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가방을 들고 정장 차림으로 비행기에 오르는 비즈니스맨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무역학과에 진학했습니다. 마케팅이라는 학문을 접하면서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생겼습니다. 대기업 홍보맨으로 시작한 직장생활은 거침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곧 공허해졌습니다. 더 높이 올라가고 싶었습니다. SKY 출신도 아닌 강원도 촌놈이 운 좋게 미국행 비행기를 탔고 MBA라는 세상에서 커리어 엔진에 부스터를 달았습니다. 자신감은 넘쳤고 세상은 좁아 보였습니다. 파워포인트로 멋지게 요약한 보고서를 최고 경영진 앞에서 프레젠테이션 하며 승진을 거듭했습니다. 그즈음 글과 말로 이루어진 세상이 지루해졌습니다. 사람과 부대끼면서 물건을 파는 찐 전쟁터에 가보고 싶었습니다.
인수한 회사에서 턴어라운드 프로젝트 PM을 하면서 현실 경영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기획서는 물건을 팔아야 하는 경쟁에서 말과 글을 넘어서 작전지도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조직에 변화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구성원들이 공동의 목표를 공유하면서, 달성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목표를 열정의 에너지로 돌파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노사 합의문을 작성하고, 컨테이너 박스에 감금당하고, 중국의 허름한 호텔 방에서 밤을 새워가며 협상하고, 조직 갈등과 법률 분쟁에 시달리고, 쿠웨이트 사막을 누비기도 했지만 사업과 조직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경이로운 경험이었습니다. 다양한 산업과 조직에서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며 턴어라운드 리더로서 필요한 경험을 축적했습니다.
영업이익으로 차입이자도 지불하지 못하는 사업, 무기력과 정치가 난무하는 비효율적인 조직을 턴어라운드 시키는 것은 일반적인 리더십의 기술이나 경영전략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사업과 조직의 운영시스템이 이미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턴어라운드 리더는 앞 주자가 바통을 떨어뜨린 상황에서 바통을 이어받습니다. 사업과 조직, 그리고 경영을 이해하는 고도의 전문성과 일관된 의사결정으로 패배를 예감하는 구성원들에게 승리에 대한 희망과 도전의식을 불어넣어야 합니다. 속도와 실행력이 관건입니다. 과감한 개선보다 피상적 리포팅을 반복하고, 현장이 아닌 회의실에서 탁상공론에 시간을 허비하고, 어설픈 실행으로 실패를 반복하면 골든 타임은 지나가고 운명은 제삼자에게 넘어갑니다.
턴어라운드 프로젝트는 변화, 도전, 그리고 혁신의 과정입니다. 변화는 구성원 개개인의 마음을 움직여 이어지는 도전과 혁신의 과정에 참여자를 모집하는 것입니다. 턴어라운드 리더는 대화와 토론을 통해 변화의 필요성을 일깨워야 합니다. 객관적 데이터와 축약된 언어로 위기상황(As-is)을 정의하여 전파하고, 턴어라운드 된 상황을 미래 비전(To-be)으로 만들어 소통합니다. 참여자의 수가 도전과 혁신의 여정에 바람직한 결과를 얻기 위한 충분한 양(Critical mass)에 도달했다면,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 도전목표와 실행계획을 같이 만들고 공유합니다. 구성원들의 변화 의지가 사업과 조직의 도전목표로 연결되었다면, 다음은 강하고 세밀한 실행, '개선과 혁신'을 통해 무너진 고객의 신뢰를 회복합니다.
턴어라운드 프로젝트에는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요소가 존재합니다. 첫째, 프로젝트 리더에 대한 절대적인 권한 위임입니다. 위임된 권한의 크기는 주어진 책임의 크기이고 속도와 실행력을 좌우합니다. 책임의 크기는 성과의 크기와 비례합니다. 둘째, 부문별 퀵윈과제(Quick-win)를 성공적으로 조기 완수하여 턴어라운드의 동력인 '구성원들의 신뢰'를 얻어야 합니다. 소위 ‘점령군’인 리더에 대한 구성원들의 초기 신뢰는 턴어라운드 프로젝트가 무사히 이륙하게 하는 연료입니다. 셋째, 변화, 도전, 혁신의 과정을 밀도 있게 진행해야 합니다. 변화 과정에서 성숙도가 낮아 참여율이 저조하거나, 도전목표를 일방적으로 제시하면 이어지는 개선과 혁신활동의 동력인 '구성원들의 신뢰'를 상실하게 됩니다.
