턴어라운드가 필요한 조직
변화의 5번 킹핀, '임자'는 누구
주인과 임자라는 단어는 '물건을 소유한 사람'이라는 유사한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임자는 물건이나 동물 따위를 잘 다루거나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고, 주인은 책임감을 가지고 집안이나 단체 따위를 이끌어 가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차이가 있다. 회사나 사업부문의 적자가 누적되어 회생이 필요한 경우 조직도 무너져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조직에는 주인은 없고 임자만 많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임자들은 변화를 거부하면서 특정 영역에서의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현상을 유지(Status Quo Bias)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반면 책임지고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주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턴어라운드 리더는 이기적인 임자를 조직의 책임감 있는 주인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임자들은 산업과 회사, 그리고 해당 사업부문에서 오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안 되는 이유’를 가장 논리적이고 경험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핵심적인 중간관리자들이 대부분인데 과거의 ‘치밀하지 못한 도전’이 실패의 경험으로 누적되어 ‘새로운 시도가 실패로 연결되는 가장 효율적인(?) 길’을 알고 있다. 따라오는 척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변화나 도전 자체를 거부한다. 오랜 시간 동안 해당 조직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는 관리자이기 때문에 구성원들에게 암묵적인 통제를 가할 수 있는 힘이 있다. 구성원들은 문제에 봉착하면 이들의 눈치를 본다. 회사의 주인은 주식 지분을 가진 사람이지만, 임자들은 조직과 사업에 대한 감정적 지분을 바탕으로 보이지 않는 정치력을 행사하며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그들이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현상유지’ 편향을 보이는 이유는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다. 리더를 잘못 만나서 제대로 된 전략과 치밀한 실행을 해보지 못했거나, 과거의 성공이 산업의 성장과 같은 외부적 요인에 의존했거나, 조직 내 누적된 갈등과 잦은 경영진 교체로 피로감을 가지고 있는 등 현상유지 편향과 자신감 결여의 다양한 원인이 존재한다. 동기부여를 통해 변화를 도모하고, 도전목표와 치밀한 실행계획을 공유하고, 동료들과 호흡을 맞추어 열정적으로 일하는 것은 과거의 역사가 되었다. 임자들은 감정적 지분에 기반한 통제력으로 구성원들에게 부정적 에너지를 전파하기 때문에 조직을 회생시키는 데 있어 킹핀(King pin) 역할을 한다. 이들을 변화시킬 수 있으면 조직의 변화도 쉽게 따라온다.
비공식적 영향력을 지닌 임자를 공식적 책임감을 가진 주인으로
임자들을 어떻게 턴어라운드 프로젝트를 이끄는 책임감 있는 주인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 첫 번째 단계는 그들과 질문과 답변을 통해 신뢰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개별적으로 임자들을 불러 산업과 회사 그리고 조직에 대한 고견을 청취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질문을 통해서 그들이 현실의 제약을 벗어나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리더는 데이터와 정보를 통해서 미리 파악한 조직과 사업의 핵심적인 문제들에 대해 그들의 의견을 주의 깊게 들으면서 해법에 대한 여러 가설들을 정리해 볼 수 있다. 그들에게 ‘당신이 나라면, 당신이 사장이라면, 경험에 비추어 보면...’ 같은 질문을 통해서 원인과 해결책에 대한 진솔한 의견을 들어본다. 시간, 돈, 사람과 같은 자원의 제약은 가정하지 않고 답하도록 유도한다. 임자들은 턴어라운드 리더가 그들의 지분을 인정하면서 의견에 귀 기울이고 있다고 생각하여 신이 나서 이야기할 것이다. 때와 사람에 따라서는 술자리와 같은 비공식적 자리에서 대화를 통해 관계는 더욱 깊어지고 진솔해질 수 있다.
