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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Sep 23. 2019

어린 날 경계심 없던 내가 그리웠다

일상의 흔적 87

9월 19일, 한껏 서늘해진 공기. 나도 무뎌지는 순간이 있다.

가끔 내게서 뻗어나간 가시가 느껴진다. 남들과 닿기 싫어서, 상처 받기 싫어서, 쉬워 보이거나 연약해 보이기 싫어서 조금씩 뻗어나간 가시. 한껏 예민해진 날은 가시도 더 날카롭다. 그러다 문득 내 가시가 느껴질 때면 이러지 말아야지 다독이지만 그뿐이다. 언제고 어느 때고 쉽지 않은 세상살이에선 다시금 뻗어 나온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이리저리 정신없는 와중에 시간만 소비하고 제대로 저녁도 먹지 못하고 지하철에 올랐다. 행운처럼 나타난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곤 눈도 잠깐 감았다. 짧은 시간만이라도 평온히 가고 싶은 무의식이었다. 그러다 무엇인가 반복해서 무릎을 톡톡 치는 느낌에 짜증스러운 얼굴로 눈을 떴다.


밉살스럽게 뜬 눈 사이로 조그맣고 하얀 손이 보였다. 내 무릎보다 조금 더 큰 아기가 입을 헤- 벌리고 웃고 있었다. 조금 더 고개를 들어보니 무거워 보이는 가방을 어깨에 아슬아슬하게 걸고 손잡이와 아기 손을 꼭 쥐고 있는 아기 엄마가 보였다. 나랑 눈이 마주친 엄마는 미안한 얼굴로 사과를 하며 아이의 손을 잡아끌었다.


얄궂게 뜬 눈이 스륵 풀렸다. 내 앞에 조그맣고 살랑이는 작은 아이 웃음을 따라 나도 웃었다. 짜증스럽게 올라왔던 가시가 다시 무뎌진다. 살랑이는 기분을 타고 자리에서 일어나 아기에게 양보했다. 어쩔 줄 몰라하는 엄마에겐 이제 곧 내릴 때라 괜찮다고 다독이며 아기가 너무 사랑스럽다고 연신 칭찬을 건넸다.


얌전하게 의자에 앉아 조그마한 손을 흔들흔들하는 아이가 귀여웠다. 저렇게 경계심 없이 해맑은 미소를 건넬 수 있는 여유가 부러웠다. 사람을 좋아하던 내가 언제부터 날을 세우고 경계심으로 가득해졌는지 살짝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아기가 내 쪽을 향해 자꾸 손을 뻗길래 살짝 잡아주었다. 말캉하고 부드러운 체온이 손가락에 닿았다.


아무 뜻도 담기지 않은 말간 얼굴을 따라 미소가 지어졌다. 오늘 하루, 작고 따뜻한 온기 덕에 기분 좋게 끝낼 수 있어 다행이다. 작은 바람이라면 저 아이가 점차 커가고 넓은 세상을 만나더라도 누군가에게 미소를 선물해줄 수 있는 아이로 자라주길. 작은 일에도 주책맞게 의미를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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