턴어라운드 리더는 합리적이고 전략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문제해결자이며 갈등관리자입니다. 구성원들과 소통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 내는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입니다. 리더의 대화는 퍼실리테이터로서 동등함과 진지함의 기초 위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창조적 갈등을 유발하면서 파괴적 갈등을 최소화하며, 질문에 기반한 대화와 토론으로 구성원들을 이끌어야 합니다. 문제와 갈등을 회피의 대상이 아닌 개선의 기회로 인식하면 문제는 수면 위로 떠오르고 구성원들은 건설적인 제안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합니다. 문제와 갈등, 그리고 대화를 바라보는 리더의 올바른 시선, 일관성 있는 의사결정, 온기가 살아있는 조직이 있어야 구성원들은 자발적 참여와 헌신을 지속합니다.
이 책은 총 5개의 장으로 구성되었습니다. 1장에서는 턴어라운드가 필요한 사업과 조직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이익은 없고 매출만 있는 사업, 주인은 없고 임자만 있는 조직, 오만 증후군에 걸린 리더, 시너지보다 링겔만 효과가 큰 팀워크, 따르지도 비키지도 않는 문화, 불통과 갈등으로 얼룩진 관계 등 턴어라운드가 필요한 사업과 조직의 징후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2장에서는 사업을 턴어라운드 시키기 위한 리더의 역할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업을 회생시키기 위한 전략 로드맵을 가지고 지속가능한 이윤창출 메커니즘을 재생시키면서, QCD(Quality, Cost, Delivery) 혁신으로 고객신뢰를 회복하고, 리프레이밍(Reframing)으로 새로운 성장기회를 어떻게 찾을 것인지 논합니다.
3장에서는 문제와 갈등을 해결하는 턴어라운드 리더십에 대해 설명합니다. 구조맥락적 사고로 문제의 원인을 규명하며, 안 되는 일도 되게 하는 리더의 문제해결 블랙박스 내부를 살펴봅니다. 바통터치 구간에서 발생하는 문제와 갈등을 혁신의 기회로 연결하는 리더의 역량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4장에서는 헌신으로 불신을 넘어 혁신하면서 조직을 회생시키는 턴어라운드 리더십을 논합니다. 리더가 아닌 도덕헌장이 지배하는 팀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소모적 갈등을 조정하면서 창조적 갈등을 어떻게 조장할 것인지 알아봅니다. 마지막 5장에서는 턴어라운드 리더의 변화를 촉진하는 대화기술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턴어라운드 리더의 대화는 감정을 해소시키고 이해관심사를 상호 소통하게 하며, 논쟁보다는 토론하고, 질문으로 경청하여 구성원들을 '사유 없는 믿음과 의지 없는 순응'에서 깨어나게 합니다.
여러분의 사업과 조직은 턴어라운드가 필요한가요? 제품 수명주기가 짧아지고 경쟁의 범위가 무한정으로 확대되는 기업환경 속에서 우리나라 상장기업의 40% 이상이 영업이익으로 차입이자조차 충당하지 못합니다. 이메일과 메신저가 일상화된 조직 속에서 핵개인들은 PC 앞에 철저히 고립되어 있습니다. 일에 대한 개념과 직장 문화에 대한 정의가 다른 X 세대 아버지, 어머니와 MZ 세대 아들, 딸이 한 공간에서 소통하며 팀워크의 시너지를 만드는 것은 도전적인 과제입니다. 이윤창출 메커니즘을 재생시키고, 시스템적인 개선과 혁신을 통해 지속 가능성을 높이고, 조직 내에서 사라진 대화를 복원시키는 턴어라운드 프로젝트는 모든 조직과 기업이 영원히 추구해야 하는 미션일지도 모릅니다.
사업과 조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신임 임원과 팀장, 사업전략과 조직개발을 혼자 고민해야 하는 중소기업 경영자, 그리고 제한된 시간 안에 성과를 창출해야 하는 프로젝트 리더에게 이 책이 턴어라운드와 리더십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고 인사이트를 나누는 가교가 되었으면 합니다. 필자의 제한된 지식과 경험이 경영과 리더십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상상력을 제한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되지만, 변화와 도전, 그리고 혁신에 목마른 모든 분들과 필자의 경험을 나누고 싶습니다. 턴어라운드 프로젝트는 성패를 떠나 회사생활에서 사명감과 개인적 보람을 느끼면서 성공한 경영자, 성숙한 리더로 성장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입니다. 독자 여러분도 도전해 보실 것을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