두 번째 단계는 비교적 짧은 시간에 해결할 수 있는 퀵윈(Quick win) 과제를 부여하여 의사결정에 참여할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다. 의사결정에 참여한다는 것은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기 위해서는 실행과정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리더가 막중한 책임감, 때로는 부담과 스트레스를 느끼면서 조직을 이끌어 가는 것도 결국은 조직의 미래를 좌우하는 많은 의사결정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턴어라운드 리더는 퀵윈 과제를 부여할 때 과제의 목적이나 결과의 수준(Quality), 예상 소요 자원이나 비용(Cost), 일의 마일즈스톤과 납기(Delivery)를 명확히 전달해야 한다. 퀵윈 과제는 조직이나 사업에서 기존 리더의 의사결정 지연 또는 부서 간 불명확한 업무 영역으로 인해 '비정상이 정상화'된 영역 속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제들은 신속한 의사결정이나 조정을 통해 쉽게 해결할 수 있으므로 새롭게 부임한 턴어라운드 리더에게는 임자들과 팀워크를 다지면서 신뢰를 축적하는 좋은 기회이다.
세 번째 단계는 조직개편을 통해 핵심 보직에 정체되어 있는 중간 관리자들을 순환시키는 것이다. 회생이 필요한 조직의 경우 영업, 품질, 생산, 관리 등 핵심적인 기능에 임자들이 존재하고 있다. 이들이 각 기능 조직에 포진되어 있는 한 턴어라운드 리더가 추진하는 변화나 도전, 그리고 혁신의 동력은 언제든 힘을 잃을 수 있다. 조직개편 때문에 ‘일이 안 될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안 되는 이유’만을 말하는 임자들만의 착각이고 기우이다. 중간 관리자를 받치고 있는 핵심 실무자를 파악한 후 과감하게 조직을 개편해야 한다. 퀵윈과제 수행을 통해서 파악한 임자들의 조직관리와 업무 스타일의 장단점을 조직개편에 반영하고 핵심 실무자를 전면에 배치한다. 순환 배치된 중간 관리자들과 전면에 나온 핵심 실무자들은 새로운 일에 대해 좀 더 개방된 사고를 하게 되고 조직에도 긴장과 활기를 불어넣는다. 짧은 기간의 평가에 기반한 개편이기 때문에 실수를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실수가 두려워 너무 신중을 기하는 것도 임자들이 하는 행동이다. 실수했다면 다시 하면 될 일이다. 변화는 속도가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자발적인 낙오자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자신감을 되찾고 주인이 되어 변화에 동참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임자로서 자신의 통제력이 상실되는 과정을 참지 못하고 사표를 던지는 사람도 있다. 핵심 중간관리자인 이들의 사표를 수리하는 것은 ‘일의 연속성 및 조직력 약화’ 때문에 두렵기도 하지만 턴어라운드를 추진하는 조직과 구성원들에게는 긍정적인 신호를 줄 수 있다. 조직 내에 팽배한 비생산적인 정치력을 약화시키면서 업무에 대한 팀의 생산적인 몰입도를 높일 수 있다. 또한 능력 있고 날개를 펼치고자 하는 초급 관리자들에게 새로운 중간 관리자로 승진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주인에 대한 롤 모델'을 구성원들에게 상기시킬 수 있다. 이제부터 턴어라운드 리더와 함께 목표와 전략을 공유하면서 일관성 있는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주인을 전면에 과감하게 배치한다. 그들에게 일정 수준의 권한과 책임, 의사결정을 위임하면 ‘통제력’을 행사하는 임자 대신 ‘책임감’을 가지고 조직을 이끄는 주인들이 회사의 주인공이 된다.
10개의 볼링핀 중에 가장 중앙에 위치한 5번 핀이 킹핀이다. 얼핏 보면 가장 앞에 있는 1번 핀을 넘어 뜨려야 10개의 핀 모두를 넘어뜨릴 수 있을 것 같지만, 상하좌우 가장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보이지 않는 중앙 5번 핀을 공략해야 스트라이크를 기록할 수 있다. 조직을 턴어라운드 시키기 위해서는 킹핀 역할을 하는 임자를 찾아 책임감 있는 주인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가망이 없어 보이는 환자의 수술 포기를 종용하는 병원장 앞에서 사명감과 책임감으로 돌담병원을 이끌고 있는 낭만닥터 김사부는 이렇게 말한다. “누가 그럽디다! 포기하는 순간 핑곗거리를 찾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방법을 찾는다고요!” 낭만닥터 김사부도 결국은 주인이 임자를 변화시키는 이야기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