 개인의 존엄성은 짓밟히게 된다. 자칫하면 부당하게 대우받았다고 생각하는 구성원이 기업이라는 울타리 밖에서 억울함을 표출할 수도 있다. 리더가 회사로부터 직책이나 직위로 인해 부여받은 권력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당하게 사용해야 한다. 개인의 인격을 무시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리더의 화는 팀워크에 독이 된다. 화를 냈다면 빨리 인정하고 용기 있게 사과하는 것만이 소통이 살아있는 팀워크를 만들 수 있다.
사람들은 뇌의 구조상 화를 내는 즉각적 반응에 길들여져 있다. 우리의 뇌는 상황을 빠르게 판단해서 대응하는 시스템 1이 있고, 사려 깊고 정제된 의사결정을 하는 시스템 2가 있다. 인류 역사에서 외부적 위협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시스템 1이 발달한 사람이 살아남았기 때문에 위기 상황에서는 본능적으로 시스템 1 사고가 우선 작동한다. 또한 시스템 1 사고는 시스템 2 사고를 억제하는 일을 가장 먼저 한다. 사자가 달려오면 대책을 생각하느라 우물쭈물하지 않고 도망가는 것이 우선이다. 그래서 이성적 판단보다 먼저 화가 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화가 나거나, 화를 낸 후 조금의 시간만 흐르면 사려 깊게 생각하는 시스템 2에 의해 후회하게 된다. 지금의 세상은 사람들로 하여금 시스템 2의 사고가 시스템 1의 사고보다 우선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턴어라운드가 필요한 사업이나 조직에는 무능한 리더뿐만 아니라 과도한 자기 확신으로 인해 잘못된 의사결정으로 사업을 망치고, 조직을 경직화시켜 효율성을 떨어 뜨리는 오만한 리더가 존재한다. 턴어라운드 리더는 분명한 전략과 실행을 뒷받침하는 체계적인 업무 스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살아있는 공감능력과 경청하고 토론할 줄 아는 성숙한 태도이다. 턴어라운드 리더가 대화하고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대상이 되어야 구성원들은 무너진 조직에서 비로소 안전함을 느낄 수 있다. 인내심을 가지고 개방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로 소통할 수 없다면 리더는 꼰대, 앵그리맨, 독재자가 된다. 리더 자신은 자기 성찰을 통해서 오만을 경계하고 소통과 공감을 실천하도록 노력해야 하며, 회사는 구조적이고 투명한 갈등해결 프로세스와 제도를 통해 협업의 조직 문화를 지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